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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헨리포터 Feb 28. 2021

신(新) 밥상머리 교육

보궐선거를 앞두고 서울시장 후보들이 앞다투어 내놓는 공약 중에서 눈에 들어오는 하나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 '주 4.x일제'일 것이다. 실현 가능성이야 당장은 가늠이 안되고 그것에 대한 '영향성'도 어차피 여러 기관에서 긍정적으로 논의되고 누군가의 결단으로 결정해야 하기에 어차피 당장은 해당사항이 없겠지만 그보다 내가 주목하고 싶은 점은 바로 근무의 '패러다임의 변화'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주말도 없이 일하려는 마음가짐이 모름지기 직장생활에 필요한 필수 덕목쯤으로 받아들이던 시절이 있었고 심지어 2000년대 초에 일어난 일만 보더라도 "함께 연구하는 젊은 과학자들은 일주일을 '월·화·수·목·금·금·금'으로 말하곤 한다"며 어떤 과학자께서 힘주어 말하던 장면은 굉장히 자연스러운 것이 었으니 최근(?)까지도 주말반납 정도는 우리의 일상이었던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그 연구실에 소속된 직원들의 탁상달력이라면 아마도 온통 흑백으로만 되어있을 것이다. 지금에 라면 그런 생활을 어찌 견딜까 그저 막막할 텐데 말이다. 그때는 저런 일화가 지금 시대의 '열정 페이'로 둔갑되는 안 좋은 사례인 줄 모르고 엄청난 자랑거리였던 동시에 성공을 위해 반드시 수반되어야 하는 상징적인 것쯤으로 비치는 일이 많았으니 주 5일도 아니고 주 4일 근무에 대한 논의가 시작된 그 자체 만으로도 상당한 발전이라고 본다.


사실 지금에 이르렀으니 시대의 변화를 실감한 것이지 그때 그 발언을 두고 솔직히 우리 모두는 세계를 이끌어갈 과학자라면 응당 그래야 한다며 동의를 표했고 성공을 향한 주 7일 근무도 때론 문제 될 것이 없다고 등 떠밀지 않았던가. 불과(?) 20년 만에 다시 끄집어내진 이 주제를 생각해보면 얼마나 대단한 발전이고 시대의 급진적 변화인가. 물론 주 4일제에 대해 내 경우라면 격하게 찬성하지만 그들의 생각에 진정으로 변화가 있었는지 아니면 그저 표를 갈구하는지 그리고 각 후보들의 진짜 속마음은 알 길이 없기에 두고 봐야 할 일이다. 하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올라온 '진심'과 함께 근무에 대한 패러다임의 진정성 있는 새바람을 몰고 올 위대한 '목적'을 가지고 그 화두를 던진 것이라면 참으로 고맙다.


단순한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라면 돌아올 피해는 불 보듯 뻔하다. 2 명이 해도 충분한 일을 목적 없이 4 명이 하도록 나누는 그 행위라면 결국 그 피해는 온전히 '근로자' 혹은 '사용자'중 힘이 약한 쪽이 뒤집어쓰면서 우리 모두는 '희생자'가 될 것이므로 그처럼 가벼운 발상이어서는 안 될 테고, 이를테면 5일 동안 하던 일을 부지런히 4일 동안 끝낸다면 추가로 하루의 휴일을 더 확보하는 개념에서 시작을 해야 '사용자'와 '근로자'가 모두 행복한 경우가 될 수 있다는 것이 내 시각이다. 빠쁜날과 안 바쁜 날 그리고 내가 집중해서 일하고 싶은 날과 자발적으로 느슨해지고 싶은 날이 있는 것이란 우리에겐 인지상정 아니던가. 심지어 우리는 누가 시키거나 지켜보는 것도 아닌데 자발적으로 생리현상도 거부한 채 일에 몰두할 때도 있었다. 일의 양은 어차피 정해져 있는 것이니 필요에 따라 집중하고 안 하고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기에 가능한 것 아니겠나. 어찌 되었든 그 정책의 타당성과 효과를 전문기관에서 자~알 분석하여 정말로 올바른 방향으로 추진이 된다면 더할 나위 없다. 그 결과가 '아니다'로 나온다면 그냥 지금처럼 '주 5일'유지하면 될 일 아니던가. 4자에 대한 집착은 금물! 지금껏 우리네 삶에서 사자(?)에 대한 집착으로 얼마나 많은 이들이 마음고생하고 희생당하고 억울하며 불공정을 겪지 않았던가.


지금이야 주 5일 근무가 자연스러워 보이지만 우리의 '아부지/어무니 세대'라고 하면 토요일은 당연히 나가셨고 어쩔 땐 일요일도 출근을 하셨는데 지금 생각하면 나는 절대 못합니다. 아니 안 할 겁니다. 그냥 손가락 빨고 살지요 뭐. 라고 쉽게 말하자니 가족을 두고 그것도 못할 소리다. 어쩌면 반세기 전 평화 시장에서부터 시작되어 노동과 근로의 패러다임의 변화를 지속적으로 이끌어온 열사들과 우리 아부지/어무니 세대의 위대한 노력으로 이렇게나 좋은 세상이 찾아온 듯 하니 그들은 참으로 '대단하신 분'들이며 진정한 '위인'이시다. 일요일까지 출근하던 모습을 직접 지켜보며 자라온 나로서는 지금에 이르러 '주 4일제'라는 말이 오가는 것이 어찌 되었든 감회가 새롭다.


세기말 즈음에 이르러 토요일이 노는 날이 되었음을 몸소 받아들이게 된 계기는 가족이 주말에 모이는 시간이 증가한 일을 두고 세상이 변했음을 느낄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 시기라면 가족 모임의 전성기였을 것이다. 특히나 그 시기는 그야말로 패밀리 레스토랑의 전성기이기도 했는데 근무에 대한 패러다임의 변화가 가져온 현상이었다. 주 5일제와 함께 서로 바쁘던 가족들을 다시 하나의 밥상으로 둘러앉게 만들었으니 그 자체만으로도 대단한 성과였던 셈이다.


어려서는 저녁식사를 하며 온 가족이 둘러앉아 함께 밥 먹는 시간은 이유불문 빠질 수 없는 자리였고 우리들은 그것을 '밥상머리 교육'이라 불렀는데 그 시간에는 보통 하루의 반성과 내일의 준비가 동시에 이뤄지는 자리기도 했으며 마찬가지로 보상과 벌칙(?)이 부여되는 것처럼 식탁 위 올라와있는 반찬만큼이나 다채로운 자리였다. 단골 주제로는 전화예절에 대한 내용이 자주 포함되었는데 그 시절이라면 핸드폰이 (사실상) 없던 때였고 가정마다 그리고 사무실마다 공간마다 그저 유선으로 연결된 전화기만이 존재하던 시대였고 하루에도 수십 통씩 전화가 오고 가던 탓에 우리의 전화예절에 대한 밑바닥은 쉽게 드러날 수 있었으니 그야말로 당연한 결과다.


물론 수십 년 전에 이뤄진 그 교육에서 지금껏 살아보니 그 내용은 실로 알차게 구성되었으며 당연히 지켜야 했던 사항이었으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몇 날 며칠 반복되던 그 내용을 압축하면 그저 목소리를 또랑또랑하게 받고, 인사를 공손하게 드리며, 가족과 친지에게는 안부를 함께 여쭐 것. 그리고 가장 중요한 사항이라면 전화를 걸든 받든 내가 누군지를 반드시 먼저 밝힐 것이었다. 이런 가족 간의 사랑(?)이 짙게 묻은 대화가 오가던 자리가 바로 가족의 저녁시간 밥상머리였으며 사춘기를 지나 한동안 자연스럽게 단절되었으니 '주 5일제'의 힘을 받아 패밀리 레스토랑의 식탁에 다시 모인 이 시간이란 얼마나 아름다운 변화인가.


물론 지금에 이르러서 그 당시 전화예절로부터 삭제되어야 할 한 가지라면 전화를 받을 땐 내가 누군지를 먼저 밝히지 말 것이 되겠다. 예전이라면 전화를 주고받는 사람들이 서로 아는 관계일 확률이 높았기에 그랬겠지만 이제는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전화의 수가 실로 엄청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반대로 발신하는 입장에서라면 본인이 누군지를 밝히는 그 행위는 여전히 필수가 되겠다.


보통은 서로의 전화번호가 화면에 표시되고 받기도 전부터 누군지를 알고 있고, 걸려오는 전화가 누구인지를 알려주는 '앱'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빈틈은 역시 존재한다. 그때 바로 필요한 것이 전화예절에 대한 기본원칙이 되겠다. 음흉한(?) 목적이 없다면 먼저 전화를 건 그 사람은 의당 본인이 누군지를 정확하게 그리고 먼저 밝혀야 되는 기본적인 사항임에도 여전히 자신을 밝히지 않으면서 그저 다짜고짜 전화기에 대고 내가 맞냐고 물어대는 사람들이 있다. 처음에는 혹시나 나를 아는 사람인가 싶어 친절하게 응대를 했으나 이제는 열이면 열, 아니 백이면 백 걸러내는데 그들이 바로 스팸전화다.


"여보세요?"

"네, OOO님 맞으시죠?" (X) - 스팸 전화의 전형

"네, 안녕하세요. ㅁㅁㅁ입니다. OOO님 맞으시죠?" (O) 


물론 이 전화는 어쩌면 경품에 눈이 멀어 그저 나 스스로 제공 동의를 한 정보에 의해(아,,, 내 손모가지) 유출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내 정보가 어디 스팸 업계 종사자들끼리 공유하는 사이트에 올라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들의 입장에서라면 본인의 정체는 숨기면서 얻은(구매한?) 정보와 일치하는지가 무엇보다 먼저 궁금한 것이다. 그러니 다짜고짜 전화기에 대고 OOO 씨가 맞냐고 묻는 것이다. 전화는 어차피 누구나 걸고 받을 수 있는 것이기에 문제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별생각 없이 맞다고 말해버리면 피곤한 일이 생길 것쯤은 너무나 뻔하다. 


"네, 맞는데요. 누구시죠?"


라고 되물으면 이제야 비로소 본인의 정체를 드러내는데 어디서 마케팅 동의한 정보에서 알아내어 전화를 한 업체란다. 이미 내가 맞다고 드러냈으니 아마도 여기서 끊어봐야 다른 사람이 내일이건 모레 건 다른 번호로 다시금 전화를 할 것이다. 이미 덫에 걸려 나의 정체를 만천하에 드러낸 뒤였기에 그 업체에 대고 이제 와서 따져 물어봐야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 한두 번 어리숙하게 당한 경험이 쌓여 이제는 내게도 전화응대 원칙이 생겼다. 먼저 벨이 울리면 섣불리 받지 않고 '앱'을 통해 이 번호가 스팸 신고된 전력이 있는 번호인지 확인하는데, 붉은 아이콘으로 표시되면 그저 받을 필요도 없이 곧바로 차단시킨다. 어차피 새로운 번호로 또 올 테지만 적어도 내 전화번호와 내 이름이 일치하는지의 여부는 파악이 안 된 상태일 테니 스팸전화를 건 사람 입장에서도 달갑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기 때문에 어차피 시차를 두고 새로운 번호로 다시 걸어올 텐데 그 경우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신고된 전력이 없는 새로운 번호라 받기 전엔 그들이 누군지 나도 알 수 없다. 그때 라면 어쩔 수 없이 일단은 전화를 받아야겠지만 우리는 이미 수십 년 전 '밥상머리'에서 교육을 받지 않았던가. 제대로 된 전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판단의 기준은 바로 본인이 누구인지를 스스로 당당하게 그리고 먼저 밝히는가가 될 테니 말이다. 그게 아니라면 받고 난 후라도 '잘못 거셨다'라고 말한 뒤 바로 끊어 차단하면 된다.


물론 이러한 방법은 누군가의 전화를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 가령 취업 준비하는 사람이나 절실하게 무언가를 누군가를 그리고 어떤 상황을 기다리는 입장에서는 실행이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진리는 제대로 된 전화라면 아마도 먼저 본인이 누구인지를 드러내야 정상이다. 그게 바로  전화예절의 첫 번째 원칙이기 때문이다.


그동안 받아야 할 전화를 못 받았는지 혹은 왔어야 할 전화가 안 와서 문제가 되었는지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간단한 원칙만 가지고 불필요한 스팸전화로부터 (조금은) 해방될 수 있으니 이만하면 그 당시에 수십 년 뒤를 내다본 대단한 '밥상머리 교육'이지 않았나.


이제야 비로소 21세기형 새로운 전화 대응 전략이 내게도 확립되었으니 이건 그야말로 '밥상머리 교육'이 다시금 필요한 사항이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진행되던 밥상머리 교육이 퍽이나 효과가 좋았던 것은 우리 세대의 일이었으니, 그 패러다임이 이미 변한 이상 우리 아이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식탁에서 하는 교육은 여간 흥이 안나는 일이라는 점은 십분 이해가 된다. 한번 좋게(?) 변해버린 문화가 다시 그 전으로 회귀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들은 우리의 다음 세대이므로 우리보다 더 한걸 요구해야 마땅하지 않겠나. 이제는 밥상머리 교육을 위해 갈 만한 장소가 극도로 줄어들었고 '패밀리 레스토랑'의 산업 자체가 위축되어 있으므로 내 입장에서도 마찬가지로 교육을 할만한 흥이 좀처럼 나질 않는다(?).


교육의 목적이 가미되려면 분위기도 좋아야겠지만 맛도 좋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주기적으로 반복되어야 그 의미가 극대화되므로 질리지 않도록 여러 장소를 번갈아 이용할 수 있어야 좋겠다. 따라서 이 교육을 진정으로 그리고 반복적으로 시키려면 아마도 그 부흥이 다시 한번 일어나야 할 텐데 20년쯤 지났으면 이제 그 유행이 다시 한번 돌아올 때 아닌가.


거기에 더해 '주 4일제' 논의가 시작되었으니 그야말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할 때가 되었다.

새로운 패밀리 레스토랑의 시대. 그리고 새로운 '밥상머리 교육'의 시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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