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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혁진 May 08. 2021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 옐로우저널리즘 무대에 쏘아올린


 1996년 만화의 기원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만화계는 <Yellow kid> 탄생 100주년과 로돌프 퇴퍼 사후 150주년을 기념하는 과정에서, 만화의 진정한 기원이 유럽인지 아니면 미국인지에 관해 논쟁한 것이다. <Yellow Kid>가 만화의 기원이라는 주장은 물론 부당하다. 그것은 차라리 만화 역사에 대한 무지 혹은 편향에 가깝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린 이 주장을 무조건 배척할 필요는 없다. 진실까지 아닐지라도 여전히 의미 있는 무언가를 헤아려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다음의 질문으로 글에 관한 논의를 시작해보자. 리처드 펠튼 아웃코트(Richard Felton Outcault)(1863~1928)의 <Yellow Kid>(1895~1898)는 어떠한 만화사적 의미를 갖는가? <Yellow Kid>는 독창적인 말풍선을 도입했으며 또한 신문 연재를 통해 만화를 진정한 의미에서의 대중매체로 발전시켰다. 여전히 <Yellow Kid>의 평가에 확신할 수 없다면, 이번에는 1928년 <World>의 아웃코트의 부고를 살펴보자. “고인이 된 아웃코트가 만화의 발명가라는 주장은 관대하지만 한편으로는 잘못된 귀속이다. 하지만 아웃코트가 자신의 재능으로 미국 만화의 오프닝을 열었다고 말한 것과 편집자 몰리 고다드(Morrill Goddard)가 만화 예술이 이 시기를 기점으로 성숙해졌다고 평한 것은 충분히 온당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 <Yellow Kid>가 현대 만화를 정립했다는 주장을 어느 정도 받아들 일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다. 여전히 다뤄야 할 중요한 문제가 남아 있다. 왜 주장과 달리 <Yellow Kid>는 현대적 만화의 형태가 아닌가. <Yellow Kid>에서는 칸이 부재하고 말풍선은 희박하다. <Yellow Kid>는 도리어 <Yellow kid>의 주장을 반증하고 있다. 사실 <Yellow Kid>는 주장되는 만큼 현대적인 만화가 아니다. 그것의 만화사적 업적은 어느 정도 과장됐다. 그럼에도 “1830년 경 제네바에서 최초로 탄생한 만화는 1896년 뉴욕에서 두 번째 걸음을 내딛었다”라는 화해어린 주장은 여전히 유념할 만하다. 오히려 불완전하게 내딛은 걸음이기에 <Yellow Kid>가 근대 만화와 현대 만화 사이에 난 흐릿한 길을 가시화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근대의 만화와 현대의 만화의 경계에서 옐로우저널리즘의 만화적 축제가 시작된다.                                                                                                                                                                    

그림: Yellow Kid, , 1896.11.08.


        

옐로우저널리즘의 용광로 

 <Yellow Kid>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거주하는 뉴욕 빈민가를 배경으로 한 작품이다. 골목의 아이들은 뛰고, 구르고, 소리치며 그 와중에 한 아이는 노란색 셔츠로 독자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이 혼잡한 뉴욕의 골목은 어딘가 윌리엄 호가스(William Hogarth)의 런던 골목을 연상시킨다. 요컨대 두 도시의 표정은 먼 시공간의 거리에도 불구하고 이상하리만치 닮아 있다. 그것은 어쩌면 도시를 지각하는 두 작가의 기민한 감각 때문일지 모른다. 호가스는 유년시절 성(聖)바돌로매 축제에 깊은 인상을 받았고 이후 무질서한 혼돈 속에서 유동하는 축제적 시선을 자신의 작품 속에 담아낸다. 아웃코트 역시 그러하다. 그는 경이로운 이미지를 찾아 뉴욕의 여기저기를 헤맸고 특히 이때 마주친 아이들 그러니까 옐로우 키드의 원형이 될 그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했다. 하지만 여기서 <Yellow Kid>의 비평은 한층 더 엄밀할 필요가 있다. 두 작품의 관계는 표면의 유사함을 넘어 만화사적 계보를 적용할 때야 비로소 정확히 인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구체적으로 아웃코트가 활동하던 19세기 만화계의 지형을 살펴보자. 당시에는 두 가지 만화 양식이 공존했다. 첫째, 풍자화 전통을 계승한 윌리엄 호가스 양식으로 이 양식은 다층적 의미 체계를 구성하고 이에 따라 자유로운 독자의 시선을 장려한다. 둘째, 연속언어의 전통을 계승한 로돌프 퇴퍼 양식으로 이 양식은 이미지의 나열을 통해 의미를 생성하며 그 결과 독자의 시선을 제한적으로 강제한다. 그리고 이 두 가지 양식 중 아웃코트가 택한 것은 다름 아닌 전자 윌리엄 호가스 양식이다. 우리는 이 같은 선택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것은 퇴퍼 이전으로 돌아가는 퇴행적 시도일까. 그렇게는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퇴퍼 양식이 호가스 양식보다 시간적 선후관계가 나중일지라도 또한 퇴퍼의 양식이 현대 만화와 유사할지라도, 우리는 호가스의 양식을 섣불리 낡은 양식이라 판단해선 안 된다. <Yellow Kid>가 연재될 시기만 해도 두 양식 중 어느 양식도 일방적 우위를 점하지 못했다. 더군다나 두 양식은 자주 한 작품 내에 결합되곤 했는데 이때의 내적 긴장(칸과 페이지, 전체적 시야와 국소적 시야 등)은 이후 만화의 주요한 미학으로 자리 잡는다. 즉 두 양식의 우열은 가릴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오직 문제가 되는 것은 작품의 주제에 얼마나 부합하느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렇게 본다면 아웃코트의 선택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선택처럼 느껴진다. 수많은 사건과 인물로 뒤섞인 호가스 양식이야말로 <Yellow Kid>의 커다란 전면을 빠짐없이 채워 넣을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이처럼 19세기의 아웃코트는 18세기의 윌리엄 호가스의 유산을 계승한 작가이다. 다만 호가스의 충실한 계승자라고까지 말할 수는 없는데, 두 작가의 작품 사이에는 도시적 감각이라는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어떤 결정적 단절이 존재한다. 호가스의 경우 다양한 세부를 조직할 견고한 풍자적 체계가 존재했지만 반면 아웃코트에게는 따라야할 어떤 전체적 주제도, 어떤 일관된 형식도 존재하지 않았다. 굳이 아웃코트가 따라야할 것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대중들의 열렬한 관심이었다. 당시 옐로우 저널리즘의 신문사들은 대중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는 무엇이든 이용해야 했다. 재미없는 신문은 말 그대로 죄악이다. 그리고 아웃코트는 여기에서 자신의 천재적인 재능을 발휘한다. 이상하고 멋진 것들의 관심 만약 그렇지 않다면 기어코 그렇게 만들려는 옐로우 저널리즘의 정신으로 <Yellow Kid>를 동시대 대중문화의 용광로로 창조한 것이다. 먼저 일요일 컬러증보판의 첫 작품 제목을 보자. <Down in Hogan's Alley>이라는 제목은 연극 <Reilly and the Four Hundred>의 노래 ‘Maggie Murphy's Home’에서 영감을 받은 것이다. 빈민가의 아이들이라는 주제 역시 마찬가지다. 그것은 1890년대 <Life>에서 인기를 얻은 마이클 안젤로 울프(Michael Angelo Woolf)의 만화로부터 차용하였다. 다음으로 <Yellow Kid>의 배경이라 할 골목은 어떠한가. 건물 외벽은 자본주의 상징인 간판과 광고로 뒤덮여 있고, 골목 안쪽으로는 보드빌의 춤과 노래와 즉흥극이 넘실거린다. 더욱이 느슨하게 엮인 이미지들 사이에는 어린 주인공이 무색할 정도로 선정적이게 멜로드라마의 과잉적 도상과 옐로우저널리즘의 추락사 이미지가 삽입된다.

 당연히 대중문화를 뒤섞은 혼성적 특성이 아웃코트만의 고유한 개성이라 할 수 없다. 도리어 옐로우 저널리즘 시대의 매체라면 가져야 할 공통된 소양에 가깝다. 그런데도 <Yellow Kid>가 퓰리처, 허스트 두 신문사가 스카웃 경쟁을 벌일 만큼 대중들을 사로잡은 까닭은, 동시대 이미지를 나열하는 것을 넘어 각각의 이미지를 연결해 세기말의 혼성적 도시 이를테면 현실 뉴욕과는 또 다른 평행우주를 창조했기 때문이다. 아웃코트는 이미지를 깊이 있는 공간에 체계적으로 배치하지 않는다. 대신 이미지 옆에 이미지를 계속해 덧붙여 나가며 종국에는 어떤 공백도 허용하지 않으려는 듯 강박적으로 이미지를 채워 넣는다. 배경과 형태가 뒤섞이고 이 모든 것은 다시 깊이가 부재한 평면으로 환원된다. 이미지의 조각들로 이어진 콜라주적 세계.  콜라주 세계를 보는데 있어 이상적 거리란 요구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서거나 혹은 저 멀리 물러서거나 읽는 이의 마음이다. 매주 일요일 <Yellow Kid>를 읽고 있을 독자들을 떠올려 보자. 그들은 <Yellow Kid>를 주의 깊게 들여다보며 물결치는 이미지를 따라 뉴욕 이곳저곳을 누빈다. 그러고는 문득 물러서 손에 쥐고 있는 신문을 조망할 때면 평면의 표층에는 그제야 뉴욕 골목의 전체상이 완연히 떠오른다.                                       




(왼) 추락 이미지, 1895.5.5, (오) 1898년 뉴욕 브로드웨이 간판, 광고판 이미지



         

앵무새가 말풍선으로 말을 열다

 19세기 말 현대 만화의 영토는 급격히 확장된다. 경쟁 중인 타 대중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며 특히 동시대인에게 놀라움을 선사한 사진, 현미경, X-ray, 전화기 같은 근대적 발명품에 깊은 관심을 보인다. 가령 만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크로노포토그래피(Chronophotography)’를 보자. 연속된 이미지로 구성된 이 선구적인 사진 작업은 운동을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공했으며 이를 통해 칸의 간격에 관한 전면적 혁신을 추동케 한다. 그리고 1876년 발명된 전화기 역시 그 만큼은 아닐지라도 별표, 느낌표와 같은 만화 기호에 영감을 불어넣는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전화기가 이러한 만화 기호에 자신의 권리를 전적으로 내세울 수 없다. 신경계의 자극이라는 의미를 덧붙였을지 몰라도 이 일련의 기호들은 사실 중세, 고딕 삽화의 상징기호로부터 기원한 것이다. 근대의 만화 기호와 근대 이전의 상징기호 사이의 복잡하고도 모호한 관계. 이를테면 근대 이전의 상징기호를 계승하면서 근대적 경험과 감각을 중첩한 것이 바로 현재의 만화 기호이다. 


 아웃코트가 발명했다고 간주되는 말풍선 역시 이와 유사한 이중적 기원을 따르고 있다. 예컨대 <Yellow Kid> 이전의 말풍선 계보를 되짚어 보자. 말풍선은 로돌프 퇴퍼(Rodolphe Töpffer)의 작품에서 약간의 흔적을, 이후 조지 크루이크섕크(George Cruikshank)의 작품에서 보다 명확히 등장한다. 게다가 글과 그림을 이어주는 기능을 고려하면, 말풍선의 기원은 필랙터리(phylactery), 두루마리(scroll, bandrole)라 불리는 중세, 고딕 삽화의 말풍선으로까지 소급가능하다. 하지만 오해해선 안 된다. 형태의 유사성이 기능의 동일성을 보장하진 않는다. 현재 우리에게 소리를 시각적으로 재현하는 말풍선이 자명하다 할지라도, 사실은 그렇지가 않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Yellow Kid> 이전의 대다수 말풍선은 소리를 재현하는 기호가 아니다. 그것의 주요 기능은 인물의 이름을 지시하거나 이미지의 내용을 요약 제시하는 것이다. 특히 풍자화를 계승한 영국만화의 경우 이러한 저자 논평 및 자기 재현적 장치를 보다 정교한 형태로 발전시켰는데, 상징과 암시를 해석하기 위한 열쇠로 ‘라벨(label)’이라 불리는 말풍선을 활용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근대 만화와 현대 만화의 경계에 위치한 <Yellow Kid> 역시도 영국 풍자화의 라벨을 광범위하게 사용하고 있다. 광고, 간판, 배너, 표지판, 주인공의 노란셔츠 같이 문자를 기입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라벨로서 기능한다. 게다가 <Yellow Kid>는 경계에 걸친 자신의 존재를 암시라도 하는 듯 라벨과 현대적 말풍선 사이에 위치한 과도기적 말풍선을 도입하기도 한다. 그것은 타원의 형상을 취하지만 아직 현대적 말풍선의 기능(액션과 소리의 동기화, 화자와 대사의 동시성)을 온전히 수행하지는 않는다. 매회 고층건물에서 추락하는 한 소년을 보자. 절박한 몸짓에도 소년은 어떠한 비명도 지르지 않는다. 다만 말풍선으로 정적이고 관조적인 자기 논평만을 남길 뿐이다.     

 

그렇다면 아웃코트는 어떻게 현대의 말풍선 즉 소리를 재현하는 만화 기호를 사용하게 된 걸까? 그것은 근대적 기계, 에디슨이 발명한 축음기를 통해서다. 아웃코트는 과거 에디슨 연구소의 일러스트 작가로 활동한 경력이 있다. 파리 박람회에 참가했던 그는 축음기의 엄청난 대중적 성공을 눈앞에서 목도했다. 그러니 축음기를 만화에 도입하는 것은 노란색의 피가 흐르는 아웃코트에게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축음기를 처음부터 <Yellow Kid>의 혼잡한 골목에 정착시킨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서 아웃코트는 대신 앵무새를 이용한다. 앵무새가 경계적 존재로서 축음기를 대신하여 말하는 기계로 기능하게 된 것이다. <The Yellow Kid and His New Phonograph>(1896)는 이 같은 앵무새와 축음기의 특별한 관계를 증언하고 있다. 축음기가 재생되고 이어 그 안에서 앵무새가 튀어나온다. 축음기와 앵무새는 가족유사성을 공유한 것처럼 음성을 발성하는 게임에 참여한다. 말풍선은 이제  더 이상 라벨과 같이 작품의 구조 속에 종속된 기호가 아니다. 앵무새의 말풍선은 순수한 소리의 이미지로 말 그대로 날아오른다. 물론 앵무새만이 말풍선을 사용하는 유일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염소와 고양이 때론 인간도 말풍선을 사용한다. 하지만 앵무새가 여전히 특권적 존재인 것은 그 어느 존재도 설사 더 많은 소리를 내어 말할지라도 말풍선의 기원을 직접적으로 지시하지는 못한다.                        



그림: The Yellow Kid and his Phonograph, , 1896.10.25.


                                                       

오디오 비주얼(audiovisual) 시대로의 이행

 아웃코트는 <Yellow Kid>에서 소리를 시각화한 말풍선을 발명한다. 그것은 이후 오디오비주얼 시대를 예비한 만화적 혁신이다. 하지만 이러한 혁신이 즉각적으로 수용된 건 아니었다. 아웃코트 본인만 해도 말풍선보다 전통적인 라벨을 선호했다. 말풍선의 실험이 본격 실행된 건 그로부터 몇 년이 지난 1900년경 무렵부터다. 게다가 그림과 말풍선을 결합하는 어려움은  이전 축음기와 키네토스코프를 결합한 에디슨의 기술적 문제와는 또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차라리 이후 유성영화의 등장으로 영화인이 겪었을 어려움과 훨씬 더 닮아 있다. 이런 의미에서 만화가들은 말풍선을 동적인 세계에 개입하는 문제 달리 말해 사운드 이미지와 액션 시퀀스를 동기화하는 문제에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 과거의 말풍선은 발화자가 아닌 전지적 작가의 목소리를 대변했고 또한 변화하는 동적인 세계가 아닌 무시간적 상징 세계를 재현했다. 하지만 새로이 출현한 말풍선은 더 이상 세계 외부에 머물지 않고 세계 내부의 시공간으로 진입한다. 소리를 시각화하고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을 연결하며 더 나아가 세계의 시공간까지 조직한다. 이것이 다름 아닌 옐로우저널리즘 시대의 만화가들이 앞으로 다가올 시대를 대비해 2차원 평면에 오디오비주얼 세계를 구축한 방식이다. 결국 우리는 아웃코트에 관하여 이렇게 말할 수 있겠다. 옐로우저널리즘 무대에 쏘아올린 말풍선으로 현대 만화의 새 문을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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