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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산 Feb 20. 2020

계획적으로 살란 말야

<기생충>

(스포일러)


(♬ Jung Jaeil - The Belt of Faith)


어떻게 해야 사회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사회가 어떻니 운운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이상했다. 사회 운운은 젠체하기나 위선, 혹은 처지에 대한 개인적 분노나 자기만족으로 보였다. 간혹 진정성이 느껴지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사람들이 신기했다.



기생충이 유명세를 떨치던 무렵엔 유튜브에서 'Bong'이나 'Par'만 쳐도 봉 감독 인터뷰 영상이 추천됐다. 그중 골든글로브 시상식 직전에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오른 감독들이 한 인터뷰에서, 봉 감독은 "당신의 영화에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요소들은 얼마나 중요한가요?"라는 사회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출처/51분 20초)


"정치·사회적인 메시지를 꼭 넣으려고 처음부터 그 깃발을 들고 휘두르는 건 아닌데, 나 자신을 장르영화감독이라고 생각하고 영화가 보여주는 2시간 동안 관객들을 제압하고 싶어요. 히치콕이 그랬던 것처럼. 그게 제 가장 1차적인 목표긴 한데요. 그렇지만 그렇게 관객들을 빨아들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인간에 대한 이해나 접근이 있어야 되고, 인간을 한 명 한 명 파고들다 보면 또 어쩔 수 없이 그 인간이 속한 사회나 시대가 나오는 거거든요. 그래서 자연스럽게 시대나 정치로 확장될 수밖에 없는. 처음에 그걸 목표로 하지 않았더라도."


사회는 사람들의 총합이 아니어서 그 자체로 특징이 있다. 구조나 맥락이나 상황이 있고 그건 사람들에게 무슨 짓을 저지른다. 라고만 생각했는데, 사실 생각이 가닿아야 할 지점은 구조나 맥락이나 상황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관한 의문이다. 문광을 쫓아낸 건 연교였고, 그 뒤에 있던 건 기생충 가족이었고, 문광을 죽인 건 기우였고, 기정을 죽인 건 근세였고, 동익을 죽인 건 기택이었고, 기택을 자극한 건 동익이었다.


이 연쇄 살인을 이해하기 위해선 가난과 계급을 생각해야 하고, 그 반대도 마찬가지다. 가난이 사람들을 꿰뚫는다. 어떤 부조리도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되지 못하면 의미가 없다. 이 살인마들의 이야기는 악인의 서사가 아니라 가난의 서사다.


기택은 영화에서 두 번 눈을 가렸다. 대피소에서 기우에게 무계획을 이야기할 때, 테이블 밑에 숨어 부자 커플이 냄새를 말하는 걸 들었을 때. 부끄러움때문에 아무 계획이 통하지 않는 깜깜한 어둠 속으로 도망치는 것처럼. 몇 번의 실패로 '무계획'을 말하던 그가 지하의 문광 커플에게 내지른 말은 계획도 없느냐는 타박이었다.


계획은 스스로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겠다며 그은 선이다. 계획적으로 살려면 선을 넘지 않아야 한다. 동익은 그걸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언제나 선을 넘을 수 있기 때문이고 또 때때로 넘기 때문이다. 운전기사를 카섹스나 마약을 하는 이상한 사람으로 취급해 해고했지만 정작 본인들이야말로 언제나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다. 힘과 능력으로 계획을 세우고 수행할 수 있는 눈에 계획도 없는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지.


여하간 아직도 많은 경우 사회 운운은 젠체하기나 위선, 혹은 처지에 대한 개인적 분노나 자기만족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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