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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산 Feb 03. 2021

우리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내언니전지현과 나>


(♬ 말랑피아노 - 바람의나라 12지신의유적 bgm piano cover)


"개재미없네."


라고, 작년 여름에 론칭한 바람의나라:연(바연)을 플레이하는 나를 본 친구가 자기도 다운을 받고 몇 분쯤 하더니 말했다. "이걸 왜 해?"라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며 이 노잼겜에 대체 왜 나를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짓던 친구는 튜토리얼도 끝내지 않고 게임을 지웠다.


12지신의유적에서 열심히 사냥을 하고 있던 나는 혀를 쯧쯧 차며 "개노잼 메이플이나 하는 니가 뭘 알겠냐"라고 빈정댔는데, 친구는 pc메이플은 물론이고 모바일 메이플까지 다운받아 온갖 직업을 섭렵하고 현질까지 한 진성 메이플빠였다.


나의 의문은, 바람이나 메이플이나 도트 그래픽으로 구현된 조그만 캐릭터를 가지고 줄창 사냥하고 레벨업을 하고 새 스킬을 익히고 전직을 한다는 점에서 하등 다를 바 없는데 왜 이놈은 메이플에는 그렇게 열정적이면서 유독 바람에만 평가가 이렇게 박할까 하는 것이었고, 그 의문은 5초 만에 해결된 바 바람의나라가 한창 흥하던 2000년대 초반에 친구는 한국에 없어서 바람을 하지 않았고 메이플스토리가 한창 흥하던 2000년대 중후반엔 한국에 있어서 메이플을 열심히 했기 때문이었다. 기껏해야 도트 그래픽으로 구현된 조그만 캐릭터를 가지고 줄창 사냥하고 레벨업을 하고 새 스킬을 익히고 전직을 하는 게 전부인 게임을 하는 이유가 재밌어서가 아니라는 뻔한 사실은 나와 친구의 사례에서도 이렇게 쉽게 증명된다.


호동서버에서 어렵게 구한 백현모를 들고 흑해골굴과 도깨비굴을 전전하던 내 옛날의 '도적이된오공'(실제 도적이었다)은 친구들 사이에선 최고 실력캐였고 pc방에선 선망의 대상으로서 내 뒤에 초딩 선후배 3~5명은 기본으로 서서 사냥 장면을 보고 감탄했으며 국내성3성 왕궁에 함께 사는 가족(아빠는 도사, 엄마는 주술사, 형은 전사였다)이 있었고 주술사 애인도 있었으며(!) 새벽 2~3시경 한고개두고개세고개네고개나 부여대미궁을 쏘다니던 어른들(대학생이었던 걸로 기억한다)과 어울리기 위해 새벽에 엄마 몰래 일어나 컴퓨터를 하다 삼일도 안되고 걸려서 컴퓨터 1주일 금지를 당하고도 정신을 못 차리고는 바로 다음날 새벽부턴 엄마가 컴퓨터 불빛을 못 보도록 이불을 뒤집어쓴 채 미궁을 탐험했고 며칠 뒤 새벽엔 토끼왕굴에서 다 갑자기 이불이 홱 걷어내어 지길래 소스라치게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가 분노가 어린 엄마 얼굴을 마주하게 되기도 했었고(이때의 충격은 대단해서 그때 내가 토끼왕굴에 있었다는 것마저 기억하고 있다. 후일 확인해보니 엄마는 그때 화가 났다기보단 정말 어이가 없었다고 했다) 머지않아 전화비가 너무 많이 나오는 걸 괴이하게 여긴 엄마는 내가 몰래 정액제 결제를 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초딩주제에 백현모를 들고 흑해골굴에 갈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난 뒤지게 혼나고 울면서 엄마에게 캐릭명과 비밀번호를 고해바치며 캐릭터를 떠나보내야 했고 바람의 시절은 그렇게 끝났다.


그러니까 바람의 나라란 도트 그래픽으로 구현된 조그만 캐릭터를 가지고 줄창 사냥하고 레벨업을 하고 새 스킬을 익히며 백현모를 들고 흑해골굴에서 사냥하는 게임이 아니라 친구와 선후배와 가족과 애인과 어른들과 같이 놀던 장소였었고. "임마 내 인생이 바람이야!"라는 시청자 한정 여포 바통령의 외침에 나를 포함한 우중이 즐거워한 건 그런 이유 때문이고.


십 년쯤 지나 바연을 하는 나는 빛바랜 사진을 보는 기분으로 익숙하고 정겨우며 추억을 솔솔 불러일으키는 국내성과 사냥터의 그래픽 사이사이를 유랑하고 있었고(토끼왕굴에 진입했을 때 느껴졌던 카타르시스란!) 그런 의미에서 그 모든 추억을 짓밟아버린 바연은 정말이지 의미 그대로 좋망겜(좋아하지만 망한 게임)이었다. 친구는 정확히 같은 마음으로 개미굴이나 자쿰을 대했겠지.


누갓겜! 그래서 우리 중 그 누구도 일랜시아를 망겜이라고 불러선 안 되는 것이다. 나도 초등학교 때 잠시 했었던, 사운드가 귀여웠던 일랜시아. 일랜시아 20주년 자축 파티 때 어느 유저가 말했듯, 답답한 8~90년대생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건 행복한 일이다. 좋망겜 바연은 얼마 안 가서 지웠다. 바람 구 유저는 돌아갈 곳이 없어 행복하지 않다.




"연애를 하려면 어느 정도 미래를 요구하는 법"이라고 까뮈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사람들은 '내일 죽는다면 오늘 뭘 할까'라는 질문을 할 만큼 오늘과 내일, 현재와 미래의 끈끈한 관계 속에서 지금을 살아간다. 오늘의 행복이 지속가능한지 아닌지도 알 수 없는 막막함 속에서 행복을 온전히 만끽할 수 있을까. 미래가 몰살된 연애는 가능하지 않거나, 얇은 한 가닥의 실처럼 아슬아슬하다. 심지어 이별이 뻔한 미래조차 연인 사이엔 필요하다. 우린 헤어질 거야,라고 속으로 되뇌면서 더할 나위 없이 즐겁게 웃을 수 있다. 산 증인은 많을 것이다.


행복하든 불행하든 즐겁든 슬프든, 내일은 어떨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가 오늘의 지반을 단단하게 만든다. 살아가는 일이라고 다를까. 내일은 행복할 거야, 불행할 거야, 즐거울 거야, 슬플 거야, 어쨌든 내일은 어떨 거야,라는 담보가 필요하다. 그게 있어야 오늘의 할 일을 정하고 오늘을 산다. 그게 없으면 다른 무엇이라도 붙잡아야 한다.


"일랜시아 왜 하세요?" 아직도 일랜시아를 하는 사람들은 끊임없이 오프라인의 현실을 소환했다. 쳇바퀴돌듯 소화해야 했던 학창시절의 학원 릴레이, 줄줄이 낙방했던 공모전과 대외활동, 칼같은 입사시험, 잘 먹고 잘 살아야 한다는 압박, 앞으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막막함과 무력감, 깜깜한 미래. 사람들을 낡은 온라인 세계로 잡아끄는 건 그런 것들이었다. 감독이 밑도 끝도 없이 던지고 다녔던 "일랜시아 왜 하세요?"라는 질문 속엔, "우리 미래에도 행복할 수 있을까요?"라는 잔인한 자조가 숨어있다. 그 자조는 너무 잔인해서, 내언니전지현으로 하여금 지금의 작은 행복을 괄시하는 게임사 기어코 찾아가게 만들었던 건지도.


내언니전지현과 함께 일랜시아를 즐기던 한 친구는 일랜시아를 하며 즐거웠던 때를 추억하다가, 앞으로 그때처럼 즐거울 수 있을까, 지나가듯 말했다. 모르겠다. 어쩌면 지금 우리에게 응답하는 건 박제된 과거뿐이다. TV 속에서 늘 보던 예능인과 정치인의 늙어가는 얼굴만 마주하는 건, 어차피 함께 어린 동년배들끼리 고작 몇 년이 흘렀을 뿐인데 장난스레 서로 '그땐 그랬지'를 말하는 늙은이 취급을 하는 건, 바람의나라와 메이플스토리와 일랜시아에 아직도 열광하는 건, 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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