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를 신성하게 만드는 일
금요일 오후, 프랑소와가 집에 가는 길에 나를 내려주기로 해서 그의 차를 타고 함께 퇴근하는 길이었다. 자연스럽게 지난 일주일 동안의 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우리는 같은 팀이어서 서로 하는 일을 아주 잘 알고 있는데, 그 주에 프랑소와가 맡았던 일이 진행이 잘 안되었던 것을 기억하고 있던 차였다. 그래서였는지 평소보다 조금 무거운 금요일 퇴근길이었다. 지지부진했던 업무를 복기하던 프랑소와가 말했다.
“Je ne suis pas très fier de moi cette semaine.”
(이번 주의 내 모습이 별로 자랑스럽지가 않아.)
나는 살짝 놀라서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봤다. 평소처럼 정면을 응시하며 운전을 하는 프랑소와가 뭐랄까... 예뻐 보여서였다.
일이 잘 안돼서 ‘실망스럽다’, ‘기분이 안 좋다’ 혹은 ‘스트레스 받았다’가 아니라 ‘스스로에 대해 별로 자랑스럽지 못하다’라는 말이 참 예뻤다. 비록 매사에 성급한 면이 있어서 가끔 어이없는 실수를 하곤 하지만, 그가 매 순간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 하고자 한다는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뭔가가 뜻대로 되지 않았을 때 우리는 알게 모르게 남 탓을 많이 한다. 그 남이라는 대상은 누군가일 수도 있고 혹은 상황이나 시스템일 수도 있다. 아주 큰 실수를 의도적으로 하지 않는 이상, 일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이유가 내 잘못만이 아닌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런저런 외부적인 핑계를 말하기 전에 프랑소와는 자신을 먼저 돌아보는 듯했다. 정년퇴직이 얼마 남지 않은 60세 동료의 업무를 대하는 한결같은 마음이 유난히 아름답게 느껴졌다.
시대의 흐름과 대중의 관심사를 한눈에 알 수 있다는 서점에 가보면, 회사와 직장생활에 대한 책들이 어마어마하게 깔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브런치에 올라오는 글들만 봐도 직장이라는 키워드는 강력한 스테디셀러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직장에서는 삶에서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일들이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이거야 말로, 직장을 다녀도 안 다녀도 복불복이다.
그래서인지 직장에 대해서라면 입사, 퇴사, 인간관계, 승진, 혹은 사내연애까지 뭐 다루지 않는 주제가 없을 정도다. 그중에서도 요즘엔 퇴사라는 키워드가 유행인 듯 보인다. 사회적인 트렌드라면 뭐 이의는 없다. 단지 개인적으로 안타까운 것은, 퇴사나 전업 같은 극단적인 변화 말고 회사 생활에서의 기본적인 예의와 그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이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그 신성함에 대해서 말이다.
20년이 넘도록 직장생활 진행 중인 나 또한, 직장 안에서 삶의 많은 모습을 겪어왔다. 하지만 경험이 쌓여갈수록 무뎌지는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일의 신성함이나 일을 대하는 마음가짐 같은 것들이 관성에 밀려나 버리곤 한다. 그 와중에 쉽게 짜증을 내거나 타인을 판단하고 단정해버리는 꼰대 짓을 하기도 한다. 나를 세워서 돌아보지 않고 주변만 돌아보면서 이유를 찾을 때가 그렇다. 내가 60살이 될 때까지, 프랑소와처럼 진실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으려나 갑자기 궁금해진다. 뜨끔하다.
그날 이후, 나는 종종 시간을 돌아보며 묻곤 한다. 오늘 하루가, 혹은 지난 일주일이 나 스스로에게 떳떳했는지 물어보는 것이다.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중국에서 보내오는 시료가 2주일이나 연착을 하던, 예고 없던 연구실 정전 때문에 며칠씩 일정이 미루어졌든, 동료가 장비를 고장 내 먹었든 간에, 주어진 시간과 상황 안에서 과연 나는 얼마나 최선을 다 했는지를 복기하는 것이다. 그럴 때면 내 마음이 고요히 처음의 자리로 돌아오곤 한다.
그대를 향한 다정한 마음을 씁니다.
- 파리제라늄_최서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