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채널 덕분에 살짝 엿볼 수 있는 그분의 일상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한 편의 시와 같았다. 영상에 잘 어울리는 적절한 음악이 자극적이지 않은 덕분에 마당에서 지저귀는 새소리도 잘 들렸다. 어떤 필터를 쓰신 건지 모든 화면은 따뜻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딱딱한 일상 속 레모네이드 한 잔처럼 순수하고 싱그러운 느낌이 좋아서인지, 매 영상마다 수십만 명의 구독자들이 나처럼 드나드는 것을 보는 일도 내 일처럼 기뻤다.
그리고 어제도 그분의 영상을 클릭하고는 나만의 힐링을 즐기려던 순간,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지는 것을 느꼈다. 그 순간 아름다운 영상 위 자막에는 이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새로 이사 온 집에는 식세기가 없어서 아쉬워요
문장도 내용도 아무 문제가 없는 표현이다. 그런데 내 마음을 불편하게 했던 것은 바로 식.세.기. 라는 단어였다. 몇 달 전 친구가 문자로 적어 보냈었던 말이었는데, 그때는 그게 뭔지 몰라서 되물었던 단어다. 덕분에 지금은 식.세.기.가 식기세척기의 준말이라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여전히 모르겠는 것은 왜 식기세척기라는 멀쩡한 단어를 두고 굳이 식.세.기.라고 부르냐는 것이다.
그 두 글자를 더 쓴다고 해서 자막 넣을 자리가 크게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게다가 말로 한다고 해도 그 두 글자가 없다고몇 초가 더 절약되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해 못 한 이들이 되묻기라도 한다면 다시 설명해주는 시간이 손해다. 아니면 요즘 사람들은 모든 걸 줄여 말하는 것이 더 트렌디해 보인다고 믿는 건가?
나는 축약어로 말하는 습관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보통은 지적질을 하지 않고 넘어가는 경우가 더 많다. 그런데 이 단어는 유독 마음에 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가 너무 안 예쁘기 때문이다. 처음 식세기라는 단어를 소리 내어 읽었을 때 무척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도 눈으로 읽어도 마음속 발음 때문에 자꾸 놀란다. ‘식쎄기’라니. 내 귀에는 영락없이 이 새끼 저 새끼라는 말처럼 여전히 거칠고 무섭게 들릴 뿐이다.
시처럼 아름다운 영상과는 전혀 어울리는 않는 단어의 등장에 나는 크게 실망을 했다. 우리말은 이 지구 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언어인데, 왜 이렇게 미운 말을 자꾸만 쓰는 걸까? 나는 한국어를 궁금해하는 그 누구에게도 식세기를 설명할 자신이 없다. 아니, 하고 싶지 않다. 이것은 나의 모국어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자 한국어의 품격을 지키기 위한 자발적 시위다.
꼬박꼬박 식기세척기라고 말하며 살아갈 내가 누군가에게는 한없이 느리고 촌스러워 보일지도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해야 내 마음이 더 좋다. 세상의 일들에 대해서 남들이 다 그러니까 라는 이유 말고 한 번쯤 멈춰 서서 스스로가 어떻게 느끼는지 생각하면서 살아본다면 어떨까? 내가 지켜 나가고 싶은 작은 것들을 발견해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품격을 만들어가는행운을 만날 수 있을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