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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억이응 Jan 11. 2018

책 읽는 여자

마리 로랑생의 '책 읽는 여자'

                                                                                                                                                                                                                                                                                                                                                           월요일 아침 눈이 내렸다. 우산을 쓰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눈이 내리고 있었다. 오랜만에 폭설이 미술관 나들이에 낭만을 더 해주었지만 엄청나게 늦었다. 평일에 눈까지 내려서 인지 관람객이 거의 없었다. 그림을 바라보는 시야에 꼭 사람 머리가 껴있곤 했는데 오랜만에 그림만을 ‘감상’하러 전시장에 온 느낌이 들었다. 함께 전시 보러 간 k는 지난달 서양미술사 책을 같이 읽었던 나보다 한 살 어린 애둘 키우는 맘이다. 내과 전문의 의사지만 일주일에 3번 잠깐 파트로 일하고 대부분은 책을 읽고 토론 모임에 참석하거나 도서관 강의를 들으며 애들 키운다. 먼저 도착한 그녀는 도슨트 코스를 들으며 진단서를 쓴 듯 팸플릿에 빼꼭하게 메모한 것을 보여줬다.


-언니 보여 줄라고요.

격정 시대 속에서 드라마틱한 삶을 산 마리 로랑생의 예술인생과 달리 그림은 소녀적이며 포근하고 나른했다. 소녀가 좋아할 만한 인디언 핑크에 경계선이 없는 윤곽이 포근했고 눈과 눈 사이가 멀고 초첨이 흐린 인물 속에 나른함이 깃들여 있었다.


-언니 저 신경 쓰지 말고 천천히 봐요.
 한 시간이나 지각한 건 나인데 미안한 마음을 먼저 써버리는 그녀.
     
점심시간이 넘어가고 있었다.

늦은 나는 벽면에 써진 글자들을 빠짐없이 보고 모든 그림들에 눈 맞춤을 짧게 했다 길게 했다 하며 시험 10분 전 집중력으로 그림들을 봤다. 그중 오랫동안 바라봤던 작품이 ‘책 읽는 여자’였다. 찻잔이 놓인 동그란 작은 탁자에 오른쪽 팔꿈치를 대고 비스듬한 자세로 책을 보고 있다. 그녀 옆엔 하얀 강아지가 주인과 같은 눈빛을 하고서는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옅은 회색과 분홍이 그녀의 풍경을 채우고 있다. 하얀 책 페이지에 글자가 없다. 책을 보지만 글자는 보이지 않는 상태. 나도 겪어본 익숙한 상태이다. 그림 속 그녀는 무슨 책을 읽다가 생각에 빠진 걸까?


책을 읽다 갑자기 멍해지는 시간. 느닷없이 예전 그 남자가 떠오르는 문장에 멈칫해 순식간에 10년 전으로 돌아가기도 하고 생뚱맞게 일상 속에 놓인 잡무가 떠오르기도 했다. 빨래나 돌릴까? 같은... 책 속 주인공은 처절한 고통 속에 힘겨워하는데 스타벅스에 편히 앉아 커피를 마시는 내가 인지된 순간 멍해지기도 했다. 이야기 속 주인공이 네가 정말 내 고통을 알긴 해?라고 물을 것만 같다. 눈으로 글자를 바로 보지만 글자가 내 눈 안에 박히지 못하고 흩어져 날아가 버릴 때는 또 있다. 어려운 책을 읽을 때다. 유명하다고 해서 문학적 가치가 높다 해서 노벨상 수상작이라 해서 있어 보이고 싶어서.. 여러 이유로 벅찬 책들을 붙들고 읽어 내려갈 땐 특히 자주 먼 산을 보게 된다. 오르한 파묵은 “조이스 같은 어려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우리 두뇌 한구석에서는 조이스 같은 작가를 읽고 있는 우리 자신을 축하하느라 분주합니다.‘라고 말했다. 내 두뇌는 축하보다는 힘들다 불평을 좀 하느라 자꾸 머리 회전이 중단된다.           


                                                                                                                                                                                                                                                                                                                                                                                                                                                                                                                                   저 그림 속 그녀가 책 읽는 시간은 언제쯤인 걸까? 가볍게 모닝커피 하며 아침 독서를 하는 것일까? 마리 로랑생처럼 그림을 그리다 잠시 독서를 하는 낮일까? 모두가 잠든 늦은 밤일까? 아님 나처럼 불면증이라 새벽에 읽는 것일까? 이 고요한 시간에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나의 시간을 통제하는 책 읽는 시간. 책을 열고 닫고 현실과 비현실을 넘나들며 마음껏 감정을 쏟아내는 그 시간 속에 잠시 멍해짐조차 가치가 있는 듯 심오하다. 책을 들고 먼 산을 보는 이의 모습은 멋지다. 그래서 그림 속 그녀 손에 책을 없애고 표정만 봤을 때와 책이 함께 있을 때의 느낌은 확연히 다르다.

     
전시장을 나와 k와 한가람 미술관 맞은편 두부 집에서 점심을 먹었다.
-저희 엄마는 제가 책 읽는 거 되게 싫어해요. 아무 쓸데없다 면서. 돌아가신 저희 아빠가 엄청 책을 읽어대셨는데 돌아가시고 나서부터 엄마가 저한테 그런 얘기 자주 해요.
-근데, 사실 정말.. 아무 쓸데가 없긴 하지.
-그러게요. 그냥 좋아서 읽는 거죠.
-맞아 그게 다지....
     
처음에 책 읽는 이유가 있는 것 같았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속 테라자가 안나 카레리나를 들고 토마스를 찾아갔던 이유처럼 나도 영혼에 대해 생각하는 사람임을 늘 증명하고 싶어 책을 읽다. 하지만 지금은 그냥 좋은 것뿐이다. 그 이야기가.  그 답 없는 물음들이. 글자가 보이지 않는 멍한 시간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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