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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선로 위의 인간 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미키17》을 곁들인

by 허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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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d steel, break the chain

이제 선택해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설국열차의 차가운 철로 위를 질주하는 열차. 끝없이 반복되는 선로 위, 인간은 어디를 향해 가고 있을까? 그들은 어째서 멈추지 못하는가?


기억을 더듬어 보면, 봉준호 감독은 일관되게 한 방향을 향해 걷는 사람들을 그려왔다.


수직적 구조의 반지하 집에서부터 수평적 구조의 열차, 그리고 이제는 행성 간 탐사선까지. 《기생충》에서 삶의 단면들을 오르내리며 계급을 탐색하던 시선은, 《설국열차》에서는 앞과 뒤로 나뉜 폐쇄적 사회로, 《미키17》에서는 차라리 복제 가능한 인간이라는 존재로까지 밀어붙여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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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국열차》는 빙하기로 돌입한 지구를 배경으로 한다. 인류는 ‘윌포드’가 만든 열차 안에서 살아간다. 앞칸은 권력과 특권이, 꼬리칸은 쓰레기와 저항이 자리 잡는다. 모든 것이 질서 있게 반복되고 유지되는 시스템 안에서, 주인공 커티스는 선로를 거슬러 올라간다. 끝을 보려는, 아니 어쩌면 끝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은 마음 하나로.


그리고 《미키17》. 지구를 떠나 개척 행성 ‘니플하임’에 도착한 인류. 그곳에서 미키는 ‘익스펜더블’이라는 이름으로 복제되어 또다시 살아난다. 죽어도 죽지 않는다. 기억은 이어지고, 육체는 프린트된다. 하지만 이 무한한 재생은 열차의 순환처럼 절망의 반복일 뿐이다. 차이점이 있다면, 설국열차의 꼬리칸은 물리적으로 좁고 차가운 공간이었다면, 미키의 세계는 복제된 ‘자신’이라는 존재 안에 갇힌 감옥이다.


두 작품은 모두 ‘선택’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되묻는다.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깨뜨릴 것인가, 유지할 것인가?


살아남을 것인가, 살아갈 것인가?


《설국열차》에서 커티스는 결국 기차를 파괴함으로써 시스템을 멈춘다. 끝없는 반복을 파괴한 대가는 파멸에 가까웠지만, 그 순간에야 비로소 눈 덮인 세상에서 살아 있는 생명체—곰—을 본다. 신기루 같던 자유가, 그제야 ‘현실’로 바뀐다.


《미키17》에서 미키는 복제 시스템 안에서 자신과 똑같은 ‘미키18’을 마주하며 갈등하고, 존재의 정체성과 진정한 자아에 대해 질문을 시작한다. 그 역시 자신의 시스템을 깨기 위해 ‘선택’을 한다. 누가 진짜 미키인지, 나란 존재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가.


봉준호 감독은 늘, 인간이 사회 속에서 어떻게 기능화되고, 수단화되며, 결국 어떻게 저항하는가를 보여준다. 《옥자》에서 동물이 상품화되듯, 《미키17》에서는 인간마저 리소스화된다. 《설국열차》에서 사람은 열차 부품으로 살아가야 했다. 익스펜더블이든 꼬리칸의 인간이든, 그들은 ‘살아있지만 살아 있는 것이 아닌 존재’다. 죽음을 앞두고도 그들은 살아남는 게 아니라, 쓰이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감독은 인간의 '선택 가능성'을 끌어올린다. 기차는 파괴되고, 곰이 살아있음을 본다. 미키는 복제를 거부하고 자신의 삶을 선택하려 한다. 그 선택은 허무하고도 희망적이다.


“눈보라 속 자유, 그건 신기루일까?”


아니, 그 신기루를 향해 나아가는 선택 그 자체가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일이 아닐까.


결국, 깊이 뿌리 내린 자만이 진정한 향기를 피울 수 있다.


꼬리칸에서, 복제기 속에서, 그리고 모든 반복되는 시스템 안에서—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러고 보면, 우리는 모두 하나의 열차에 타고 있는지도 모른다.


멈출 수 없는 궤도, 정해진 구조, 어딘가로 향하는 듯하지만 끝을 알 수 없는 경로 위에 놓인 존재들.


누군가는 앞을 향해 달리고, 누군가는 그 자리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다.


하지만 언제나, 문은 있다. 잠겨 있는 듯 보여도, 가끔은 문이 열린다.



그때 우리는 묻게 된다.



“무엇을 보았느냐?”



눈보라 속 흔들리는 생명, 얼음


틈에서 피어난 작은 꽃, 혹은 낡은 거울 속 나 자신.


멈출 것인가, 나아갈 것인가.



망설임의 끝에서 당신이 택한 걸음이


곧, 당신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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