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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소 Oct 11. 2018

[일본 북알프스] 가을에 취해버린 3박 4일

북알프스 산행


일기는 매일 쓰는 게 정석이지만 일본 북알프스로 3박 4일 산행을 다녀오느라 매일 저녁 6~7시에 곯아떨어지기 일쑤였다.(인터넷도 거의 되지 않았고)

아마 북알프스가 <내 마음의 산> 넘버 3 안에 들어가고도 남을 정도로 좋았기에 잊고싶지않아 제일 생생한 기억을 일기로 먼저 남겨둔다.


*말 그대로 일기이므로 세세한 정보는 이후 다시 기록할 예정이다.



신주쿠에서 버스를 타고 꼬박 6시간 달려 도착한 가미코지는 내리자마자 우와~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파란 하늘과(사진엔 잘 나오지 않았지만) 곱게 물든 산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산악보험을 가입하려고 문서 작성을 하고 있었다. 도움을 요청하지도 않았는데 사무실에서 나오셔서 친절히 도와주시던 직원분 덕분에 이곳의 첫 이미지가 너무나 좋았다. 그리고 3박 4일동안 난 많은 일본인들의 친절한 배려에 몸둘바를 몰랐다.
이들의 산행 문화는 어쩜 이토록 신사적일까?



가미코지에서 300m만 들어가면 유명한 갓파바시(다리)가 나온다.
수채화에 들어온 것만 같았다.



야리사와 롯지 전까진 비교적 순탄한 산책로 수준의 길을 걷는다.
숲의 향기가 적절하게 코를 자극했고 흙을 밟고 있는 느낌과 적당히 무거운 배낭이 오랜만에 자연에 나온 행복을 더해주었다.



도쿠사와는 정말 완연한 가을이었다.
형형색색의 텐트가 모여있으니 더욱 그렇게 느껴졌다.



우리의 첫날 일정은 도쿠사와 캠핑장에서 끝내기로 했다. 6.5km 밖에 걷질 않아 다음날 꽤 걸어야 해 부담이 되었지만 쉬고 싶을 때 쉬는 게 우리 부부의 산행 스타일.

좋아하는 것을 적당히 힘들게 즐겨야 오래 유지할 수 있는 것 같다.



저녁은 무인양품에서 사왔던 건조식(치즈 버섯 리조또)으로 가볍게 해결했다.



저녁 7시가 갓 넘은 시간인데 무척이나 어두웠고



밤 하늘의 별은 참 곱게도 반짝였다.



2일째 아침!
새벽 4시반부터 꼼지락 거리며 일어나 부지런히 철수하고 행동식만 간단히 먹고



6시 24분에 도쿠사와 캠핑장에서 출발했다.



숲내음을 진하게 느끼고 싶다면 아침 일찍 산행을 추천한다.
 확실히 새벽 향기는 달라도 너무 다르다.



맑고 시원하게 콸콸 쏟아져 내리는 물을 보며 감탄하고



완벽하게 가을 옷을 입은 산의 모습을 보며 감동이 벅차 올랐다.
‘산보면서 무슨 감동이야? 오바하기는’ 이라고 생각한다면 설득할 생각은 없다.(개인적 취향이므로) 하지만 적어도 우리 부부에게는 너무나 좋았던 곳임은 분명하다.



야리사와 롯지 이후로 줄기차게 오름질을 했더니 드디어 야리가다케가 내 눈에 보였다. 산 정상의 모양이 창 끝처럼 날카롭고 뾰족하다는 뜻에서 유래된 “야리”



이 오름질부터는 산장까지 남은 거리를 숫자로 써서 보여주는데 아무리 걸어도 도무지 숫자가 줄어들 기미가 없다.



이미 고도가 2800m가 넘어서인지 조금만 걸어도 숨이 찼다. 또 새벽부터 너무 적게 섭취한 탓에 힘을 낼 수가 없었다. 큰 실수였다.



기어코 야리가다케 산장에 도착했고 푹신한 구름이불이 깔려있는 느낌이었다.



저녁 5시가 되도록 약간의 행동식과 누룽지 먹은 게 전부였던지라 2000엔을 주고 먹는 산장의 저녁은 눈물나게 맛있었다.
역시 시장이 반찬이다.



다이어리에 야리가다케 도장을 야무지게 찍고



야리가다케가 혹시나 구름에 가려지진 않았나 노심초사하며 바라봤다. (저 곳을 언제나 오를 수 있는 건 아니다. 날씨 운이 따라야한다.)
도착하자마자 정상에 오르려했으나 에너지가 0이었기에 기어오를 힘 조차 없어 내일로 기약했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할 때에도 롯지에서 잤었다. 그랬기에 3100m에서 야영은 처음이었다.

빠르게 고도를 높이느라 고소 적응 할 시간이 짧아 밤 사이에 경미한 두통이 있었다. 결국 타이레놀 2알을 먹고 완벽 회복하여 약기운에 꿀잠을 잔 덕분에 일출 3분 전에 기상.



슬리퍼 신고 나가 바라 본 황홀한 일출이었다.
아마 오래도록 기억 될 것 같다.



어제 오르지 못한 야리가다케 정상을 오르기로 한다. 무려 3180m!



하지만 오르기 시작한지 채 5분도 지나지 않아 후회하기 시작했다. 아찔한 수직의 철 사다리와 릿지 구간은 잠재되어있던 나의 고소공포증을 순식간에 불러왔다. 너무 무서웠고 손, 발은 덜덜 떨렸고 눈 앞은 노래졌다. 떨어지면 그야말로 이 세상과 세이 굿바이~ 하는 것이었다.

‘아! 내가 모든 산을 다 갈 수 있는 건 아니구나.’ 생각했다.

더 아찔한 다이키렛토를 지나는 3일차 일정을 모두 변경했다. 아쉬운 마음보단 우리가 안전한 게 좋았다. 그리고 사실 이만큼으로도 충분히 감동스러웠다.
북알프스는 그런 산이었다.



어찌되었건 두려움을 이겨내고 올라간 야리가다케 정상이다. 날씨운은 정말이지 끝내줬고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도 좋았다.


야리가다케 ~ 가리사와 휘테로 가는 일정을 취소했기에 우리 마음은 넉넉했고 산장 앞에서 밥을 먹으며 여유롭게 하산을 시작했다. 아 근데 하산도 만만치 않았다.


이렇게 많이 올라왔다고???? 리얼리???



풋 글라이드를 발라도 소용없는 엄지발가락엔 물집이 생겼고 무릎은 부서질 것 같았다. 도쿠사와에서 3일차 일정도 마무리 하기로 했다. 고산병 위험도 없으니 시원한 나마비루 한잔을 마시고 저녁 7시부터 딮슬립.
정말 꿀잠엔 dog고생이 답이다.



4일차 !
결로로 물바다가 된 텐트를 말리고 천천히 남은 구간을 걸어오며 짧은 북알프스 산행을 끝마쳤다.



짧은 6개월의 기간동안 미친듯이 산을 찾아다녔다.

네팔 안나푸르나 트레킹, 조지아 메스티아 지역의 트레킹, 프랑스 샤모니 뚜르 드 몽블랑, 스웨덴 쿵스레덴, 노르웨이 트레킹까지. 모두 감탄할만한 곳이었지만 점점 비슷해지는 풍경에 지루해져갔다.


한달반의 휴식을 갖고 찾은 북알프스는 “지금이 가을이라는 걸 잊지마!” 하고 알려주는 것 같아 너무 좋았다. 어떤 장신구와 옷으로도 견줄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결론은 나의 힐링은 결국 자연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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