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사서 고생해?
난 20대 중반까지 너무도 바쁘게 하루를 보내왔다. 아니 견뎌냈다는 게 맞는 것 같다.
국가고시를 보기 위해 2년을 도서관에서 살았고, 그렇게 간호사가 되었지만 숨 쉴 틈 조차 사치인 듯 시간이 흘러갔다. 원래의 내 모습을 잃었고, 계절이 흐르고 있음도 잊었다. 등줄기에 땀이 흐르기 시작하면 여름이었고, 손 발이 시려지면 그때가 겨울이었다. 짧은 봄과 가을의 아름다움은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문득 이만하면 충분하단 생각이 들었다. 내가 이 세상에서 사라지기 전에 날 찾고 싶었다. 그렇게 난 5년 만에 힘겹게 들어간 대학병원을 내 발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수면시간이 늘어난 것 말고는 바뀐 게 전혀 없었다. 여전히 시간이 흘러가는 대로 살고 있었다. 이건 아닌 것 같았다.
돌이켜보면 그 이후부터 하늘을 보러 다니기 시작한 것 같다. 정확히 말하면 산을 올랐는데 하늘이 보였다. 어느 날은 하늘이 회색이었다가, 또 하루는 보라색이었고, 또 다른 날은 주황색이었다. 아! 칠흑같이 까만 하늘에 곧 쏟아져 내릴 것 같던 총총히 박혀있는 별도 너무 좋았다. 매일이 같던 내 삶에 매일 다른 하늘이 나타났다.
그렇게 하늘을 보러 산을 다니기 시작한 지 벌써 몇 해가 흘렀다. 난 여전히 틈만 나면 산을 올랐고 그곳에서 잠도 잤다. 비로소 나는 계절의 변화를 알기 시작했다. 봄, 여름, 가을, 겨울 숲의 향기도 모두 다르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이토록 아름다운 4계절을 이제야 피부로 느끼게 된 것이다. 식상한 표현이지만 비로소 난 내가 살아있음을 느꼈다. 나와 똑 닮은 짝꿍을 만나 같이 산을 다니기 시작하면서 우리의 야외 취침은 매주 당연히 치러야 할 일상이 되었다.
"이 추운 날(혹은 이 더운 날) 포근한 집을 두고 왜 사서 고생이야? 제대로 먹지도 씻지도 못하는데 그게 좋아?" 어릴 때부터 늘 함께였던 친구가 물었다.
그렇다. 내가 산에 오르고 하루를 머무는(이하 백패킹) 행위는 생각보다 녹록지 않다. 씻을 수 없음은 물론이고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한다. 그뿐이랴. 타들어갈 것 같은 더위와도 얼어붙을 것 같은 추위와도 싸워야 한다. 오름질은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내림질은 무릎이 아파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몸이 허락해줄 때까지 계속 하늘을 보러 산에 갈 생각이다. 아름다운 '그것'은 늘 그 자리에만 있어서 직접 찾아가야만 볼 수 있다. 평일의 괴로움은 자연에 머무는 1박 2일 동안 완벽하게 치유된다. 많은 것을 소유하고 지내다 꼭 필요한 것만 배낭에 넣어 산으로 간다. 그때의 홀가분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백패킹을 쉽게 그만두지 못할 것이다. 가슴이 곧 터질 것처럼 숨을 토해내고, 등이 축축하게 젖을 정도로 땀을 흘리고 난 뒤에 선물처럼 나에게 내어주는 '그것'에 난 중독되었다. 숲에서의 하루는 집에서 보내는 하루와는 너무나 다르다. 손에 달고 살던 휴대폰을 내려놓는 순간 세상의 시간은 천천히 흐른다. 머리카락을 스쳐 지나가는 바람을 알아차리게 되고, 텐트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에 집중하게 된다. 빛을 조금씩 잃어가며 변하는 하늘을 오랫동안 바라보게 된다. 마치 시간이 멈춘 것만 같다. 결국 넘쳐흐르는 도시의 삶을 이 곳에서 비워내는 것이다. 가끔 이렇게 비워내야 또 채울 수 있다. 이렇게 자연은 온통 천연 치료제로 가득 차 있다.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아무나 쉽게 하지 않는 이 행위를 우리가 계속하는 이유다.
이번 주는 어떤 하늘을 보게 될까?
배낭을 꾸려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