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여행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영선 Oct 16. 2021

첫번째 중국여행 4일/9일 (상하이->청두)

* 작성일 : 2017년 6월 1일 



 대만족이었던 징안쓰역 근처, The Puli Hotel and Spa에서의 체크아웃은 너무 아쉬웠다. 굳이 새벽 같이 일어나 또 욕조 속에서 한가로이 시간을 보냈다.





 다음 상하이 방문 때도 또 이 호텔에 묵을 생각이다. 






 짐을 챙겨 로비에서 Q를 기다렸다. 에코백에 든 서피스, 미러리스 카메라... 둘 다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전형적인 초보 여행자의 오판이었다. 다음 여행 때는 결코 가져오지 않으리라. 얼마나 번거로웠는지 모른다. :( 






 다시 찾은 상하이 푸동 공항. 청두로 가는 티켓을 손에 쥐고. 해외 여행할 때 그 나라 교통 수단 타보는 걸 좋아하는데, 중국에서만 벌써 고속 열차, 지하철, 택시, 배, 비행기까지 타보게 되는 셈이었다. ㅡ이후 케이블카도, 버스도, 농기계 개조한 듯한 탈것도 타보았다!ㅡ Q의 각별한 배려 덕분. :) 




 비행기를 타려고 서둘렀던 탓에 탑승 시각까지는 여유가 꽤 있었다. 이 사이에 Q와 나는 모바일 결제와 1인 방송 시장에 관해 이야기했다. 


 먼저, 즈푸바오는 중국에서 이미 완전히 보편화된 결제 시스템이더라. QR코드를 스캔하기만 하면 핸드폰에 저장된 내 계좌나 카드에서 자동으로 돈이 이체되는 시스템이다. IT 강국 대한민국을 구호처럼 듣고 외치며 자라온 나에게는, 그럼에도 주변에 삼성 페이를 사용하는 사람이 끽해야 몇몇일 뿐인 나에게는ㅡ기술력의 문제라기보다 규제의 문제가 더 컸지만서도ㅡ 몹시 충격적인 사실이었다. 아침에 아보카도 주스를 사마시는데 카드를 안 받길래 현금을 내밀었더니 그마저도 거부하고 Q가 핸드폰을 건네주니 그제서야 결제해주던 종업원의 모습은 거의 경악스러웠다. 아니 도대체 왜? Q가 가르쳐주었다.


 첫째, 즈푸바오는 위조 지폐 사용 위험이 없다. 둘째, 종업원의 도둑질에 대한 우려가 없다. 셋째, 객단가가 낮을 경우 잔돈 관리의 불편함이 없다. 게다가 수수료가 없어 현금과 똑같다니 즈푸바오를 이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즈푸바오가 생긴지 고작 3년, 할아버지 할머니들도 모두 즈푸바오를 애용한다고 하니 참 대단하다. 전쟁이 과학의 발전을 재촉했듯, 어쩌면 만연한 불신이 기술의 발달과 새로운 시장의 개척을 이끈 셈이다. 






 1인 방송은 게임을 좋아하는 내게 너무나 익숙한 인터넷 컨텐츠다. 아프리카TV에서 게임, 더빙, 남캠/여캠, 요리, 먹방 등 다양한 컨텐츠를 접하고 즐기며 그 시장 가능성과 영향력을 눈여겨 봤던 내게, 브랜디드 1인 방송 컨텐츠는 당연한 수순처럼 느껴졌다. 광고주가 크리에이터에게 돈을 주고 자사 제품을 사용하거나 광고하는 영상을 만들게 하는 것 말이다. 


 그러나 현시점에서 브랜디드 1인 방송 컨텐츠의 한계점은 꽤나 명확한 편이다. 광고주들은 데이터를 통해 광고 집행의 효과를 짐작하고 또 성과를 측정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1인 방송 크리에이터는 자신의 컨텐츠가 고객의 실구매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 지를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유튜브에 링크 하나 걸어두어봤자 그걸 클릭하고 구매하는 일은 너무나 번거롭다. 좋아하는 크리에이터의 영상을 보고 퇴근 길에 립스틱을 하나 샀어도, 해당 브랜드도 심지어 크리에이터조차 전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위 방송은 중국 왕홍의 1인 방송. 이들은 서울에 직접 와서ㅡGPS가 그걸 보증한다ㅡ 한국 화장품을 산 뒤 늘어놓고, 혹은 그 자리에서 실시간으로 화장품을 사서 이것이 가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한다. 시청자는 왕홍에게 얼마인지 물어보거나 혹은 화면 속의 바로 저 제품을 사다달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곧장 이 방송 플랫폼 안에서 결제 금액을 이체한다. 왕홍은 귀국한 뒤 제품을 배송해준다. 이 과정에 있어 어떤 불법적인 요소가 있는지 혹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고 있는 지에 대해서는 잘 모르겠으나, 흥미로운 건 이 역시 중국인의 '불신'에 기초한 비즈니스라는 것이다. 중국에서 유통되는 한국 화장품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거나 혹은 가짜일 지도 모른다고 걱정하는 사람들은 왕홍의 이름과 얼굴, 비즈니스 이력을 믿고 물건을 주문한다. Q가 말하길, 중국의 여자 왕홍들 역시 시장 형성 초기에는 애교를 부리고 미모를 자랑하는 소위 '여캠' 아이템으로 대부분 방송을 시작했었지만, 언제까지고 그런 예쁜 짓만 하면서는 돈을 벌 순 없다는 걸 빠르게 깨닫고 다른 아이템을 찾아나서고 있다고 한다. 마치 우리나라 아이돌들이 나이가 들면서는 배우로 전향하는 것처럼?


 이게 가능한 이유는, 결제와 방송이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간편하게 이뤄지기 떄문이다. ㅡ가입하기 귀찮아서 네이버 페이 결제가 되는 쇼핑몰을 굳이 찾아들어가 구매해본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ㅡ 플랫폼의 위력은 시장 점유율, 이용자 수에 따라 결정된다. 그리고 BAT(바이두, 알리바바, 텐센트)는 어마 어마한 중국 인구를 품에 온통 껴안고 있다. 이들은 하나의 플랫폼 안에서 아무렇지 않게 이야기를 나누고, 방송을 보고, 물건을 사고, 돈을 지불한다. 한때 카카오톡이 채팅 내용을 수사 협조 명목으로 넘겼다가 이용자들의 반발을 사는 바람에, 대화 내용이 암호화 된다는 텔레그램 다운로드가 붐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중국인들은 안 두려운가? Q는 어차피 모든 중국인은 다 감시 하에 살고 있는 거라고 했다. 




 비행기 안에서 뒷좌석에 탄 어린 아이가 어찌나 시끄럽게 굴던지 신경이 잔뜩 곤두서있었다. 인천-상하이보다도 더 먼 상하이-청두. 확실히 상하이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번쩍 번쩍한 건물들도, 완벽한 조경도 없었다. 우중충한 건물들, 꽉 막힌 도로, 엉망인 교통 질서! 사고가 안 나는 것이 신기할 정도로.


 청두에 사는 Q의 친구를 만나기로 했는데, 심지어 친구는 이미 식당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다는데- 풀릴 기미가 없는 정체에 발만 동동 굴렀던 시간.





 호텔에 도착한 후 서둘러 체크인을 하려는데 갑자기 아까 탔던 택시 기사 아저씨가 내 어깨를 두드리더니 중국어로 마구 화를 냈다. 깜짝 놀라서 눈만 깜빡이고 있는데 Q가 "가방!!!"이라고 외치며 호텔 밖으로 달려나갔다. 트렁크에 캐리어를 싣고서 그냥 몸만 내려 호텔로 온 거였다! 친절한 기사 아저씨가 아니셨다면 꼼짝 없이 이 낯선 땅 청두에서 무일푼의 단벌 신사로 남게 될 뻔했다!


 Q가 비행기에서 땀을 흘렸다며 샤워를 하고 친구를 만나자고 했다. 아니 세상에, 이미 1시간을 식당에서 홀로 기다리게 했는데 샤워를 하겠다고? 친구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 것 아니냐며 걱정하니까 "没办法(어쩔 수 없지)"라고만... 하지만 나 역시 샤워하고 싶었기 때문에 그냥 최대한 빨리 씻고 로비에서 만나기로 했다. 일면식도 없는 친구인데도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겠는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내 생애를 통틀어 가장 빠르게 샤워하고 화장하고 로비로 뛰어내려갔는데 정작 Q는 나보다 20분 늦게 나왔다... 이 친구야... 네 친구라고... 




 위챗 음성 메시지를 따라 택시를 타고 달려온 식당, 노란 상의를 입은 싹싹한 인상의 L이 활짝 웃으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사실 L은 Q의 친구이지 내 친구가 아니고, 또 한국어를 전혀 할 줄 모른다고 들어서 저녁 식사 시간이 어떨까 잘 그려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L을 보자마자 마음에 쏙 들었다. 난 중국어 발음이 멋지다고는 여러 차례 생각했었지만 이토록 귀여울 수 있는 줄은 몰랐다. 특히 L의 목소리는 정말 사랑스러웠다.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하다고 했더니 L은 괜찮다고 활짝 웃었다. Q 말로는 3년 만에 만나는 거라던데, 오랜만에 만나서 할 말이 많겠다고 하니까 중국 사람에게 3년은 짧은 시간이라며 또 활짝 웃었다. 그리고 두 중국인은 여행 코스에 대해 상의하기 시작했다. 나를 어디로 데려가주면 좋을지에 대해 진지하게 의논하고 있는 두 외국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뭔가 현실감이 없었다. 긴 해외 여행을 계획한 것도, 혼자 떠나기로 한 것도, 실은 다 내 독립심을 길러보자는 취지에서, 혼자 한 번 고생해보자는 포부에서 나온 것이었다. 돌이켜보면 난 참 여러 사람들의 도움과 사랑을 받으며 잘 살아왔다. 안 좋은 일이 있어도 이겨낼 수 있을만큼 단단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갖게 된 것은 모두 그 덕분이다. 그치만 이렇게 외국인들에게조차 따뜻한 관심을 받으며 안전하고 쾌적하게 여행할 수 있을만큼, 내 인복이 넘칠 거라고는 기대하지 못했다. 전생에 나라를 구했던 모양이다! :D   


 쓰촨에서 맛 볼 첫번째 요리는 응당 훠궈여야 하겠지! 차원이 다르게 훅 끼쳐오는 강렬한 마라향. 그리고 처음 보는 온갖 음식들. L이 나를 위해 찍어먹는 소스를 만들어서  앞에 놓아주었는데, 본인 소스를 만들 때는 저 마라 국물을 아예 푹푹 떠넣었다. Q는 또 그걸 보고 질색했다. 중국은 참 넓기도 하지!






 내가 또 놀랐던 것은 음주 문화인데, 한국으로 돌아와 찾아보니 중국도 비즈니스 할 때나 상하 관계가 명확할 땐 이것 저것 따지는 모양이지만... 이 날 L은 백주를 저 작은 주전자와 잔에 조금씩 따라 나눠주었다. 첫 잔은 건배! 다음부터는 원하는 사람이 스스로 작은 주전자에 담긴 백주를 채워 마시는 거였다. L은 또 활짝 웃으면서 "이렇게 하면 편리해!"라고 말했다. 아무도 내가 술을 얼마나 많이 혹은 적게 마시는 지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백주를 처음 마셔본 소감에 대해서도 말해볼까. 소주도 써서 잘 안 마시는데, 하물며 50도의 백주라야 오죽할까. 한 모금 들이키는 순간 목구멍에 불이 일면서 타들어가는 듯한 느낌이었다. 하지만 머리가 핑 돈다든지 너무 쓰거나 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숙취가 없었다. 







 온갖 종류의 처음 보는 음식들이 차려졌는데, 이건 오리 혀였다. L은 웃는 얼굴로 "너무 맛있어!"라며 부추겼다. 난 한국에서 곱창도 못 먹는 사람인데... 하지만 L이 너무 귀여워서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망설이는 내 모습을 보고 Q가 자기가 먼저 먹어볼테니 너도 먹어보라고 했다. 머릿 속에서 꽥꽥 거리는 오리 모습을 지우고 먹으니 먹을 만했다. 내가 이런 걸 먹다니! :0 







 먹기는 먹었을텐데 뭔지 모르겠다...






 회인 줄 알았더니 저것도 훠궈로 먹는 거였다.







 사실 Q랑은 꽤 친해서 척 하면 척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정확히 말하지 못하더라도 서로 알아챌 수 있다. 그래서 내가 중국 사람 입장에서 조금 어색하거나 낯선 표현을 쓰더라도, 이렇게 쓰는 게 더 자연스럽다고 말은 해주지만 대화를 아무렇지 않게 이어간다. 그런데 두 중국인의 대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니, 내가 친구들과 대화할 때 쓰는 "아.. 어어.", "헐...", "진짜?", "대박..." 이런, 별 뜻은 없지만 꼭 필요한 말들을 중국어로 어떻게 말하는 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Q가 나랑 이야기할 때는 의식적으로 속도에 많이 신경 써주고 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P 




 셋 다 너무 많이 먹고 마셔서- 식사 후에 좀 걷기로 했다.




 아름다운 청두. 사진 왼쪽에 있는 여러 색의 불빛들은 라이브 카페 거리다. 중국은 도시마다 별명이 있다고 하는데, 청두는 천국을 뜻하는 天府가 별명이란다. 그도 그럴 것이, 고온다습의 풍요한 기후, 밤 늦게까지 사람들로 들어찬 식당과 술집, 20분을 걸어도 끝이 안 나는 라이브 카페 거리, 중국에서 가장 예쁘다는 쓰촨 여자들의 호객 행위까지. 늘어진 버드나무 너머 물을 바라만봐도 여유로운 기분이 들었다. 

 Q는 역시 자긴 시골이 싫다고, 상하이가 좋다고 했다. 여기 분위기는 소위 말해 놀자판이라며. 이 곳 사람들 대부분은 아마 평생 이 도시를 떠나지 않고 이 분위기 속에서 평생을 살 거라고 했다. 노출이 심한 여자와 담배를 문 남자가 만취한 채로 어울려 춤을 추는 이 곳의 분위기 속에서, 아무런 발전 없이. 반면, 비즈니스와 돈 생각으로 가득 찬 상하이 사람들은 저렇게 밤 늦게까지 술 마시는 걸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고 차라리 헬스장에서 운동을 할 거라고 덧붙였다. 상하이 사람들은 시간을 쪼개 쓰며 하루가 모자란 하루들을 살아가고 있다고. 

 오기 전부터 Q는 시골 사람들, 한족이 아닌 사람들을 싫어한다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었다. 나는 네가 상하이 호구를 갖고 있는 한족이 아니었어도 그러겠느냐 매번 반문했었다. 너는 상위 계층에 속해 있으니까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거라고. 출생지와 민족은 개인의 선택이나 노력과 일체 관계가 없으니 미움의 근거로 쓰여서는 안된다고. 불공평하다고. 그런데 이 곳과 상하이를 두고 보면, 다른 나라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사회의 공기 자체가 달랐다. 여전히 나는 차별을 반대하지만, Q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에 대해서는 조금 수긍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모두 중국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서로 외국인이나 다름 없었다. 마치 나와 Q가 서로 외국인이지만, 어떤 면에서는 같은 나라 사람보다도 더 잘 통하는 것처럼. 

 생각의 범위, 이해의 범위가 조금씩 확장되는 것. 그것이 여행의 묘미인가보다. :) 

매거진의 이전글 첫번째 중국 여행 3일/9일 (상하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