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알프레도박 Jan 30. 2018

러빙 빈센트 반 고흐 #27

27화 하루를 무탈하게 생존하는 기쁨

  ‘감자를 먹는 사람들' 그림이 왜 인간적인가? 빈센트는‘감자를 먹는 사람들’을 그리면서 ‘생명’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강조한다. 회사에서 바빠서 저녁 식사도 못하다가 일이 늦게 끝나서 저녁을 먹을 때면 이 그림이 떠오른다. 먼 미래는 모르지만 오늘 해야 할 일을 마치고 잠자리에 들기 전에 소박한 음식을 먹을 때 그것은 최상의 성찬이다. 어쩌면 생명이란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루를 무탈하게 생존하는 것일 뿐이다. 단순히 살아 있다는 느낌을 갖는 것이다.

  현대인은 외국의 비참한 전쟁 상황이나 지독히 가난한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TV나 미디어를 통해서 간혹 본다. 심리적으로 보면 나보다 어렵거나 고난에 닥친 사람들을 보면서 나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그림은 단순히 고단한 삶을 살고 있다는 느낌보다는 인물이 살아 움직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무엇인가 얘기하는 것이다.‘오늘 수확한 감자인데 맛이 괜찮은데 너도 한번 먹어봐’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나는 정말 정직하게 노동으로 살아 인생의 의미는 정직한 노동에 있는 거야’라고도 말하는 것 같다.


1985년 4월 편지 내용
“ ‘감자 먹는 사람들’을 그리느라 여념이 없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어. 두상 채색화 습작을 또 몇 점 그렸지. 특별히 손들의 모습이 많이 변했단다. 무엇보다 그림 안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단다.‘감자 먹는 사람들’ 속에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걸 확신하기 전에는 이 그림을 네 개 보내지 않을 거야. 어쨌거나 진전되고 있고, 지금까지 네가 보아온 내 그림들과는 아주 다른 무언가가 있단다. 그 점만은 분명해.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건‘생명’이야. 기억을 더듬으며 이 그림을 그리고 있어. 하지만 이 두상들을 내가 수도 없이 그렸다는 사실을 너는 알지! 게다가 몇 가지 사항들은 현장에서 직접 그리기 위해 밤마다 그곳에 가곤 한단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땐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나 상상력의 도움을 받고 해. 습작을 할 때와는 다르지. 습작에서는 창의력이 개입되면 안 되며 현실을 통해서만 상상력을 살찌우고 이 상상력의 오류를 막을 수 있단다”(고흐 빈센트, 2007) 186page.


  빈센트의‘감자 먹는 사람들’의 그림이 인간적인 이유는 여러 가지다. 첫째 이유는 투박하고 거친 손이 그려진 그림이다. 1980년대 히트 쳤던 조용필 노래‘창밖에 여자’라는 노래가 있다. 그 노래에‘눈물처럼 떠오르는 그대의 흰 손’라는 가사가 있다. 왜 흰 손일까? 하얗고 이쁘다는 의미이다. 그런데 반대의 의미로 거친 손이지만 아름답다는 미학을 강조한 그림이 바로 이 그림이다. 특히 19세기 중반의 유럽의 노동자들은 고된 노동으로 힘들었다. 노동으로 굳은살이 배기고 검은색으로 훼손된 손을 그린 것이다. 테오는 빈센트의 그림이 어둡다고 표현했다. 밝은 색으로 그린 인상주의 그림이 주목받던 시기라 화상이었던 테오 입장에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림이었다. 이 그림에 그려진 손을 보면 나는 나의 돌아가신 아버지 손이 생각난다. 나의 아버지는 효성중공업의 변압기 생산공장의 노동자였다. 손마디에는 항상 굳은살이 배겨 있었고 퇴근할 때는 비누로 씻었겠지만 갈라진 굳은살 사이로 시꺼먼 기름때가 간혹 끼어 있었다. 이런 손을 그린 것이다. 고객이 원하는 밝은 색깔로 그림을 그릴 수 있는데도 자신의 미학으로 거친 농사일로 힘들어진 손을 그린 것이다. 지금 내 손은 그 당시의 아버지 손에 비하면 하얀 손이다. 빈센트는 내 아버지의 굳은살이 배기고 그 손마디가 간혹 터서 거친 그 손을 약 137년 전에 미리 그린 것이다.

  두 번째 이유는 감자에 있다. 감자는 지금도 매우 서민적인 음식이다. 햄버거를 먹을 때나 맥주 안주로 감자튀김을 많이 먹는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격은 예전보다 올라서 과일 값과 비슷하다. 국내에서 가족끼리 주식으로 감자를 먹는 모습을 볼 수가 없다. 요즘은 가족끼리 회나 고기 회식을 한다. 감자는 보기 흉한 모습으로 유럽에서 처음에는 기피하던 음식 재료였다. 19세 초 아일랜드에서는 감자 기근으로 인구의 1/3이 사망하기도 했다. 빈센트가 살던 시대에는 서민들이 거의 주식으로 먹던 음식이 감자였다. 어려웠던 시대에 생명과 생존의 의미를 갖는 것이 감자다. 감자는 특별한 경작의 노력 없이 척박한 기후 환경에서도 잘 자라며 기근 때 주식으로 사용할 수 있는 구황작물이다.

  세 번째 이유는 가족의 식사라는 점이다. 가족이라는 의미는 한 집에 모여서 한솥밥을 먹는다는 의미다.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서 가족끼리나 또는 혼자서 맛있거나 멋있는 장소에서 먹는 사진을 찍어서 올린다. 생명은 먹어야 존재하는 것이다. 먹지 않으면 죽는 것이다. 생명과 바로 연결되는 장면이 먹는 장면이다. SNS에서 자신이 무엇을 먹는지는 바로 그 사람의 직업과 신분을 의미한다. 허름하고 값싼 음식을 먹는다고 사진을 찍어 SNS에 올리는 사람은 없다.

  이 그림은 빈센트 본인이 테오에게 팔지 말고 갖고 있으라고 했던 그림으로 많이 회자가 되는 그림이다. 왜 팔지 말라고 했을까? 그의 편지에서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거친 손으로 감자를 캐서 삶아서 먹는 모습을 강조하고 싶었다고 빈센트는 얘기한다. 그리고 아래 편지 내용에서 빈센트는 일반인들이 아무리 서민의 삶을 그린 그림에 관심이 없다고 하더라고 끝까지 그런 그림을 그릴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

1885년 4월 13일
“내가 농민화가라고 자처하는 이유는 그게 사실이기 때문이야. 너도 분명히 알게 되겠지만,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게 편안해. 또 내가 광부들, 토탄을 자르는 인부, 방직공, 농민들의 집에서 난로 옆에 앉아 생각하며 - 열심히 작업한 시간을 빼고 - 수많은 저녁을 보낸 것이 무용한 일이 아니었어. 온종일 농민생활을 관찰하면서 나는 거기에 마음을 완전히 빼앗겨, 다른 것은 거의 생각하지 못하게 되었으니까 밀레의 작품에 무관심한 일반인의 풍조 - 너는 전시회에서 그것을 보았다고 했지 - 가 예술가들뿐 아니라 그런 그림을 팔아야 하는 사람들까지 의기소침하게 만든다고 했지. 나도 전적으로 동감해. 물론 밀레 자신도 그것을 느꼈고 알았지... 밀레가 그림을 그리기 시작할 때에 한 말에 감동을 받았어... ‘그런 무관심은 내가 비싼 구두나 신사의 생활을 필요로 한다면 나쁘겠지만, 나는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라는 것이었어. 정말 그렇게 되었지. 따라서 내가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나막신을 신고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라는 말, 즉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잠자는 것에서 농민이 만족하는 정도에 자신도 만족한다는 점이야. 밀레는 그것을 실천했고, 사실 그 밖에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았어... 꽤나 사치스럽게 살았던 사람들이 보여주지 않은 길을, 밀레가 인간으로서 화가들에게 보여준 것이라고 생각해. 다시 말하지만, 밀레는 아버지 같은 밀레 야. 어떤 경우에도 젊은 화가들에게 조언자이고, 선도자였어. 내가 아는 사람들 대다수는 - 물론 그들을 속속들이 알지는 못하지만 -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겠지. 아무튼 나도 밀레처럼 생각하고 그의 말을 완전히 믿고 있어.
밀레에 대해 이처럼 길게 쓰는 이유는, 도시화가들이 그린 농민상이 아무리 훌륭해도, 역시 파리 근교의 농민을 생각나게 할 뿐이라고 네가 지난번 편지에서 썼기 때문이야. 나도 같은 인상을 받았어... <중략> 이는 그 화가들이 인간적으로 농민생활에 깊이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 아닐까? 밀레는 또 말했지. 예술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고흐는‘감자 먹는 사람들’이라는 그림을 통해 그 자신만의 시각을 보여준다. 이 그림은 초기에 어두운 색깔과 불완전한 얼굴 그림으로 혹평을 듣는다. 하지만 빈센트는 자신도 자세히 설명할 수 없는 생명이라는 관념을 그림을 통해 보여준다. 고흐는 아무리 힘들고 고된 삶이라도 그것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이 그림은 삶이라는 그 자체가 갖고 있는 생존이라는 존엄성에 대한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러빙 빈센트 반 고흐 #26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