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못 하는 아기의 신호
어제의 이유식은 푸드케어의 흰콩닭 무른밥 조금과 소고기 채소볶음이었다. 저번에 남편이 먹이고 남은 시판 무른밥이 있어서 그거에다가 애호박, 표고버섯, 적채를 평소보다 잘게 썰어 소고기와 함께 푹 익혀 주었다. 총 195g이었고 완밥했다.
요즘 애월이가 엄마표 이유식을 통 먹지 않아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세끼를 만드는 것도 부담이었고 바닥에 흘린 음식을 닦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니었지만, 무엇보다 참기 힘들었던 건 애월이의 이유식 거부였다. 왜 안 먹는지 대화가 가능한 상대도 아니어서 답답하기 그지없었다.
애월이는 이유식을 먹다가 곧 싫증을 내면서 음식을 가지고 장난을 치곤 했다. 바닥에 버리는 게 절반, 의자에 묻히는 게 절반. 옷도 다 버려서 매일 애벌빨래는 기본. 이 짓을 하루 세 번씩 매일 반복하니 참다 참다 며칠 사이에 우울감이 심해져 정신과에 가서 약을 먹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그러다 어제 급히 친정에 가야 할 일이 있어서 시판 이유식을 먹였는데 애월이가 200g을 뚝딱 다 먹었다. 다 먹었다는 기쁨과 뒤처리를 할 필요가 없다는 깔끔함에 감동,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지만 엄마라는 직무에 충실히 「왜 이건 다 먹었을까」 곰곰이 생각을 해보았다.
내가 만든 이유식은 질감과 입자감이 애월이가 먹기에 컸다는 것이 내가 내린 결론이었다. 애월이가 기준이 되었어야 했는데 책을 기준으로, 어느 정도 입자감은 되어야 한다고 믿고 그렇게 이유식을 만들었던 나의 잘못이었다. 잘 먹는다고 너무 빠르게 진행한 탓이다. 그간 애월이도 꽤 스트레스를 받았겠단 생각이 들면서 미안해졌다.
그래서 좀 더 잘게, 시간을 들여 더욱 푹 익혀 만들어 주었고,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부드럽고 편한지 끝까지 잘 먹었다. 손으로 음식을 주물럭대는 장난을 치려고 하거나 짜증 섞인 울음을 터뜨리지도 않았다.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린다는 건 무언가 말하려는 신호 중의 하나임을 새삼 다시 인지하게 되었다. 아니, 애월이의 행위는 모두 어떤 신호가 될 수 있다(해석을 못 해서 그렇지).
첫아기다 보니 느릴까 봐, 가이드에 맞지 않는 것 같으면 혹시 잘못인가 싶어 조바심이 난다. 잘 키우고 싶단 욕심보다는 정해진 길(은 없겠지만)에서 벗어났을 때 확인받을 수 없는 불안과 혼란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나의 마음을 비난하거나 자책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애월이를 기준으로 육아를 해야겠다고 다짐해 본다. 육아하는 데 관찰력과 사고력이 필수라니.
24.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