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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25. 2023

학부모가 갑질을 했다지만

한국 교육의 진짜 문제

한국 뉴스를 보지 말았어야 하는데 보고야 말았다. 교권 문제와 관련된 뉴스에서 '학부모 갑질,' '진상 학부모'를 탓하고, 댓글에는 '맘충'이라는 단어가 난무한다. 내 생각은 학부모들이 잘했다는 게 아니라, 학부모 갑질은 문제를 드러나게 한 촉매제일 뿐, 한국 교단의 진짜 문제는 내부에 있다는 것이다.


교권 하락은 학부모 갑질이 심화되기 이전부터 서서히 진행되어 온 일이다. 교사 집단이 우스워진 이유는 맡은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고 쩔쩔맸기 때문이다. 이 때 교사의 업무란,


1. 교과 수업: 대부분의 교사들이 훌륭하게 또는 무난하게 수행하고 있을 것이다.

2. 학생 고민 상담: 잘 모르겠다. 내가 학생이던 20년 전엔 이 부분을 잘하는 교사는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했지만 요즘은 다를 수도.

3. 진로 지도: 입시 지도는 잘하실지 몰라도, 더 먼 미래를 그리는 진로 지도를 얼마나 잘하실지는 모르겠다. 학부모 본인이 다양한 직무 경험을 갖추고 있을수록 '과연 교사가 진로 지도를 잘 할 수 있느냐'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한국의 교사는 학교 밖의 직업을 경험해본 적이 대부분 없으므로.

4. 교실 내 문제 행동 지도: 지속적으로 수업을 방해하거나 다른 아이를 괴롭히는 행동을 단속해야 하는데, 이런 문제 행동은 사실 부모로서도 통제하기 힘든 경우가 많다. 병원 진단을 통해 전문가 상담이나 약물 치료가 필요한 경우도 있고, 치료를 받는다 해도 호전되는 데엔 기나긴 시간이 걸린다. 부모와 의사도 고치기 힘든 행동을 교사더러 바로잡으라고? 어불성설이다.

5. 학교 폭력 해결: 선생님의 말 몇 마디에 감명 받아 개과천선했다는 일진을 본 적이 있나? 0.1%의 확률이다. 교사가 해결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6. 각종 행정 업무 처리


결국 교사가 신뢰를 얻을 수 있는 항목은 1번(그리고 6번?) 정도다. 나머지는 학부모 입장에서 '긴가민가' 내지는 '불신'하는 마음이다. 본인이 맡은 업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하면 어떤 직업인이든 불신을 얻고 권위가 추락한다. 교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다. 그러므로 교권이 붕괴된 원인은 학부모 갑질이 아니라, 불가능한 업무를 너무도 많이 떠안고 있었기 때문이고, 학부모 갑질은 그에 수반된 부작용일 뿐이다. 과거에야 교사의 손에 몽둥이가 들려 있었으니 겉으로나마 교사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듯 보였지만, 체벌이 금지되고 그마저도 불가능해졌고, 교사는 폭력 없이는 아이들을 다스리지 못하는 존재가 되어 꼴이 더욱 우스워졌다. (그래서 체벌을 부활시키자는 주장도 있던데 대체 어느 시대에 살고 계시는지, 이런 유행어 처음 써보지만 정말 '할많하않'이다.)


교권 추락의 문제를 학부모 탓만 해서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그동안 학교 내부에서 해결하려고 했던 일을 경찰, 의료계 등과 적극적으로 분업하지 않고는 교사는 우스운 꼴을 면하지 못한다. 교사가 본인의 업무로 가져가야 할 항목은 1번(그리고 약간의 6번?) 정도이고, 2번은 학교에 전문 상담가가 상주해야 하며, 3번도 진로 상담 전문가가 학교 또는 교육청 단위 별로 고용되어야 하고, 4번은 문제 행동 지속 발생 시 정학 또는 퇴학 등 강력한 처분을 통해 다수의 학생을 보호해야 하며, 5번은 경찰이 나서야 한다. 그러고 나면 교사 본인도 포지셔닝을 다시 해야 한다. '학생 한 명 한 명을 사랑과 애정으로 감싸는 어진 스승,' '방황하는 학생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참된 스승,' 이런 건 바라지 말라고, 선을 확실하게 그어야 한다. 교사는 교과 수업하는 사람이지 인성 지도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체 생활을 서포트하는 사람이지 아이 한 명 한 명 맞춤 케어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단체 생활이 불가능한 아이는 애석하지만 감당하지 못한다고, 확실하게 선을 그어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계의 윗분들께서 분업 시스템을 만들어주셔야 하는데, 지금처럼 학부모를 상대로 디스전을 펼쳐서 실현될 일이 아니다. 뉴스에 등장한 진상 학부모들은 정말 진상이 맞지만, 다수의 학부모들은 평소 학교와 교사가 못미더워도 굳이 티내지 않는다. 괜히 티냈다가 아이가 교사에게 해코지 당할까봐 입을 다무는 경우가 절대적으로 대다수다. 이번 서이초 사건으로 학부모 갑질은 줄어들지 몰라도 학부모들이 학교를 상대로 갖고 있는 '긴가민가' 내지 '불신'하는 마음은 교사의 업무 영역이 축소되지 않는 한 계속될 것이고, 불신 받는 직업인으로서 교사는 권위를 회복하기 어려울 것이다. 못하는 일은 못한다고 인정을 하고, 할 줄 아는 일을 잘해야 한다. 적당히 해서 인정 받는 시대는 지나갔으므로 잘, 해야 한다.


미국 학교는 이미 분업화되어 있다. 일선 교사들에겐 교과 수업이 최우선이고, 수업을 방해하는 아이들은 교장실로 보내어진다. 학교에는 심리 상담가가 상주하고 있고, 고등학교에는 입시 상담 선생님도 따로 있다. 초등학교의 경우에는 학부모의 교실 참여도도 높은데(그냥 참관이 아니라 미술 수업이나 컴퓨터 수업 등에서 보조자 역할을 하고, 크리스마스 파티 등 이벤트는 학부모가 주도하여 기획하기도 한다), 그동안 아이들을 교실에서 지켜본 결과 아이들의 태도는 선생님의 역량에 따라 달라지는 부분이 분명히 있다. 카리스마 있거나 재치 있는 선생님의 수업은 아이들의 집중도가 높고, 그렇지 못한 선생님 앞에선 아이들이 다소 산만해진다. 교사로서의 자질과 경험치의 문제지, 아이들의 문제가 아니다.


현재의 한국 분위기는 모든 문제를 아이들 탓, 학부모 탓으로 몰고 간다. 교사의 주 업무를 수업 한정으로 축소하면, 능력 있는 교사는 교권을 회복할 것이고, 능력 없는 교사는 도태될 것이다. 모든 직업인이 그렇듯 권위는 디폴트로 주어지지 않는다. 한국에는 유독 '교권'이라는 말이 있어 교사가 교사라는 이유만으로 권위를 인정 받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있는데, 교권은 교사가 교사로서 일을 잘해야만 성취할 수 있다. 현재 교사들이 주장해야 할 사항은 '근로자로서의 기본적인 권리'이므로 교권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교권, 즉 '교사로서의 권위'는 교사의 업무 범위가 현실적으로 조정된 후, 그 일을 잘하는 교사라면 스스로 회복할 영역이다.


사실 한국 뉴스를 보지 않았더라도 이번 서이초 사건은 주변의 한인들을 통해서 어차피 알게 되었을 일이다. 미국에 살더라도 한국인들은 한국에 대한 애정에 항상 소식을 살피기도 하고, 자녀가 있다면 한국으로 돌아갈 상황에 대비하여 한국 교육계를 주시하기도 한다. 며칠 전 한국인 가정에 초대 받아 저녁 식사를 하면서도 한국의 교육 문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였다. 학생이 교사를 여러 차례 폭행한 사건이 있다는데, 미국이라면 폭행이 여러 차례 일어나도록 절대 내버려두지 않는다. 한 차례의 폭행만으로 그 학생은 경찰의 소관이다. 학생이 몇 살이든 상관 없다. 내 아이가 다니는 초등학교도 '고의적인 폭력 행위는 경찰에 신고하는 것이 학교의 의무'라고 교칙에 적혀 있다. 교사가 학생에게 여러 차례에 걸쳐 맞았다면 진짜 문제는 시스템에 있다. 문제 학생, 문제 학부모는 '시스템의 부재'라는 커다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일 뿐, 이젠 손가락보단 달을 보았으면 한다.


(브런치는 이제 로그인을 잘 하지 않는데, 한국과 관련해 답답한 마음이 들면 이렇게 배설하듯 글을 쓰게 된다. 이런 글들을 제외하고 가벼운 글을 더 써서 한데 모아볼까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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