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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e Park Aug 23. 2018

02. 그저 가벼운 웹툰이 아니에요.

유미의 세포들, 이게 왜 좋아?

약간의 스포가 있어요. 조심!


동생이 깔깔거리고 웃는다. 뭘 보고 있나 물어봤더니 <유미의 세포>라고 한다. 연애 웹툰이라며 엄청 재밌다고 말해줬는데 구미가 당기진 않았다. 짧게 끊어지는 옴니버스 형식이면 모를까, 이야기가 이어지는 웹툰이니 내 성격상 그다음화를 기다리기는 힘들었다. 그리고 내게는 웹툰 말고도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아-주 많았다. 페이스북, 유튜브에서 떠도는 콘텐츠가 지겨워지던 차에 동생이 강력 추천해준 웹툰이 퍼뜩 떠올랐다. 


머릿속에서 열일하고 있는 세포들의 다이나믹한 이야기 <유미의 세포들> 


왜 이제야 본거지?
와.. 이 좋은 걸 어떻게 설명하지?

무섭게도 반나절만에 300화 넘게 정주행 했다. 그리고선 두 마디밖에 나오지 않았다. "왜 이제야 본거지? 이 좋은 걸 어떻게 설명하지?" 한마디로, 인생 웹툰을 만났다.(내 삶엔 인생 00이 너무 많다만...)




웹툰을 애정하는 이유, 이거 내 속마음 아냐? 


분위기에 한없이 젖어드는 감성세포, 근거없는 자신감세포, 오늘의 패션을 야무지게 담당하는 패션세포 등등



겉보기에는 30대 유미의 일상을 담은 흔한 웹툰처럼 보이지만 그 전개는 흔하지 않다. 픽사 '인사이드 아웃(InsideOut)'과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인사이드 아웃은 슬픔이, 기쁨이, 까칠이 등 감정을 나타내는 주요 캐릭터 5인방을 중심으로 전개를 풀어낸다면 '유미의 세포'는 더 다이나믹하고 섬세한 버전이다. 유미 속에서 활동하는 세포들이 폭발적으로 많이 나오는 데다 더 섬세한 감정을 다룬다.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돕고, 머리를 핑핑 돌아가게 하는 이성이, 낙엽을 보며 우수에 젖고 낭만적인 생각에 사로잡혀있는 감성이, 팬티 차림으로 다녀 튀는 데다 온통 야한 말을 하고 다녀 하는 말의 대부분은 모자이크 처리가 되는 응큼이(독자들 중에서는 지지층이 얼마나 두터운지 나도 응큼이 팬),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세포이자 연애를 할 때 빛을 발하는 사랑 세포, 유미의 식탐을 책임지는 거대한 세포 출출이... 이게 다가 아니다. OOTD(Outfit Of The Day; 오늘의 패션)를 담당하는 패션 세포, 근거 없는 자신감 세포, 깊은 곳에 갇혀있다 갑자기 툭 튀어나와 핵사이다를 던지는 본심이 까지 이동건 작가의 어마무시한 상상력 덕분에 매력쟁이 세포 캐릭터는 끝없이 나온다. 각 세포들마다 어찌나 사연도 많은지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유미의 세포들이 한데 뭉쳐 어떤 사건이 일어나는지 보는 건 더 쏠쏠한 재미다. 우리가 월요병을 겪는 모습, 출근 준비를 하는 모습이 어찌나 똑 닮아있던지. 평범한 일상을 기발하게 표현하는 작가님의 발상에 혀를 내두를 뿐이다.



특히 구독자들 중에서도 여성의 비율은 압도적으로 높다. 업로드 때마다, 인기있는 웹툰 1위는 10대부터 30대 여성들까지 모두 '유미의 세포들'이다.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여자가 느끼는 설명할 수 없는 오묘한 마음을 너무 잘 긁어주기 때문이다. 어찌나 복잡 미묘한 마음과 관계를 잘 읽어내는지 모른다. 그것도 시각적으로 그렇게 잘 설명할 수가 있나. 내 속마음을 어찌나 속속들이 알고 있는지 매번 당황스럽다.

 


<135화 일급비밀>


하나 이야기하자면, 여자가 저 깊은 마음속에 숨겨놓았던 이야기를 구웅(구남친)에게 결국 하게 되는 에피소드135화 일급비밀)가 있다.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 몇번을 물어야 겨우 꺼내게 되는 예민한 이야기를 유미가 말하는 에피소드였는데 꽁꽁 동봉한 편지봉투가 찢어지며 그 비밀이 끝내 드러나는 장면으로 비유됐다. 와, 이렇게 여자의 심경을 찰지게 표현한 장면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소름 돋았다. (이런 장면은 135화 말고도 무수히 많다.) 매번 볼 때마다 작가님의 섬세한 촉과 찰진 표현력에 매번 감탄할 뿐이다. 작가님이 여자의 탈을 쓴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다. 


센스도 장난 아니다. 구웅이 처음 유미를 만났을 때 에피소드가 기억에 남는다. 보자마자 반해버려서 심장에서 일하는 쿵식이 쾅식이(심장에서 일하는 박동세포)가 심장박동을 멈춘 장면, 우리가 흔히 결심하고 금방 포기하는 일을 작심삼일 세포로 표현한 장면, 배가 너무 고파서 꼬르륵 소리가 나는 일을 뱃가죽 피리로 표현한 에피소드.. 하나하나 다 주옥같다. 좋은 콘텐츠를 이런 약한 글빨로 설명해서 너-무 아쉽다. (그래서 꼭꼭 웹툰으로 직접 봤으면 좋겠다.)   




그 이유 말고도, 이 웹툰을 가장 애정하는 이유  


<194화 남자주인공>


그런데, 내가 이 웹툰을 가장 애정하는 이유는 따로 있다. 꼭 내 인생을 어루만져주는 이야기 같기 때문이다. 단순하게 보면 유미와 구웅, 유미와 바비처럼 커플이 꽁냥거리는 연애 이야기로 보일 수 있지만 결국은 '유미'가 유미답게 성장하는 이야기다. 주인공은 유미 단 한 명뿐이다. 웹툰이라서 가볍게 느껴질 뿐이지, 결코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쭈뼛거리고 두려움이 많고 원하는 게 뭔지 모르는 어수룩한 유미가 어엿한 어른으로 자라는 과정이 보인다. 감정에 솔직해질 줄 알고, 용기 낼 줄도 알고. 끝까지 도전하는 모습을 보며 나 또한 위로받는다.


이야기의 주인공은 '구웅과 유미' 혹은 '유바비와 유미'가 아니라 단 한 명 '유미'라는 세포들의 단순한 메시지가 참 울린다. 유미의 삶이 곧 내 삶처럼 여겨져서, 독자들도 유미를 힘껏 응원하는 건 아닐지 모르겠다. 유미가 나 같아서 위로받는다.


이런 독자들의 마음은 다 하나같이 똑같나 보다. 자기 일인 양 댓글로 유미를 욕하는 동료가 있으면 절친처럼 대신 욕도 하고, 좋은 일을 앞뒀을 땐 행운을 빌어주기도 한다. 댓글로 작가님에게 말도 걸고 작가님은 다음화에 반영하기도 한다.(개인적으로 이런 반응을 보는 맛으로, 웹툰을 보기도 한다. 이렇게 친근한 웹툰이라니!)  

 

<249화 인터뷰> 깨알같이 등장하는 작가님




얼마 전에는 작가를 준비하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유미도 결국 잘됐잖아. 우리도 글로 먹고살 수 있을 거야. 우리는 아직 발효되는 중일 뿐이야." 괜스레 위로가 됐다. 웹툰이지만, 유미의 생활이 나의 하루와 별반 다르지 않아서 '나도 언젠가는...'이라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기록하며 쌓아나간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응원하는 만큼, 유미라는 사람이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다. 유미도 나도 각자 이야기의 주인공이니까. 그러니까 끝까지 해피엔딩 해주세요. 작가님!




[이거 왜 좋아요?]

저만의 취향 리스트를 디테일한 이유와 함께 하나씩 공유합니다. 그 좋았던 경험을 차근차근 살펴보며, 왜 그런 감정이 들었는지 기록하려 합니다. 계속 발길이 가는 가게, 구독하며 꼭 챙겨보는 웹툰, 사용하기 편하고 좋아 자꾸만 손이 가게 되는 물건들. 살아가는 작은 방식을 조잘조잘 풀어나가려고요. 


**위 이미지 출처는 <유미의 세포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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