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갑작스런 폭설에 개고생 귀가하며.
어제 저녁, 대설 예보를 들을 때만도, '얼마나 내리겠어?' + 나름 4wd의 힘을 믿으며 아무 생각 없이 수서역 근방을 향해 집을 나섰다. 지인과 간단한 저녁 와중에도 '눈이 참 아름답게 내리네' 라며 무뇌아 상태에 있던 중, 8시 조금 넘어 자리를 파하고 건물 밖으로 나와서야..아뿔싸........
이미 주차된 차 위로 10cm 넘는 눈이 쌓여있고, 주변은 그야말로 '설국'. 조금이라도 지체할수록 바보 될 것 같은 직감에 잽싸게 앞유리, 뒷유리, 운전석/조수석 창과 사이드미러만 털어내고 출발. 하지만 좁은 골목길에 줄줄이 따닥따닥 세워놓은 차들 사이에서, 후진으로 큰길까지 나오는 것부터 엄청난 난관이었다. (암튼 성공)
큰길 상황도 그다지 다르지 않았는데, 차선은 일단 없었고..카카오맵에서 가르쳐 준 경로 상 내 전방 30m에는 약간의 언덕에서 헛바퀴 돌며 길을 막고 서있는 두대의 차가 보였다. 일단은 반대방향으로 출발하여, 경로 재탐색에 의지하며 여정을 시작. 테슬라가 좋은 건지, 운전자가 용감한 건지, 20km 간신히 내고 있는 내차 옆을 휭휭 추월해가는 차들도 보였고, 역시나 겁 없이 빨리 가시는 택시들도 있었다.
아무튼 '안전! 안전! 안전!'을 머릿속에 되네이며,
시야를 가리며 내리는 눈송이들
차가 달리는 중에도 계속해서 유리창에 쌓이는 눈더미들 (뒤창에 와이퍼가 없어서 파카 입은 채로 히터 풀파워 + 열선으로 뒷유리창을 덥히며 오느라 얼굴이 벌겋게 다 익었답니다)
보이지도 않는 차선
난생처음 경험하는 미끄러운 노면
예측할 수 없는 다른 차량들의 움직임
등과 씨름하며 1시간 반 만에(평소 20분 거리) 집에 무사 귀환하였다.
그런데, 운전을 하며 돌아오는 와중에 계속 맴도는 생각은 '나름 20년 넘는 운전 경력의 인간도 부들부들 떨며 운전대를 잡고 있는데, 과연 자율주행 차량은 이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였다.
자율주행의 운전 역시 1) Perception: 주변의 사물과 환경을 인지하고, 2) Localization: 그것을 통해 내가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알고, 3) Path Planning: 어느 방향으로 어느 속도로 진행할지 판단한 후, 4) Control: 그에 맞춰 스티어링과 엑셀/브레이크를 밟는다 에서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기에, 그에 맞춰 생각해보고자 한다.
Perception
눈송이가 시야를 가리고, 유리창에 눈더미가 쌓여 평소 대비 주변을 살피기가 극악한 상황. 하지만, 나는 자동차나 사물의 일부만 보여도 추론을 통해 object recognition이 가능했고. 또한 스냅샷이 아니라 연속된 프레임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소실된 프레임은 앞뒤 프레임으로 실시간 추론 가능하니까, 뒷목과 어깨가 뻗뻗해지도록 집중하긴 했지만 해결 가능
사람의 눈에 해당하는 센서로 카메라와 라이다를 사용하는 자율주행차는 어떨까? 아래, 비교에서 알 수 있지만, 가격은 논외로 하더라도 악천후에서 광학을 기반으로 한 두 센서는 자기 몫을 하기가 힘들다.
하지만, Radar라면 이런 악천후에서도 평소와 다름없는 기능을 할 수 있다. 물론, 기존의 Radar라면 낮은 해상도 이슈로 극히 사용이 제한적이겠지만, 최근의 Image Radar 개발 속도를 본다면 충분히 의미 있게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그래서, 4D Image Radar를 만들고 있는 스마트레이더시스템 에 투자했다 ^^ (https://platum.kr/archives/121308)
Localization, Path Planning
눈으로 모두 차선이 뒤덮여 일단 차선이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평소 다니던 길이었기 때문에 지금의 도로가 3차선인 것을 이미 알고 있고, 그래서 지금 인지되는 전체 차도 폭을 머릿속으로 1/3로 나눠 가상의 차선을 그릴 수 있었다. 물론, 이것도 인간 배터리 방전 속도가 거의 10배는 될 정도로 초집중 필요.
자율주행 차량 역시도, HD Map을 가지고 있을 것이기 때문에, (GPS 등을 통해 측위만 정확히 된다면) 현재 위치의 차선 수를 알고, 알고리즘 적으로 나와 같은 가상의 차선을 그리고 따라가는 것은 얼마든지 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나도 일부 그렇게 했지만) 자율주행 업계 지인의 의견은 아래 그림과 같은 플래투닝(군집 주행) 느낌으로 차량 간 상호 작용 알고리즘으로 간이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변 차량 없이 혼자 가고 있다면.. 또 플래투닝 때문에 간격을 넓힐 수는 없을 텐데, 눈길이라 한대가 갑자기 미끄러지거나 경로 이탈한다면.. 등등이 괴로운 상황은 여전히 많을 것 같다)
Control
미끄러운 노면과 예측 불가한 다른 차량의 움직임은.. 그저 천천히 가고, 엑셀 천천히 밟고 브레이크 되도록 자제하고. 또 충분한 간격 유지하고 외에는 방법은 없었다.
이 부분은 미리 scenario로 이런 노면 환경에서는 평소 대비 어떤 운행을 해야 하는지 training 되어있지 않았으면 매우 어려운 숙제일 것 같다. 모터를 쓰기에 내연기관 차보다 섬세하게 컨트롤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전기차라면 또한, 노면 미끄러짐을 매우 빠른 속도로 읽고 컨트롤하여,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도 테슬라 운전자들은 그래서 더 용감했던 것인가?)
물론 기존 자동차의 틀 안에서 고민하지 않으면 다른 방법들이 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6년 전 전시회에 나왔던 컨셉 이기는 하지만, 어제와 같은 노면을 전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미래형 타이어가 답이 될 수도 있고.
또 조금 더 따끈한 컨셉으로, 현대자동차의 엘리베이터처럼, 미끄러지지 않는 다리로 뚜벅뚜벅 걸어서 어제와 같은 상황을 헤쳐나갈 수도 있을 것 같다.
한편으로는 지금껏 자율주행 영역에 투자된 자금과 시간이 얼마인데, 훌륭하고 똑똑하신 박사님들이 이런 것들도 다 고려하여 만들고 계시지 않을까 생각이 들며, 이런 환경이 가장 익숙할 Yandex(러시아의 구글. 구글/바이두와 마찬가지로 자율주행 기술을 열심히 개발하고 잇음)라면 고민해보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래서, 영상을 찾아보니, 아래와 같이 눈이 많이 내렸던 모스크바에서 자율주행을 테스트한 약 2년 전 영상이 있었다.
하지만, 여기도 이미 제설작업이 어느 정도 되어있는 상황이어서 어제 정도의 상황도 극복 가능한지는 알 수가 없었다.
개인들 중에 테슬라 오토파일럿을 가지고 스스로 실험용 쥐가 되시는 분들도 있었다. (용자시여!)
제법 잘 가는 듯하지만, 결국 제설차 따라가는 거고. 아무튼 하지 말라고 한다.
아직은 이런 류의 코너 케이스들까지 모두 고려하고 대비하기에는, 일반 기상 상황에서도 풀어야 할 문제들이 어마 무시하게 많이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쓰잘데기 없는 상상과 고민을 하며 자율주행 업계 전문가에게 질문하자 그는 이렇게 답했다.
이날은 쉰다고 해야죠. 사람들도 차 버리고 가던데요.
맞다. 이게 정답이네. 역시 전문가!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