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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운하 Jan 08. 2022

부끄러운 손



 내 앞에 손이 있다. 작고, 검고, 주름지고, 초췌한 내 손이다. 형색으로 치자면 좀처럼 가치를 얻기 어려운 잡부의 형색이다. 그러나 이 손이야말로 내 삶의 중심이다. 신체의 백분의 일도 안 되는 작은 형체지만, 이 손이 없이는 태산만한 신체가 폐가처럼 방치될 수도 있고, 칡넝쿨에 덮인 소나무처럼 도태될 수도 있다. 그러니 제 아무리 잡부의 형색일지라도 당당하고도 영광스럽게 귀빈처럼 접대 받아야만 할 소중한 가치가 있다. 


 몇 사람의 모임이 있었다. 음식점 탁자를 중심으로 내 주위에 앉게 된 그들은 모두가 도시의 여성들이었다. 손의 모양새는 각기 다르지만, 그 형색만은 희고, 곱고, 세련되고, 우아하기까지 했다. 음식이 차려지자 그 손들이 분주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마치 봉황이 춤추는 듯 했고, 백로가 날갯짓 하는 모습이었다. 까마귀가 날아들어 요리를 해작거릴 정경이 도저히 아니었다. 다양하게 펼쳐진 음식을 향해 여기저기 손을 뻗쳐나갈 수가 없었다. 기껏 눈앞의 두어 가지 음식에만 손이 오고갔다. 그것도 자꾸만 움츠려 드는 까닭에 빈번히 찌꺼기 같은 모양새로 입속에 흘러들었다. 그렇게 나는 내 손을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젊은 날 방랑기 때 만난 어느 민속마을에 잠시 거처를 두고 생활한 적이 있다. 풍류의 정자(亭子)가 아닌, 수양과 강학을 겸하는 정사(精舍)에서의 생활이었는데, 주변에 있던 버려진 닭장을 뜯은 폐목과 흔한 참나무를 가지고 내 손으로 직접 침대와 탁자, 의자 등의 가구를 만들었다. 그 가구들은 방문하는 사람들마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예술미를 자랑했다. 

 그 마을에는 유학자요, 도인의 형색을 갖추신 노옹이 한 분 계셨다. 하루는 어떤 일로 그 분을 방문케 되었는데, 면접하는 순간 대뜸  “수재(手才)가 아니신가!” 라는 말씀을 하셨다. 참으로 혜안을 가지신 분이었고, 나를 되돌아보게 하신 분이었다. 그때 만약 내 운명을 바꿨더라면, 오늘날 나는 공예분야의 지고한 장인의 역사를 이루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실제로 내 손의 유희는 마치 마술 같아서 다방면으로 현란한 솜씨를 나타내고 있다. 물론 ‘현란함’이란 전혀 배우지 않은 상태의 수준에 빗대어 표현한 것이다. 그렇다. 어떤 전문지식도 없이 그저 마음이 동하는 요소를 매우 쉽게 관철시키는 재간을 내 손은 갖고 있다. 의자를 만들어야겠다 싶으면 의자가 뚝딱 나오고, 선풍기를 고쳐야 되겠다 싶으면 선풍기가 뚝딱 고쳐지고, 그림을 그려야 되겠다 싶으면 그림이 뚝딱 그려지고, 거북이를 조각해야겠다 싶으면 거북이가 뚝딱 나타나는 것이다. 내 손의 숙명은 그처럼 현란하다. 다만 전문적이지 않을 뿐이다.

 이 세상에 수많은 손들이 있고, 그 손들 중에 나와 같은 손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실제로는 한 동네 한 사람 있을까 말까할 정도로 그다지 흔한 편은 아니다. 따라서 내 손은 일종의 선택 받은 손이요, 귀한 손이요, 영광스런 손이어서 어디엘 내어놓아도 당당할 수가 있다. 이러한 내 손 앞에서는 오히려 도시 여성들의 손이 부끄러움에 못 이겨 음식 한 점도 집어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어야함이 마땅하다. 그럼에도 나는 내 손을 유독 부끄러워했다.  


 생전이든 사후든 부모님과 원한이 없다. 서로 사랑했다는 이야기일 수도 있지만, 내 집안의 형편은 사랑보다는 서로에 대한 애틋함의 분위기가 더 강하게 흘렀다. 우리는 부모로써 자식으로써 서로를 충족시켜주지 못했다. 내내 빈곤한 삶으로 인하여 서로에게 남모를 고통만 되었다. 

 의식주 충족은 어머니로부터 이루어졌다. 그것은 곧 어머니의 손이 하루 쉴 사이 없이 고된 노동을 잡고 있어야 하는 신세가 된 셈이었고, 그만큼 어머니의 손은 재빠르게 늙어갔다. 그 손을 차마 쳐다 볼 수 없었다. 어머니의 손은 언제나 괴로움과 죄책감으로 다가왔다. 그런 상황에서 참나무껍질처럼 거칠어진 어머니 손을 잡는다는 것은 상상 밖의 일이었다. 결국 어머니의 손을 단 한번이라도 잡아주지 못했다. 어머니는 그렇게 떠나버렸다. 애당초 노동자의 형색이 아니었던 아버지는 언제나 철학적 삶의 심연에 빠져있었다. 그런 아버지의 손은 고대의 어떤 유물 같았다. 다정하게 잡을 분위기가 결코 아니었다. 역시 그대로 기러기처럼 날아가 버렸다. 

 서로 애틋해하면서도 끝끝내 잡을 수 없었던 손. 이런 손의 경우는 슬픈 신화 속의 매체인 메아리 같이 허공을 휘젓는 손일뿐이다. 재간 많은 내 손은 이렇게 슬픈 이면을 갖고 있기도 하다.  


 손을 부끄러워하는 사람이 더러 있을 줄 안다. 그들이 손을 부끄러워하는 까닭은 대체로 때 자국이 절절 흐른다거나, 노동의 시련으로 거칠어지고 변색되어 천한 모습이 되었거나, 어떤 사고로 흉하게 되었거나, 또는 늘 빈손이어야 할 때, 아니면 사악하게 사용한 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내가 도시 여성들의 하얀 손앞에서 자꾸만 움츠려든 이유는 그런데 있는 것이 아니었다. 내 손의 가치를 잡지 못한 채 사회의 미아가 되게 만든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재간이 있어도 장인의 역사를 움켜쥐지 못했고, 사랑이 있어도 그 따뜻함을 움켜쥐지 못한 채 검게 피폐해져 버린 내 손은 사실상 실패한 손이다. 손을 볼 때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신체, 더 나아가 내 인생의 중심적 가치가 있음에도 늘 허공만을 휘젓게 하여 결국엔 제초제를 덮어쓴 풀잎처럼 허망하게 시들어버리고 있다. 현란한 손재간으로 고치거나 만들어야 할 것은 정작 내 손이다. 보면 볼수록 그렇다. [끝]




[사진출처] ALL PIXBAY - THANK Y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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