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를 은둔수필가로 말한다. 실제로 나는 저 소란스러운 밖에 나서 인간적 사회적 연대감을 지니고 열렬히 활동하는 행위를 일절 하지 않는다. 오로지 내 성향과 내가 처한 고적한 환경 속에서 있는 듯 없는 듯 조용히 움직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경험이나 오감으로 들어와 마음에서 창조되어, 가슴으로 나오는 글을 쓰는 행위 만에 몰입할 뿐이다.
나의 은둔적 태도에 위대한 신념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스러운 목적이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나 한 개인의 성향적 특성일 뿐이다. 나의 이 특성은 현대 사회와 결별한 집시의 태도와 같은 요소가 있다. 이를 현실적으로 평가하자면, 시대 변화에 따른 실패를 끌어안는 외골수 기벽(奇癖)이 될 수 있을 뿐이다. 결코 옳다고는 할 수 없는 상태이다. 그럼에도 나는 ‘은둔의 글 쓰는 삶’을 내 숙명으로 누리고 있다.
다만 글이란 숨기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는 성질의 것인지라, 쓴 글로 초근목피의 삶에 도움이 될 돈이라도 좀 벌까 싶어 이런 저런 공모전에도 나타내어 보고, <브런치스토리> 같은 플랫폼에도 나타내어 본다. 이는 글의 성질에 따른 당연한 일이자 자연스러운 일이기에 그리하는 것이다.
며칠 전 출간한 책도 그렇게 해서 당연히, 자연스럽게 세상 밖으로 나왔다. 출판사와의 소란스러운 연대도 원치 않은 바이고, 북토크나 인터뷰 같은 일은 특히 원치 않았다. 그저 말없는 세월의 흐름처럼 말없이 홀로 준비하여 두 권의 책을 동시에 부크크 POD 출간으로 이루었다. 내 생애의 첫 책들은 그렇게 은둔 속에서 조용히 출산되었다.
나는 홍보나 마케팅이 아닌, 오로지 나의 글의 품질이 결과를 만들기를 바란다. 물론 이는 현실과 괴리감이 있는 꿈꾸는 판단일 수밖에 없다. 현실적으로 은둔에서 어둠으로 사라지는 비운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농후하다. 그럴지라도 나는 글의 품질이 결과를 만드는 일을 옳게 여기는 탓에 화려한 마케팅의 요란을 떨지 않고 그렇게 놓아 둘 것이다.
그러면서도 글이 지닌 나타냄의 성질에 대한 믿음을 갖기는 한다. 누군가는 나의 책 이야기를 물결 흐르듯 하게 될 일이고, 바람 스치듯 하게 될 일이다. 이 글도 그런 것이다. 나의 책을 위해 내가 나의 책 이야기를 물결 흐르듯 하는 것이고, 바람 스치듯 하는 것이다. 오직 내가 하는 일은 이 정도이다.
유명인사도 아닌데다가 마케팅마저 없다면, 이 시대의 미아가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러나 두렵지는 않다. 이 상황은 애당초 내게 있을 일임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렇게 예견하고 있었던 상황은 전혀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다른 것에 집중케 했다. ‘글의 품질’의 집중이다.
‘글의 품질’이라고 해서 무슨 대단한 명작을 의미함이 아니다. 그저 나의 두뇌와 영혼이 지닌 만큼의 능력에 따름 하는 품질이다. 따라서 글 능력이 좋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이의 소꿉장난 같은 품질이 될 수 있음을 안다. 그런 정도를 잘 아는 가운데 나는 노력해왔다. 내가 지닌 수준의 글에 최선을 다하기 위해 글 한 편 한 편마다 많은 도구와 절차가 있어야 하는 연금술을 펼쳤다. 현실, 꿈, 지식, 상념, 사유, 철학 등과 같은 많은 도구들과 문법, 표현, 예술 등의 절차 말이다. 그러기에 실패에 두려워 할 일 없고, 괴로울 일이 없다.
나는 책 속의 여러 글들로써 여러 번의 상을 받았다. 품질이 있는 글은 그렇게 인정됨을 겪은 것이다. 책도 그렇게 될 일이 아니겠는가. 글에 최선을 다한 이상, 믿어야 한다. 이 시대가 아니면, 먼 훗날에 그 빛이 있을지라도.
그러나 그 또한 의미를 갖지 않는다. 출간의 사실, 결과의 여부가 어떻든 연연치는 않는다. 그것은 오랜 흐름 속의 자연적 성공이나 실패의 섭리로 놓아두어야 하는 일이다.
사실 ‘출간’이라는 자체가 그러한 것이다. 출간이란 무엇인가. 나의 존재, 느낌, 앎을 글로 적고 책으로 만들어 세상에 내보이는 일이다. 왜 나의 존재, 느낌, 앎을 글로 적어 책으로 내보내는 것일까? 글 쓰는 일이 결코 쉽지 않고, 전업으로 삼았다가는 굶주리기 십상이기도 한데, 왜 우리 인간은 심장 터질 듯한 사념의 소요를 겪으며 글을 쓰고 나타내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에서 만약 명예, 인기, 경제적 수익을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작가가 아니라 오로지 자기 욕망을 위해 기민한 처세술을 부리는 모리배에 지나지 않으리라.
물론 인간이라면 누구나 명예 얻고, 돈 생기고, 인기 얻는, 성공의 그 요소들에 마음이 끌리는 일은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그 일은 글과 책을 이루고 난 사후에 절로 갖게 되는 순연한 염원이라는 점에서 자의적 욕망과 명백히 분별된다.
작가로서 글을 쓰거나 책을 내거나 하는 일은 자기 욕망의 목적에 기인하는 일이 아니고, 노력으로 연금한 자기의식의 문을 열어 독자가 누릴 수 있는 어떤 세계를 펼치는 일이다. 작가가 열어준 어떤 세계를 만난 독자는 또 그 세계로써 자기 세계를 확장시켜나가는 일이 작가와 독자와의 관계이다. 이 관계에 공감, 지혜, 감명 등 보람적인 결과가 나타나면 작가의 글쓰기도 성공한 것이요, 독자의 글 읽기도 성공한 것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 서로에게 보상이 되고, 보상은 자연스럽게 정신적 물질적인 실질적 형태로 나타날 수 있게 된다. 이런 경과가 순리요, 우리들 삶과 세상의 지반을 탄탄하게 만드는 진리이다.
글을 쓰는 일과 책을 내는 일에 대해 나는 그렇게 여긴다. 그래서 더욱 어떤 생태적 세계가 되는 글의 품질을 생각한다. 그런 글의 완성은 분명 창조의 환희를 불러일으키는 일이다. 그 일은 더없이 행복하고, 그 어떤 보상보다도 황홀한 보상이 된다.
오로지 품질에 기반을 둔 글 한 편의 완성! 그 글들의 작은 도서관인 셈인 한 권의 책과 또 한권의 책! 나는 최선을 다했고, 글의 성질에 따라 자연스럽게 조용히 세상에 내놓아졌다. 이제 나의 책들은 놓쳐버린 풍선처럼 세상의 지평을 한없이 남실남실 흘러갈 것이고 스쳐갈 것이다.
생애의 첫 출간을 한 지금 내게는 그런 사실들이 조용히 흐르고 있고, 나는 그것만으로 경건한 기쁨을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