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일부터 단계적 일상 회복을 위한 위드코로나가 시작되었다. ‘현대사회에 신종 전염병이 웬 말인가?’ 코웃음 치던 시간도 잠시, 코로나바이러스는 21세기 패러다임과 인식을 전환을 불러일으키며 세상을 변화시키기 시작했다.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비일상의 일상화’는 사람과 사람 간의 물리적, 공간적 연결을 무너뜨렸고, 이에 빠르게 적응해야만 하는 우리는 온라인을 통해 연결되는 ‘온택트 시대’라는 새로운 트랜드에 적응하느라 숨 가쁘다.
나에게 이러한 일상의 변화는 ‘위기’였다. ‘예술과 전시가 있는 서점’이란 모토로 전시와 책을 소개하는 공간을 운영하면서 물리적, 시/지각적 경험으로 펼쳐지는 사진집을 어떻게 충족시킬 수 있을지 막막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구태를 벗어나지 못한 소리일지 모르지만, 예술・사진과 책 사이에서 작동하는 시각적 언어를 이해하기 위한 이미지 문해력은 그 의미를 상실된 지 오래다. 종종 아트 북은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하나의 시각적 오브제로 여겨지고, 온라인에 최적화된 비(非)물리적 감각으로서의 사진은 무수한 이미지들의 조각일 뿐이다. 시각과 촉각, 시퀀스나 내러티브로 구성된 사진집은 21세기 코로나 재난 시대로 급격히 달라진 온라인 환경 속에 덩그러니 남겨진 고철 덩어리가 되어가고 있다. 이에 덧붙여 예술은 타 장르에 비해 출판 비중이 낮으며, 다양성이 적다는 것은 대부분 아는 사실일 것이다. 그중에서도 사진 출판은 텍스트 비중이 높은 이론서나 기술서와 같은 도서가 그나마 독자층이 견고한 편이지만, 사진집처럼 시각 언어로 점철된 책은 일부 사진 전문가의 전유물이 되어 대중에게 오랫동안 소외되어왔다.
사진집의 시/지각적 언어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다시 말해 이미지 문해력의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1990년대 이후 대중문화, 시각문화의 폭발적 성장을 경험하며 감각적인 시각언어를 수용해 온 신세대의 등장이 절실했다. 이들은 문자의 시대에서 이미지・영상의 시대를 경험한 세대 동시에 국제화된 시각적 감수성에 맞물려 예술과 책이라는 아날로그적 물성, 재미와 다양성, 개성을 추구하는 시대정신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세상은 생각보다 더 빠른 속도로 급변을 거듭하고 있다. 초고속으로 디지털화된 미디어는 모든 것을 연결하고 공간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의 가상현실로 재편되었으며, 포스트 인터넷 예술로 편입된 사진은 인간의 지각을 초월한 광학적 이미지 세계로 이동했다. 온・오프라인에 쏟아지는 이미지 홍수 속에서 우리는 갈피를 잡지 못하고 허우적거린다.
그렇다면 이 시대에 우리에게 요구되는 예술과, 사진 출판이란 과연 무엇인가? 다른 차원의 감각으로 이동한 관객(또는 독자)에게 예술의 도구적 가치로서 책은 어디까지 기능할 수 있는가? 자본과 기술의 발전이 가속화되며 진화하는 감각의 속도에 맞추는 동시에 사유의 공간으로서의 치환이 과연 가능하긴 할까?
90년대 한국 사진집이 낯설었던 이유
시대를 충실히 기록하고 끊임없이 세상에 질문하며 사유하는 것이 예술의 본령이라면, 책은 이러한 생각의 흐름을 담는 육신이자 메신저이다. 이러한 예술과 책의 의의를 되새기며 한국 출판문화 안에서 사진전문도서라는 초석이 세워지게 된 시대적 연대기를 입체적으로 고찰해 본다. 논란의 여지는 있을지언정, 나는 매체 역사적 관점에서 한국의 사진출판문화는 그 뿌리를 미처 내리기도 전에 침체기를 겪었다고 감히 짐작한다. 그리고 이 시기를 사진비평과 전시기획이 폭발적으로 성장한1990년대 초부터 2000년대 중반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그 까닭은 한국현대사진의 징후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1988년의 전시 《사진・새시좌전》 이후, 한국사진은 창작의 영역뿐만 아니라 예술 비평과 담론화, 사진제도로서의 교육과 기술 제반 여건이 마련되는 과도기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은 세계로 세계는 서울로”를 외치며 개최된 88서울올림픽의 개막은 우리의 시선을 전근대적 사고에서 벗어나 ‘나’와 ‘국가’ 간의 정체성으로 집중시켰고, 포스트모더니즘이란 서구 예술 사상은 대중문화 속으로 침투하며 자연스럽게 사진/영상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징적으로 이는 90년대 다수의 출판물에서 발견할 수 있다. 당시 사진가들이 보여준 한국적 이미지의 표상화 과정은 시대적 소명 의식과 사회/정치적 이데올로기라는 두 가지의 큰 갈래로 생산, 소비되는 양상을 띤다.
한쪽은 한국의 전통과 토착문화에 속한 풍경, 인물, 사건이 등장하는 소재 중심의 기록, 예술 사진으로 구체화 되었다. 강운구의 『경주남산』 (열화당, 1987), 김수남의 『한국의 탈 & 한국의 탈춤』 (행림출판,1990), 한정식의 『나무』 (열화당, 1990), 구본창의 『생각의 바다』 (행림출판, 1992) 김기찬의 『골목안 풍경V』 (눈빛, 1999)과 같은 사진집을 예로 들 수 있다. 한국 사진출판의 사진집 발간의 주요 배경으로, 《프레임 이후의 프레임: 한국현대사진운동 1988-1999》 (대구미술관, 2018) 전시 기획자 이경민은 다음과 같이 밝히고 있다. “한국에서 사진집이 발간된 시기는 1960년대 이명동, 최민식, 주명덕 등의 책이 출간되면서 본격적으로 역사적 사건과 시대상을 기록하는 다큐멘터리/보도 사진집이 자리 잡으며, 이후 사진전문출판사와 일부 열화당 같은 기성 출판사의 합류로 보편화 되기 시작했다.” 이경민 기획자가 언급한 것처럼, 국내 사진집의 시작은 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동아일보 기자였던 이명동이 1989년 창간한 잡지 『사진예술』과 일부 사진전문출판사(사진과평론사, 도서출판 시각, 행림출판, 눈빛 등)에 의해 재점화되면서 사진출판 생태계가 구축된 것이다. 또 다른 한 축은 한국이란 특수한 지형에서 세계를 인지하고 그 문화 속으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정부에 의해 발행되는 공식 사진집이나 신문사의 기록사진집 『광복40년』 (서울신문사, 1985), 『환희와 우정: 미소 스포츠 사진전』 (조선일보사, 1990) 등이 주를 이루었다. ‘민주화의 원년이자 88서울올림픽의 감격으로 묶여 회고되는 88년’ 이후 ‘대한민국’은 미술 영역뿐 아니라 디자인, 건축, 시각 문화 산업 전반에 걸쳐 전문 영역을 성장시키는 표면적인 발판을 마련하게 된다. 각 분야에 전문잡지들이 속속 등장했으며, 출판 시장은 활기를 띠었다. 또한, 열화당과 같은 시각문화예술 기반의 출판사가 척박했던 사진출판 문화에 기여한 바가 크다. 그러나 이는 소수에 불과하다. 행림, 시각 출판사를 비롯해 90년대 등장한 김승곤의 타임스페이스, 사진비평지 계간 『사진비평』 등 다수의 출판사가 사라져갔다.
책은 정보・지식을 공유하는 최적의 매체였기에 사진비평과 이론을 근간으로 한 지식 패러다임을 구축하는 통로 역할을 하였지만, 이는 이미지 기반의 사진책과는 거리가 멀었다. 문자 기반의 출판 도서가 주류였던 당시, 일부 출판사의 편집자・디자이너의 역할이 눈에 띄었을 뿐, 이미지 편집자(또는 사진 편집자)는 부재했다. 임시적 방편으로 일부 사진가 또는 편집디자이너의 손에 맡겨져 제작되는 척박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90년대 한국사진의 현대성은 전시기획과 사진비평 담론화라는 거대한 두 축이 연동하며 일궈낸 결과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처럼 한국 현대사진은 이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풍요로워졌음에도 눈빛 출판사의 이규상 대표는 ‘1990년대가 사진출판의 초석을 세운 연대이지만 고난의 연대’라고 말한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사진출판의 한계와 문제점을 사진계의 작가주의적 태도와 활자 위주의 교육, 사회 전반의 문화 성숙도 측면에서 지적한다. 무엇보다 이규상 발행인이 토로하는 ‘전대(前代)의 사진을 극복하며 발전하는’ 한국 사진의 특수한 지형은 사진출판문화에도 그대로 대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부재의 시대를 마치며
다시 돌아가 질문한다. 90년대 한국 사진집은 왜 그렇게 낯설었는가. 척박한 땅에서 솟아난 한국사진은 미처 꽃을 피우기도 전에 시들어버렸다. 사진에 대한 개념과 지식은 쌓여갈지언정, 대다수의 작가들에게 사진을 기록하고 책으로 담아내는 과정은 중요치 않았다. 예술 주체로서 미술관으로 편입되는 과정, 즉 전시에 집중하였고, 도록이나 리플렛은 행사 차원의 부속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 원인을 인쇄, 디자인, 편집 전문가의 부재의 문제로만 치부할 수는 없다. 정작 사진출판의 꽃인 사진집은 작가들에게 일찌감치 소외되었던 것이다.
90년대 말, 한국 사회는 IMF라는 경제적 위기를 겪으며 모든 성장에 제동이 걸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인터넷 국가의 초석을 다졌다. 이는 사진출판의 역할과 가능성을 실험하기도 전에, 사진이 인터넷상의 웹진이나 정보지 수준의 잡지, 기술서로 편향하는 계기가 되었다.
2022년은 이안북스가 15년째 되는 해이다. 2007년 아시아예술사진잡지 『IANN』을 출간할 당시를 떠올려 본다. 29살의 나는 해외 유학에서 수많은 사진집과 잡지를 통해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을 접신하였다. 그렇다. 신과 마주하듯, 사진집에 매료되었고 사진의 진정한 매력은 전시와 더불어 사진집에 있음을 깨달았다. 한국에 돌아와 한국의 사진책을 보며, 새로운 사진 출판을 꿈꾸었다. 이안북스는 왜 사진에 집착하는가.
때로는 사진집의 형식과 틀을 깨며 동시대 한국사진가들의 작품집을 발간하고, 사진 아카이브 시리즈를 통해 원로 사진가의 사진집을 복간하는 이유는 아마도 부재하는 것들에 대한 열등감과 열망이 뒤섞여있기 때문이 아닐까. 90년대를 메꾸고, 앞으로 사라져갈 2000년대를 채우는 것에서 한국사진의 중간세대로서의 가교 역할을 하고 싶은 바램이다. 이 글에서나마 고된 출판업을 지속하는 데 사진작가만큼이나 필요한 출판인들의 사회적 역할과 기능에 대해 토로하고 싶다. 그러나 우린 창작자가 아니기에 사진가, 작가의 눈이 없이는 책은 만들 수 없다.
아름다운 책은 아름다운 협업에서 완성된다. 2020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개최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10>에 이동근 작가의 『IN THE SPOTLIGHT: 아리랑 예술단』 이 선정되었다. 사진집으로는 첫 상인만큼 남다른 감동을 느꼈는데, 그 이유는 각자의 노력과 애씀이 있었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사진출판문화에 인쇄기술과 디자이너, (이미지)편집자, 저자와 함께 만드는 수고로운 공생이 지속되기를 바란다. 한국사진의 다양성은 시간이 흘러 남겨진 책의 흔적을 통해 경험할 것이기에.
마지막으로 출판업에 종사해온 이전 선배들에게 경의를 표하고 싶다. 해외 유명 출판사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지금의 한국이 진일보했다는 데 자신감을 가져야 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