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in 인도 그림 여행기 - 골드시티 자이살메르
"자이살메르 가요? 거긴 뭐 그냥 모래언덕이지. 너무 기대하지 마요."
자이살메르에 간다고 했을 때, 델리의 한식당에서 만난 어느 한국인 아저씨께서는 이렇게 말했다. 그 말과 함께 자이살메르 사막 투어에 대한 내 기대감은 와장창 부서졌다. 난생 처음 가는 사막에, 낙타에, 반짝이는 별들을 볼 생각에 얼마나 설레였는데, 모래언덕이라니. 아저씨는 자신이 세계의 내로라하는 사막들을 다 가보셨다면서, 자이살메르의 사막은 사막 축에도 못 낀다고 쐐기를 박으셨다. 그렇게 난 자이살메르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내려놓게 됐다. 그 때문이었을까? 자이살메르의 사막이 이토록 좋았던 건.
원래 나와 원석이의 계획은 자이살메르에 도착한 날 바로 낙타사파리에 떠나는 것이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우리 둘의 컨디션은 최악이었다. 결국 방에서 이틀간 푹 쉬면서 다른 동행을 기다리기로 했다. 원석이의 몸 상태는 특히 좋지 않아 숙소 직원의 도움을 받아 함께 인도 병원에 다녀왔다. 시장에서는 속에 무리가 가지 않을 만한 과일을 조금 사서 돌아왔다. 숙소 루프탑은 식당이기도 했는데, 한국인들을 주로 상대하는 곳이라 한국 음식이 정말 많았다. 우리는 방에서 푹 쉬다가 루프탑에서 식사를 하고, 그림을 그리고, 밀린 일기도 쓰며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꼬박 이틀을 푹 쉬자 이윽고 투어를 함께 하기로 한 동행 둘이 자이살메르에 도착했다. 컨디션이 좀 나아진 우리는 드디어 사막으로 떠나기로 했다.
낙타를 타고 사막으로 떠나는 사파리 투어에는 몇 가지 옵션이 있었는데, 우리는 그중 1박2일 일정의 투어를 선택했다. 사막에서 하룻밤을 자고 돌아오는 투어였다. 함께 떠나게 된 멤버는 우리를 포함해 한국인 여섯명으로 구성되었고, 혼자 여행을 오신 아저씨 한 분을 제외하면 모두 또래였다. 투어날 아침, 마주보고 앉아가는 지프를 타고 사파리 장소인 쿠리사막으로 향했다. 황색빛의 자이살메르 시내는 이내 시야에서 사라지고 주위는 점점 황량해졌다. 달리는 내내 뒤가 뻥 뚫린 지프에서 바깥 풍경을 바라보았다. 모래빛으로 가득했던 그 길이 왜인지 너무나 좋았다. 우리를 뒤따라오는 오토바이와 그 움직임을 따라 일어나는 뿌연 모래 안개, 손 대면 바스라질 것 같은 수풀들, 끊임 없이 불어오는 모래 바람. 그 풍경이 전하는 알 수 없는 일렁임에, 긴 시간 달리면서도 모든 장면을 눈에 넣으려 애썼다. 이 시간과 공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거센 바람에 눈이 따가워도, 같은 풍경의 반복에 지루함이 몰려 와도 다시 눈을 꿈벅 뜨면서 밖을 바라보았다. 그냥 내 눈에 비치는 이 광경을 오래도록 잊고 싶지 않은 마음이었다. 마치 체 게바라의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한 장면 같기도 했다. 낡은 오토바이를 타고 끝없이 달리는 체 게바라와 그를 둘러싼 광활한, 끝이 없을 것만 같은 길... 시간이 흐르는지,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는 이 길에서 내가 갑자기 과거로 흘러가게 되더라도 놀라지 않을 것 같았다.
어느새 쿠리사막에 도착한 우리는 드디어 낙타를 만났다. 낙타는 생각했던 것보다 더 컸고, 그러면서도 무척 귀여웠다.'웃는상'이라는 말은 낙타를 보고 만들어진 단어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모든 표정에 웃음기가 베어있었다. 익히 들어왔듯이 속눈썹이 돋보이게 길고 아름다운 건 물론이었다. 커다란 눈동자와 웃음이 담긴 듯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졌다. 우리는 투어의 인도 직원들(이틀간 우리와 함께 할!)의 도움을 받아 하나둘 낙타에 올라탔다. 낙타는 그 덩치가 말해주듯 올라탔을 때의 높이가 상당했다. 상당한 쫄보인 나는, 낙타가 내리막길을 총총 걸어갈 때면 혹시 이대로 굴러 떨어지지 않을까 무섭기도 했다. 인도 직원 친구는 여태껏 자신이 함께 한 투어 중 낙타에서 사람이 떨어진 경우는 한 번 뿐이었다며 날 안심시켰다. 그치만 그 말을 들은 난 내가 두 번째가 되지 않을까 생각이 들 뿐이었다!
안장 손잡이를 꼭 붙들고 잔뜩 긴장한 채로 시작된 사막투어. 낙타에 거의 매달리다시피 올라 얼레벌레 시작되었지만 적막한 사막의 풍경에 어느새 마음은 차분해졌다. 사막은 고요했다. 마치 우리끼리만 낙타를 타고 다른 세상에 온 것 처럼, 처음 느끼는 고요함이었다. 생각했던 황폐함과는 달랐다. 신비로웠고, 적막 가운데 의외의 생동감이 느껴졌다. 다른 데서 느껴본 것과는 전혀 다른 색깔이었지만 이건 분명 일종의 생명력이었다. 끝없이 펼쳐진 맑은 갈색 모래가 바람에 일렁이고 부서지는 모습은 마치 파도와 같았다. 아, 이토록 멋진 모래언덕이라니. 델리의 아저씨 말에 흔들려서 계획을 바꾸지 않은 나, 잘했다. 정말 이곳에 오길 잘했다고 사막의 고요함을 지켜주기 위해 조용히 속으로 외쳤다.
투어 동안 나를 열심히 도와준 낙타 친구. 당시엔 (부끄럽게도) 아무렇지 않았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낙타에게 상당히 미안한 감정이 든다. '사막 투어'란 사실 오롯이 인간의 즐거움을 위해 기획된 여행 상품이다. 낙타는 이를 위해 자신의 의지와 관계 없이 코에 끈을 꿰어야 하고 매일의 노동을 감당해야 한다. 먼 옛날엔 유목민의 생존에 동반하는 존재였다면 지금은 인간의 유희에 생을 바친다. 오늘날 인간은 자신의 감정만을 위해 필요 이상으로 많은 동물을 이용한다. 낙타를 같은 생명이 아닌 투어의 수단으로만 무감각하게 받아들이는 건 점차 지양되어야 한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사막을 멋지게 여행할 수 있다. 지프를 탄다거나. 아니, 이참에 그냥 걸어서 횡단하는 코스도 좋겠지. 태양광으로 작동하는 낙타 모양 수레를 만드는 것도 재밌겠다. 어쨌거나 인간을 예나 지금이나 도와주고 감당해낸 모든 낙타들의 생애에 감사를, 사랑을!
자이살메르 성 안에서 구입한 물병 가방. 인도는 한국과 물이 달라 아무 물이나 마시면 쉽게 탈이 난다. 그래서 늘 식약청 마크가 있는 미네랄워터를 사먹어야 하는데, 물병을 손에 들고 다니던 게 꽤 번거로웠다. 그러던 중 이 물병 가방을 발견, '이건 사야해!' 하고는 열심히 흥정한 끝에 100루피, 약 천오백 원에 구입했다. 덕분에 여행 내내 두 손은 자유를 얻었다. 다른 지역에서 한국인 여행자를 만날 때마다 어디서 샀냐며 부러움까지 얻은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