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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노신 Jun 29. 2022

가슴 아파하는 것이 죄인가

집으로 오는 길 비를 맞으며 건물 앞에 선 배달원이, 빗물 때문에 지워져 버린 영수증을 들여다보며 쩔쩔 매고 있는 것을 보았다.


'도와주고 싶다'는 생각이 본능적으로 들지만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쳐다보다 신호등 불이 바뀌고 내가 가야 할 길을 걸어갔다.

그러면서도 '저 사람은 어떡하지, 혹시 호되게 박대라도 당하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도 다리는 관성적으로  걸어간다.


나는 감정도 눈물도 헤퍼 남의 일에도 아파하기를 잘한다. 실상 이런 기질은 삶에 도움이 된다기보다는 짐이 된다고 느낄 때가 더욱 많다.

길을 가다가 날카롭게 울리는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만 들어도 누군가의 가족이 다쳤을까 봐 가슴이 아프고 눈물이 울컥하기도 한다.

어느 날은 버스를 타고 가다가 차창 너머로 허리가 심히 굽은 할머니가 문 닫힌 로또 판매점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것을 보다 가슴이 아파 줄줄 운 적도 있다.

이런 병은 아주 어렸을 적부터 갖고 있던 오래된 것으로 이런 생각이 들거나 감정적인 반응이 올 때마다, 마음속으로 스스로를 타박하며 '다른 사람의 삶을 네가 뭐라고 동정하니, 너 이러는 건 병이다' 생각하고 뭐라 뭐라 피어오르는 마음들을 애써 꿀꺽 삼킨다.


내 삶과 직접적으로 관계 맺은 반경 외부의, 길 위에서 다치거나 병들거나 가난한 사람을 볼 때면 나는 여지없이 가슴 아파하고, 또 이성적으로 그런 스스로를 타이른다. 누구나 자기 몫의 삶을 최선을 다해 감당하고 있다. 나에겐 그 삶들에 대해 동정하거나 안타까워할 권리가 없다, 고. 그러니 세상의 고통을 위해 아파하고 싶으면 네 인생을 잘 살고 네가 할 수 있는 일이나 제대로 하라고.


민감한 기질과 타인과 스스로에 대한 높은 이상, 그리고 0.1초도 빌 틈 없이 피어오르는 생각들로 구성된 나라는 존재는 까다롭고 이따금 버겁다.

아끼던 물건 하나를 잃어버려도 그 물건과의 추억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애도 기간이 꼭 필요하고 심적으로 가깝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겐 연락을 잘하지 않더라도 혼자서 자주 생각하며 마음속으로 이런저런 말을 건네곤 한다.

이런 나는 솔직히 말하면 다른 사람들보다 잘 외로워하고, 상처도 잘 받는 편이다.


어느 시인이 적었듯이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그러나 가끔은 인간으로 살아가는 외로움이 육신을 지나치게 괴롭히며 몸 위에 군림한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에는 이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하여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고 그렇게 살아가는 것 아닌가. 삶이라는 시공 안에 자의 없이 던져진 우리 모두가 너무나 외로운 존재들 아닌가.

슬프고, 또 불쌍하다.


차라리 독주를 마시고 정신을 잃거나 아픈 마음을 잊을 수 있게 잠이 들거나, 그도 아니면 원하는 만큼 소리 내어 울면서 샤워를 할 수도 있다. 어떤 방식으로 얼만큼 처절해지든 어차피 삶은 끝나지 않고 그 모든 몸부림도 결국 삶을 이어나가기 위한 노력들이므로.

그러니 살아보겠다고 이렇게 좌절도 하고 아파도 하고 울기도 하면서, 그렇게 그렇게 주어진 날을 채워 나가는 것이다.

우린 모두 살고 있다는 면에서 같은 고난에 참여하고 있는 동지입니다. 내가 살 테니 당신도 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요. 그래도 꼭 살아요.


그리고 우리 살아서 어느 날엔 또 우연히 만나요.

살아온 서로를 위로해줘요.

수고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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