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iks Dec 31. 2024

시사 이슈에 관심 갖기

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12)

로스쿨 면접은 학교마다 구성이 다르다. 복기록을 훑어보면, 크게 현실의 이슈를 직접적으로 다루는지 아닌지에 따라 구분이 된다. 직접 다루는 경우에는, 좀 진부한 예시이지만 “사형 제도의 찬반을 논하시오.” 같은 식이 될 것이다. 추상적인 제시문을 다루는 경우에는 유형이 좀 더 세분화되는데, 제시문의 요지를 요약하라는 질문도 가능하고, 두 제시문을 비교하거나 한쪽의 입장에서 반론을 전개하라고도 가능하고, 아니면 제3의 해결책을 제시하라는 질문도 가능하다.


이와 같은 구분법에 따르면, 현실과 밀접한 지시문의 경우, 아무래도 평소에 뉴스를 많이 보며 사회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배경 지식이 많아 유리해 보인다. 추상적인 지시문의 경우에는, 그런 배경 지식이 부족하더라도 어차피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선 주제일 테니 독해와 논증 능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을 듯하다. 내가 지원했던 두 학교의 최근 출제 경향을 보면 지시문에 시사적인 내용이 딱히 들어가 있지 않으니, 리트 지문이나 다시 회독하면서 독해력을 길러보는 건 어떨까 싶었다....... 그것이 본격적인 면접 스터디를 준비하기 전의 막연한 생각이었다.


다만 눈치가 빠르다면, 아니면 면접 준비를 해 봤다면 나의 일련의 주장은 전제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내가 학교의 면접 문제를 구분한 “시사 이슈 직접 언급 여부”라는 기준은 상당히 표면적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수능 수학문제를 풀기 위한 전략을 세운다는 사람이 문제가 단순 선다형(1~5)인지 합답형(ㄱㄴㄷ)인지를 제1의 기준으로 삼고 분류하는 실수를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선지의 제시 방법이 문제 풀이 전략에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본질과는 거리가 멀다고 볼 수 있다.


내 의견으로는 전자처럼 문제를 내는 학교든 후자처럼 문제를 내는 학교든 출제 의도는 상통한다고 생각한다. 곧, (1) 주어진 자료에 근거한 논증 구성력과 (2) 시사 이슈에 대한 관심 양쪽을 모두 평가한다는 의미이다. 거기에 더불어 아이컨택이나 목소리 어조 같은 비언어적 표현에 대한 연습​까지 된다면 로스쿨 면접에 필요한 능력 요소들은 다 갖춘 것이라고 본다.


논증 구성은 어느 정도 형식화가 가능해서 몇 번만 훈련하면 된다. 각자에게 맞는 방법이 있겠지만, 나의 경우 '주장‘, ’근거‘, ’예상 반론‘, ’재반박‘, ‘요약’이라는 틀을 만들고 그 틀에 맞춰 내용을 하나씩 집어넣어 기조 발언을 구성하는 방식으로 구성했다. 범위가 겹치지 않는 핵심 근거는 2개를 준비해 주면 좋고, ‘예상 반론’ 및 ‘재반박’을 제시하기 애매한 주제라면 근거를 3개까지 준비하는 방식으로 구체적인 틀은 유연하게 마련했다. 학교에서 헌법 교양을 들을 때 로스쿨 교수님이 이 형식에 맞춰서 토론문을 발제하라는 과제를 친절하게 제시해 주셨던 경험이 있어서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다. 노베이스라면 이 틀을 먼저 써보는 것을 추천하되, 본인의 성격과 학교의 문제 출제 방식에 맞춰 꼭 개조를 하길 바란다.


한편, 시사 배경 지식의 경우에는 단기간에 준비하기는 버겁다. 게다가 배경 지식이 풍부하더라도 그것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역효과이다. 제시문을 무시하고 본인만 알고 있는 법률적 지식이나 역사적 사실을 줄줄 읊는 방식으로 대답하는 것은 로스쿨 면접에서 거의 최악의 답변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로스쿨 입시 절차 전체를 통틀어 보면 개인의 전공 등 배경에 따른 지식의 불균형이 입시 결과에 영향을 주는 것이 불공정하다고 보며 (100% 막는 것은 불가능할지라도) 가능한 억제 하려고 한다. 근데 그렇다고 하기엔 시사 이슈를 주 소재로 삼는 면접 문제도 꽤 많을뿐더러, 설령 제시문에 시사 이슈가 드러나있지 않더라도 간접적으로 질문하는 경우가 많다. 뭔가 당해 주요 이슈의 알레고리 같은 수상한 제시문도 보이고(예: 수술실 CCTV - 파놉티콘), 면접관의 추가 질문에서 시사 이슈를 언급했다는 후기도 자주 보이며, 아예 제시문과 관련 없이 ”지성 면접”과 “인성 면접“을 분리하여 인성 면접 시간에 관심 있는 사회 이슈를 물어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왜 그렇게 면접관은 시사 이슈를 좋아하는 것일까.


첫 번째 가설은 그것이 법조계 내의 ‘상식’이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이 말은 “상식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지 검사해 주겠어”라는 의도에서 그런 걸 물어본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본인들의 일상 언어에 너무 자연스럽게 녹아든 나머지 면접자에게 특별히 시사를 묻는다는 의식조차 없을 가능성에 가깝다. 기술 업계로 비유를 하면, “GPT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냐”같은 질문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게 답변자로 하여금 너가 GPT의 내부 동작 원리에 대해서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뭐 그런 걸 묻고 싶었던 게 아니라, 당연히 상대방이 GPT 기반 서비스 정도는 써 봤을 것이라고 가정을 하고 그냥 개략적인 감상이 궁금해서 묻는 느낌에 가까운 것 같다.


한창 스타트업에 다닐 때, ChatGPT 베타가 풀리고 누구나 구글 계정 갖고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시점에서 나는 세상 모든 사람이 ChatGPT를 써 본 줄 착각했었다. 근데 정작 내 동생부터가 (하도 대학 동기들이 얘기해서 들어보긴 했다만) ChatGPT를 한 번도 쓴 적이 없다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ChatGPT가 유능하다든지 무능하다든지 비도덕적이라든지 공익적이라든지와 같은 의견은 그럴 수 있겠다 싶었지만 애초에 모를 것이라고는 감히 고려해보지 못했던 것이다. 내 동생은 기술 업계가 아니었으니 이해가 되지만, 만약 개발자 면접을 보다가 툭 던진 질문에서 “그런 거 모른다”라는 낯선 답변이 돌아온다면 어떨까? 평가 기준에 “GPT를 알고 있다”가 있지는 않더라도, 뭔가 우리 집단 사람이 아닌 것 같은 이질감과 편견이 들 것 같다. 설령 내가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걸로 떨어뜨릴 의도는 없다고 하더라도, 괜히 그 사람이 기술적 배경 지식이 없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질문을 할 때 좀 더 신경 써서 쉬운 언어로 설명을 줄려고 할 것 같다. 그렇게 의사소통 과정이 늘어지면 자연스럽게 본인의 장점을 어필할 기회가 많이 소실된다. 그런 의미에서 불공평하다고 느껴질 수는 있지만 평소에 부단히 로스쿨생 평균 상식에 맞출 수 있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다고 보았다.


두 번째 가설은 시사 이슈에 대한 경험이 다른 유사 사례를 해결할 때에 큰 도움이 된다는 점에 근거한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마치 수학 시험에 대비할 때 어차피 시험 문제로 그대로는 안 나올 연습문제를 죽어라 풀던 이유와 상통한다. 면접에서 제시한 시사 이슈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면, 아니면 정말 당일에 급박하게 일어난 일이라서 사실관계에 대해서는 누구든 모를 일이더라도,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서 그 비슷한 이슈를 과거에 겪어본 적이 있다면 그때의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나의 신념을 뼈대로 하여 논리를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기업 면접에서 (로스쿨 면접에서도 종종) ”갈등을 해결해 본 경험“을 묻는 것으로도 비유가 가능하다. 갈등관계의 디테일이 궁금한 게 아니라, 그 경험을 통해 지원자가 가장 강력하게 지지하는 가치관이 무엇인지를 간접적으로 알아내고 싶은 것이다. 이 관점에서는 시사 이슈를 달달 외는 게 중요하다기보다는, 현실의 시사 이슈를 마치 ‘연습 문제’ 삼아 내가 평상시에 자주 사용할 가치관이라는 무기를 준비해 두는 것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에는 “공동체의 지속 가능성”이라는 키워드를 한 가지 무기로 준비했었다. 이는 공동체를 운영하는 과정에서 규칙의 느슨한 틈을 유용하는 미꾸라지 한 마리가 결과적으로 물을 크게 흐리는 사태를 당해본 경험자로서, 공동체를 위한 개인의 희생은 어떤 수준에서 정당화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에서 우러나온 생각이다. 이는 사실 ‘시사’ 이슈라고 보기에는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그럼에도 시사 이슈에서 자주 나오는 ‘개인-공동체’ 대립의 키워드를 공략하는 유용한 가치관이 될 수 있었다.


마지막 가설, 그냥 지원자의 인성을 보고 싶은 의도일 수도 있다. 정치적 무관심자가 소수자의 인권을 대변하는 변호사가 되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겠다만 좀 찝찝한 것처럼, 얼마나 세상 이슈에 관심이 많고 그것을 법조인이라는 직무로써 조금이나마 개선하고자 하는 참된 변호사의 의지가 보이는지....가 될 수 있겠다. 이건 근데 특정인의 인권을 지나치게 침해하거나, 어쨌든 공인이 말한다면 사회적 논란이 되기에 충분한, 극단적인 발언만 조심하여 답변한다면 인성 부족으로 평가받을 가능성은 딱히 없을 것 같다. 극단주의에 빠져 타자를 악마화하지 말고, “그들도 사람이고 나름의 고충이 있겠지”를 되뇌는 마음만 있다면 충분히 참된 법조인이 될 수 있지 않을까?


나는 여태까지의 인생에서 모두를 공평하게 사랑하는 사람은 본 적 없다. 사회적 약자를 돕는 사람들도 그들 나름의 기준으로 유형화된 특정 사회적 약자(노동자, 외국인, 여성, ...)에 전문화된 도움을 제공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이는 그 사람들의 도덕적 결함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집중 가능한 범위의 물리적 한계 때문이라고 본다. 군인, 기술자, 의료인, 기업가 등 보통은 지위가 높고 특권이 있는 것처럼 취급되는 집단들도 어떤 기준에서는 분명히 약자가 될 수 있다. 요는 결국 나에게 가장 친숙하고 좋아하는 부류들의 고충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면 된다는 것이다. 알바를 포함한 제대로 된 경제활동을 해보지 못한 사람이 비정규직의 설움을 이해하는 건 어렵다. 그게 나쁜 게 아니니, 굳이 억지로 노동 이슈 관련 신문 기사를 정독하며 찬반대립 논거를 달달 욀 필요는 없다고 본다. 적당히 스몰 톡이 가능할 정도의 ’상식‘만 갖추고, 남은 시간은 오히려 본인에게 관심 있는 법적 이슈를 탐독하는 시간을 가지면 충분히 시사 배경지식이 풍부한 사람처럼 보일 수 있을 것이다.


말이 길었다. 말이 긴 것에서 볼 수 있듯, 난 시사 이슈에 그다지 친숙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어릴 때 인터넷 커뮤니티를 했었고, 그런 곳에서는 커뮤니티 본연의 목적(나의 경우, 게임 제작)과는 무관한 정치사회 떡밥은 분쟁의 씨앗이 되니 애초부터 언급이 금기시되는 문화에서 생활했다. 그것의 영향이었는지는 몰라도 나는 대학생이 되어서도 꽤 오랜 기간 정치적 이슈에 엮이지 않으려 노력했고, 정치적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을 때 그것을 자세히 뜯어보지도 않고 피해 다녔다. 그러다 어떤 사회 이슈가 나의 직장생활을 통째로 바꿔버렸을 때, 나는 억울했다. 여태까지 내 나름의 중립 기어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더럽다고 생각했던 시사 싸움에 한쪽 편으로 강제 편입된 느낌이었다. 젠더 이슈에 대한 느낌도 그렇다. 난 별생각 없었는데 동성 측 군대의 소속원으로서 이성 측의 적군이 된 느낌.


어느 정도 마음이 정리된 후, 나의 정치적 무관심이 이러한 극단주의에 일조했다는 생각에 반성하게 되었다. 통계적으로는 정치적 성향이 중립에 가까운 사람이 제일 많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중립 성향의 사람은 별로 말을 하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중립의 사람들은 어떤 정치적 힘도 갖지 못하게 되었고 A극단과 B극단의 양자택일 상황까지 몰아붙이게 되었다는 것이.... 특히 2024년이 이렇게 암울했던 이유가 아닐까 싶다. 중립은 A안이 되든 B안이 되든 별로 상관이 없고, 아는 것도 없다 보니 굳이 말을 할 필요성을 못 느낀다. 말해봤자 야생의 인터넷에서는 양측에게 두드려 맞는다. 뭐 인터넷은 그렇다 쳐도, 어느 정도의 매너가 통하는 오프라인에서는 중립으로써 주변인에게 “나는 잘 모른다. 나는 별로 상관 없다.”라는 의견을 적극적으로 주장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그런 격동의 몇 년을 보내다 보니 이제는 시사 이슈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상당히 편해졌다.


다만 시사 이슈에 관심을 가졌어도, 아직 배경지식은 부족한 상황이었다. 어떻게 하면 단기간에 효율적으로 이런 걸 배울 수 있을까 고민했다. 나는 평소에도 유튜브를 자주 봤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그런 정치 이슈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에게 가능한 중립적인 시사 이슈 유튜브 채널들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슈카월드”, “김지윤의 지식play" 등을 구독하고, 점점 구독 풀을 넓혀 가기 시작했다. 모든 구독 목록이 중립적이지는 않고, 보다 보면 살짝 불쾌하지만 어쨌든 콘텐츠의 질 자체는 공을 꽤 들인 것 같은 유튜브들도 차츰 구독하며 이런저런 영상을 보기 시작했다. 막 근본부터 찾겠다고 신문기사를 뒤적이는 건 진입장벽이 높았다. 기사들이 대체로 단문이다 보니 독자들이 누가 누구인지, 최근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지 같은 정치사회적 배경지식은 상식이라고 가정하고 신규 소식만 갖고 기사를 풀기 때문이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는 유튜버는 그래도 입문자 친화적인 방식으로 영상을 구성하려 공을 들이는 편이 좋았다. 물론 극X 유튜버들을 조심할 필요가 있으니, 구독자 수나 유튜버의 학력이나 소속사 등 권위의 수준을 감안해서 필터링하는 습관은 필요하다.


이런 노력 끝에 이제는 대학 신입생 시절에는 생각도 못했을 만큼 사회 이슈에 관심을 갖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로스쿨 입시에는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하지만, 이러한 변화가 오히려 없었던 감수성을 불러와서 좀 일상을 더 예민하게 사는 부작용도 있는 것 같아 기분 자체는 미묘하다. 본인이 피도 눈물도 없는 유사 AI라면 한번 나처럼 주변 환경을 건전한 사회적 담론으로 둘러싸는 노력으로써 좀 더 인간답게 거듭날 수 있으니 한 번 고려해 봐도 재밌을 것이다.


이제 하고 싶은 이야기는 거의 다 한 것 같다. 시리즈 연재 주기가 굉장히 들쭉날쭉함에도 늘어나는 구독자에는 감사를 드린다. 본 시리즈의 최종화는 이변이 없는 한 2월 중으로 업로드할 예정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