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공생, 로스쿨에 도전하다 (1)
LEET는 언어이해와 추리논증 (그리고 논술) 능력을 평가하는 적성 시험이다. 현재 로스쿨 입시에 있어 내가 갈 수 있는 대학의 라인을 잡아주는 가장 중요한 요소라고 볼 수 있다. 공부한다고 드라마틱한 성적 상승은 없는 과목이라지만 그래도 논술의 비중이 적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선다형 시험이기 때문에 어느정도의 테크닉과 정석적인 공부 방법은 있는 모양이었다.
그러나 과고-공대-IT회사 이과 테크를 착실히 탄 관계로 친한 지인 중에 로스쿨 입시를 준비한 사람이 마땅히 없다는 게 문제였다. 의외로 과고출신 로스쿨생 지인이 2명 정도 있긴 했지만, 바쁜 로스쿨생을 한가한 휴학생이 붙잡기에는 쪼끔 부담스러웠다. 에브리타임을 이용하여 LEET 스터디에 껴 정보를 얻는 방법도 있겠지만 찾아보면 막상 LEET 스터디의 실효성에 비판적인 시각이 많을뿐더러 기본 베이스도 로스쿨에 가려는 의지도 상당히 차이가 나 갈등이 생길까 무서웠다. 이전 글에 말했듯 나는 솔직히 못가도 '개발자로 취업하면 그만이야~'인데 커뮤니티를 돌다 보면 너무 간절한 사람이 많았다.
그리하여 LEET는 그냥 독학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학원에서 공부하는 걸 좋아하지 않아서 대학 입시조차도 독학으로 극복한 학생이었다. 로스쿨 도전기의 시동은 작년 3월에 걸었으니 이제 대충 1년 반 정도 된 듯하다. 굉장히 오랜 기간 준비한 것처럼 보이지만 기출문제는 2019년부터 2024년까지 간신히 1회독에 그친, 로준생 입장에서 보면 상당히 귀여운 수준의 순공부량을 갖고 있어 감히 명함을 내밀지는 못하겠다. 그래도 내 평균적인 주변 사람들과는 다른 길을 가는 외로운 결정을 하며 마음 고생해 왔던 길이 있으니, 내가 에타나 디시에서 가뭄에 콩 나듯 나오는 정보글의 작성자를 고마워했던 마음을 곱씹으며 몇 자 적는다.
주의 : 글쓴이는 LEET 최상위권이 아닙니다. 설마싶지만 본 내용을 본인의 학습 전략에 반영하는 것은 순전히 본인 책임입니다.
각 과목의 구체적인 특징에 대해서도 논해보고 싶지만, 일단 이 글에서는 개략적인 공부 스토리만.
우선 시작은 집리트다. 집에서 조용한 환경을 구성한 뒤 공식 사이트 자료실에 올라와있는 가장 최근의 기출문제를 시간에 맞춰서 풀어본다 (언어이해 70분, 추리논증 125분). 논술은 평가 비중이 작다고 알려져 있기 때문에 벌써부터 풀 필요는 없다. 정 불안하거나 궁금하다면 굳이 시간의 제한을 두지 말고 분량에 맞춰 키보드로 끄적여보자. 원고지에다가 직접 써보는 것도 하고 싶으면 해도 된다.
LEET 시험은 1년에 한 번만 치고, 수능 시절과는 다르게 평가원에서 제공하는 신뢰도 높은 모의고사가 없기 때문에 어느 정도 공부량이 차다 보면 문제를 풀다가 어디선가 본 듯 한 데자뷰를 느껴 방해가 되는 경험을 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공식 기출문제를 의도적으로 아끼는 플레이를 하기도 하는 듯하다. 기출을 아끼는 취지는 어느 정도 공부가 된 후에 나의 본 실력을 보다 정밀하게 가늠하기 위함이겠지만, 그럼 뭐로 공부를 하는가... 어차피 내년에 나오는 문제 세트는 항상 새롭고 짜릿할테니 편식할 필요는 없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기출을 돌리는 것부터 시작했다. 주변을 보면 사실 이게 정석이다.
대신, 문제 하나하나를 꼼꼼히 리뷰할 필요가 있다. 틀렸다면 그것이 어떤 종류의 실수에서 기인했는지, 맞춘 문제라도 헷갈리는 선지가 없었는지, 평균적으로 문제를 푼 시간의 3배 정도는 들여보았던 것 같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본시험에서는 전혀 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출제 스타일과 시험 속에 숨은 전제를 체득하는 데 꽤 도움이 된다. 이 정보를 어딘가에 쌓아두고 나만의 규칙을 만들어두면 금상첨화일 듯하다. 아쉽게도 나는 완벽히 정제된 규칙을 만들어내진 못했다.
그러나 이렇게 한 문제 한 문제에 투자하는 시간이 많아지면 부담을 느끼게 된다. 한 세트 1회독(풀이)를 하는 데만 거진 4시간이 걸리는데, 앞서 3배 정도의 시간을 더 들였다고 말한걸 고려하면 1세트당 12시간. 나는 대충 기출 8개년도를 풀었으니 대충 100시간 정도 되겠다. 솔직하게 말하면 나는 이 정도의 시간을 살면서 한 과목에만 내리 투자해 본 기억이 없다. 과고 출신에 수시러라 내신을 딸 때는 매 학기마다 내가 배워야 할 대상이 달라지는 재미가 있어 질리지 않았다. 학=습이 균형이 맞았던 것이다. 그러나 유한한 '학'과 무한한 '습'으로 구성된 공부방식이 요구되는 수능에서 일관적으로 좋은 점수를 딸 자신은 없었다. 그래서 통상의 상식과는 달리 1년 넘게 달랑 100시간 공부하는 게 나에게는 상당히 큰 부담으로 느껴졌다.
그래서 문제를 잘게 쪼개서 공부했다. 오늘은 '언어이해 3문제(1지문)만 풀기', 내일은 '추리논증 4문제만 풀기' 같은 식이었다. 평균적으로 이렇게 되면 문제풀이 10분에 복기 30분이다. 그 조차도 아무 스케줄이 없는 방학에나 가능했지, 과외나 취미 학원같은 다른 일상이 내 시간을 차지하기 시작하나 유지하기 힘들고 끝내 포기하게 되었다. 일찍 시작하면 낮은 밀도로도 충분히 원하는 수준의 회독이 가능하니, 솔직히 일주일 중 하루정도만 40분(너무 적은 것 같으면 일주일 120분?) 투자하는 것으로 맛뵈기 하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이런 종류의 시험은 연습량만큼이나 멘탈 관리도 중요하다. 시험점수 <10점 올리자고 본인의 평소 생활 패턴을 크게 흐뜨러뜨리는 것은 개인적으로는 안타깝게 생각한다.
다만 LEET에서 좋은 점수를 받으려면 4시간 가까이 되는 시험시간 내에 집중력을 잃지 않는 훈련이나, 제한된 시간 안에 제낄 문제는 제끼면서 효율적으로 문제를 푸는 택틱 설계도 중요하지 않겠느냐고 물을 수 있다. 그 목적으로 기출을 돌릴 자신이 있다면 하는 건 좋겠지만, 그렇게 못하고 기출문제를 소모해 버렸다면 LEET 관련 사설교육업체에서 제공하는 모의고사를 활용하는 것을 추천한다.
사설모의고사 문제의 질에 대해서는 많은 수험생들이 불만을 품고 있다는 것을 인터넷 찾아보면 어렵지 않게 느낄 수 있다. 그래서 모의고사의 의의는 시험장에서의 각종 돌발상황(매미, 장마, 주변 수험생의 거슬리는 소리)에 대비하거나 나만의 시간관리 전략을 노 리스크로 테스트하는 정도에 두면 좋을 듯하다. 물론 사설이라 한들 상대평가 지표(백분위와 표준점수)는 제공되므로 본인의 위치를 가늠하는 데 적당한 도움은 주며, 대신 이 지표를 맹목적으로 추적하는 것은 멘탈에 해가 될 수 있다고 보니 성적이 안 좋게 나왔다면 온갖 변명을 만들어서 사설모의고사를 억까해도 좋다.
이런 루틴을 반복하다 보면 이제는 "무제한 시간만 주어진다면 90%의 확률로는 정답을 맞추겠는데?"라든가 "오답 유형이 늘 한결같은데?" 시점이 올 것이고, 그때부터는 충분한 학은 되었으니 체력 관리와 정신 관리만 하면서 로또가 터지기를 기도하면 될 것 같다. 변별력 있는 시험에서 최소한 노력한 만큼은 돌려받는 시험이 되길 기원하며,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