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담다몬 Nov 09. 2023

내 이름을 불러본 밤

<브런치 프로젝트> 이후, 나에게 문장을 건네기 시작했다

연우야,라고 시작한 그 글은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다.


하지만 내 이름을 나직이 적어보면서, 흐느끼며 불러보면서 내 안의 슬픔과 무력감을 글자에 실어 보냈던 경험을 남겨보려 한다. 처음이었다. 그 어떤 설명 없이도 나의 이름 모를 감정과 뒤틀린 욕망과 비겁한 변명을 온전히 알아주었던 이는. 그건 바로 나였다.




언제부턴가 내 마음을 표현하는 일이 어려웠다. 감정과 에너지가 무척 풍부하고 서슴없어 꾸밈없이 철없었던 나는 사회생활, 결혼, 출산, 육아를 거치며 점차 말수가 줄었다. 스치기만 해도 호기심이 일었던 내 밖의 세상과 사람에게 함부로 마음을 내주어선 안 된다고 나를 닫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단지 쉽게 다가가 관심과 애정을 쏟기 시작했던 것에 열정이 식는 것이 허무했고 어느 순간 성취가 멈춰버린 듯한 기분에 초조했다. 가볍지 않은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을 느꼈다.


깊은 고민과 준비 없이 현재에만 충실하게 살아가던 삶이 지나치게 안온했던 걸까. 아이를 낳고 키우며 끊임없이 나의 미성숙함에 맞닥뜨려야 했고, 뒤늦게 내면의 진정한 욕망을 뒤지며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린 지난 시간과 기회를 아쉬워했다. 모든 욕심을 내려놓고 편해지고 싶었지만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했다. 뒤늦게 우울증이라 자각하기도 했는데 돌이켜 떠올려보면 단순히 일시적인 호르몬의 변화가 문제였다기보다 내 삶이 통째로 탈피하는 성숙의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감정을 드러내는 게 사회생활 인간관계에서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도 조금씩 내 안에 스몄다. 관계에 기름칠을 해주는 친절하고 유쾌하며 때로는 은밀한 말들에 서투르다는 걸 스스로 알았기에 여자들의 커뮤니티는 소속되려 애쓰지 않았고 전혀 섭섭하지 않았다. 공대는 편했고 여초 회사는 괴로웠다. 남자들의 언어는 대부분 실용적이거나 실없거나 둘 중 하나여서 취하기도 흘려버리기도 쉬웠다. 아주 가끔이지만 결이 맞고 밝은 에너지로 나를 무장해제케 하는 엄마들과는 인연을 맺기도 했는데 깊어질 수는 없었고 아쉬움이 조금 남았다. 함께한 역사와 깊은 신뢰로 이어진 소수의 인연들이 나를 지켰다.


나는 그렇게 외롭지 않게 외로워져 갔다.




단 하나의 완벽한 인연을 남긴다면 남편이다. 우리는 평범한 듯 다채로운 역사를 함께 쌓아 왔고 그는 내가 원하는 모든 것을 맞춰주는 다정하고 헌신적인 사람이다. 언제부턴가 나는 그가 내 안의 문제를 캐내어 해결해주지 않음에 답답증을 느꼈다. 기분으로 새어 나오는 혼돈한 마음의 실마리를 잡아채어 질문을 던져주길 바랐다. 그러나 그는 내 안의 폭풍이 일 때면 그저 묵묵히 기다리며 수도승처럼 우리의 생계와 생활을 이어나갔다.


그날도 그런 날이었다. 아이의 사소한 어떤 태도에서 시작된 불길한 공기는 기어이 통제 불가능한 감정의 발화로 이어졌고 켜켜이 쌓였던 인내의 잔재들을 연료 삼아 전에 없던 폭력성을 촉발(觸發)했다. 내 입술을 비집고 나온 분노의 말들은 아이를 할퀴고 내 가슴에 박혔다. 그 일이 있고 나서 그는 괴로워하면서도 나를 비난하는 마음은 한 조각도 내보이지 않은 채 자책했다. 자책할 사람은 나였다. 어쩌다 그런 사달이 날 수밖에 없었던 건지 낱낱이 파고들지 않는 그의 배려가 숨 막혔다. 사춘기의 초입에서 아직은 앳된 아이에 대해 어떤 부분은 회피하고 싶다며 나는 차마 발설하지 못한 포기를 말하는 그를 향해, 사실은 나 자신을 향하는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야 말았다.


그 밤의 오롯한 시간에 문득 글을 쓰고 싶었다.




언젠가 연우야,라는 부름으로 시작되는 편지를 친구로부터 받은 적이 있다. 내 이름을 부르며 글을 쓰면 영감이 떠오른다고 했다. 나도 원아, 하고 친구를 불러보다가 가닿을 수 없는 부름에 쓸쓸해져서 이제 연우야, 하고 불러보았다. 메모장을 켜고 연우야, 하고 글을 쓰기 시작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이 빨라지다가 눈물이 흘러넘치도록 그저 한참을 멍하니 멈춰있기를 반복했다. 내 안에 엉겨있던 덩어리가 툭툭 떨궈져 나오다가 어느 순간 가벼워졌다. 입가에 맴돌기만 할 뿐 꺼내지 못했던 말들이 손끝에서 하얀 화면에 글자로 새겨지고 그것을 다시 눈에 담는 순간,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조차 온전히 위로받지 못했던 나를 안아줄 수 있었다. 미워해서 미안하다고 이야기해 주었다.


글쓰기는 비슷한 아픔을 지닌 사람에게 문장을 건네며 말을 걸어보는 일인지 모른다고, <글의 품격>에서 이기주 작가가 말했다. <브런치 프로젝트>는 글을 쓰는 삶으로 나를 이끌어주었다. 곧 희미해질 오늘이 아쉬워 글로 남겨두고 싶다는 가벼운 바람으로 시작된 글쓰기는 메마른 대지를 후드득 적시는 빗방울이 되었다. 나 자신에게 문장으로 질문을 건네고 부옇게 응어리진 마음을 선명하게 드러내어 괜찮다 다독여주는 것으로 누구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첫 글을 떼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나의 문장을 건네며 말을 걸어볼 수 있기를, 내가 건넨 문장이 진심 어린 따스함이기를 소망해 본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