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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Kim Nov 25. 2019

에어팟 프로 살까 말까

Homomanceps 의 2019년 11월의 딜레마

 지난 주말 아주 우스운 일이 있었다. 에어팟 프로를 사러 홍콩까지 직접 다녀 온 것이다. 무엇이 나를 거기까지 가게 만들었을까? 남들은 가기를 꺼리는 이 난리 속 홍콩을 굳이 에어팟 프로 하나 때문에 꼭 갔어야만 했을까? 난 프로 유튜버도, 아이티 리뷰어도 아닌데 말이다. 게다가 지금은 이미 한국에 에어팟이 출시후 열흘이나 지난 시점이기도 하다. 뭔가 이거 가지고 컨텐츠를 제작해 올리기엔 한참 뒷북인 시점이란 얘기다. 


왜 홍콩까지 갔니


 지지난 주 한국을 방문할 일이 있을 때, 에어팟 프로를 한국에서 구매하지 못하고 출국해 버리는 바람에 지름신과 잠시 거리를 둘 수 있었다. 그런데 이 갖지 못한 것에 대한 열망은 지름신을 멀리 하면 할 수록 강렬해 지기만 했다. 내가 입력한 유튜브 검색어는 온갖 에어팟 프로 관련 용어들로 가득했고, 그렇게 몇일을 남들 유튜브 영상만 찾아보다가 문득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가자. 일단 가서 지르자. 이쯤 되는 순간에는 에어팟 프로가 내 삶에 가져다 줄 수만가지 풍요로운 혜택에 대한 리스트들이 마음속에 가득 찬 상태였다. 

 어디서 살까? 일단 내가 사는 베트남에서 사려면, 공식 매장에서는 살 수 없고 수입된 상품을 주문해야 한다. 대략 가격을 보니 한국 가격으로 36만원 정도 한다. 한국이 32만 9천원인데. 3만원 가량 더 줘야 한다. 2주 후면 라스베가스에 갈 텐데, 차라리 거기서 살까? 그런데 또 막상 미국에서 부가세 포함 된 가격으로 구매를 하자니 계산해 보면 한국 가격이랑 비슷하다. 무엇보다도, 미국 갈 때 비행기 안에서 나는 노이즈캔슬링 기능이 장착되어 내 귀를 편안하게 해 주고, 오롯이 음악과 영화에만 집중해 마음껏 감상할 수 있도록 도와줄 무언가가 빠진채 가는동안 고생을 해야만 한다. 문득 궁금해 졌다. 어디가 제일 싸지? 여기서 갈 수 있는 곳 들 중에 환율로 계산해 가장 가격이 싼 곳을 애플 홈페이지에서 뒤져보니, 홍콩이 있다.


$1,999 HKD = 300,569 원!!!

 

 베트남에서 사는 것과 대략 6만원 차이다. 대박!! 아니..거기 가는 시간과 돈은 생각 안하나. 상품 가격 6만원 싼 걸 핑계로 홍콩까지 날아가려 하다니! 그런데 이 시대를 사는 호모만셉스족 에게 과정은 중요치가 않다. 그 상품을 득템할 수만 있다면, 중간에 들어가는 비용과 시간은 모두 그를 위한 하나의 의식일 뿐. 더구나 유독 홍콩 만큼은 인연이 없던 터라 가보지 못했고, 비행기 티켓 가격이 지금 어마무시하게 착하다.


원하는 상품을 전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

홍콩 여행도 난생 처음으로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비행기 티켓과 숙박 요금이 초특가 수준이다.

그리고 이번 주말에 난 할 일이 딱히 없다. 집에 있어봐야 잠만 자겠지.


 자...이쯤 되면 와이낫! 무조건 날아가는 거다!. 금요일 오후를 반차쓰고 바로 날아갈 티켓을 오전에 예매했는데, 왕복 16만원이다. 와...이거 뭐 비행기 값 16만원이면 비쌀 때 제주도 가는 왕복 항공편이나 뭐 비슷한거 아냐? 16만원에 홍콩을 가다니! 당장 예매 완료. 숙소는 iBis 가 1박 요금 7~8만원 정도! 오예! 이렇게 숙소랑 비행기 티켓을 바로 예매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뭐 할지 찾아 보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에어팟 구매라는 중요한 목적이 있었음에도, 그것 때문에만 가는 것이 아니라는 이 뻘짓거리에 대한 정당화 욕구가 이를 덮어 버렸다. 정작 애플스토어가 어디에 있는지는 찾아보지도 않고(사실 어딘가 있겠지 싶었다. 뭐 그거 하나 가서 못 찾겠나 싶어서) 여행지만 계속 서칭하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홍콩 애플스토어에 가다.


 여행기를 쓰려고 한 건 아니니까. 조금 더 본론으로 들어가 보자. 여튼, 애플스토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라서 도착하고 다음날 호텔을 나서며 찾아보니, 내가 머문 곳이 Sheung wan 지역이었는데, Causeway 지역에 하나가 보여 거기로 간다. 이게 그러니까 서울로 치면, 목동에서 잠실로 간 거다. 물론 홍콩 섬은 작아서 그래봐야 거리로만 보면 그리 멀지는 않다. 암튼 꾸역 꾸역 애플 스토어를 찾아 들어가니, 정말 인산인해. 애플스토어 사진 찍는 걸 까먹었다. 왠지 그런데 가서 여행객 마냥 막 사진 찍고 그러는거 민망해서 난 못하겠더라. 유튜버는 못되겠어. 그런데 참 어이 없는건, 나중에 찾아보니 애플스토어가 홍콩에 하나가 아니네! 

 뒤늦게 안 거지만. 애플 홈페이지를 들어가면 각 스토어 위치를 확인할 수 있고, 재고 현황을 미리 확인해 볼 수도 있다. 간단히 방법을 소개하면, 


우선, 애플홈페이지. http://www.apple.com 으로 들어가 제일 아래에서 국기 클릭, 원하는 국가로 바꾼다.

원하는 상품을 골라서 Buy 누르고, 상품 확인 페이지에서 Pick-up 부분에 check availability 클릭

검색에 도시명을 대충 입력하면 해당국가의 리스트가 주루룩 나온다.

상품이 있으면, available now, 없으면 입고 예정일이 뜬다. 혹은 unavailable 이라고 나온다. 


이렇게나 멀리 찾아갔다. 가는 길에 더 큰 매장이 있는걸 모르고.
저기 픽업을 할 수 있는지를 통해 재고 현황을 간접적으로 볼 수 있다. 픽업이 안되면 재고가 없다는 얘기다.
각 매장별로 위치와 상품 보유 현황이 나온다. 미리 체크해 보고 갈 수 있다.


 이미지를 보면, 픽업이 가능하다!! 그런데, 크리스 마스에 가능하다. 오늘은 11월 24일인데...

 나는, 왜, 홍콩까지, 에어팟 프로를 산다는 핑계로 비행기 타고~ 열차 타고~ 트램 타고~ 간 것인가. 


 재고가 없다. 

 우리 호모만셉스들은 얼마나 합리적 쇼핑을 가장한 비합리적 행동들을 일삼고 있는가. 아.....현자 타임.


 억울해서 굳이 없는거 알면서도 나머지 애플 스토어를 들러 물어봤다.


 나: 에어팟 프로 재고 있니?
 애플 : 없어. 크리스마스에 받을 수 있어.
 나 : 응 그래. (난 내일까지만 여기 있단다 빨간 옷 루돌프 지니어스야)


비교 청음을 하다.


 나, 합리적 만셉스는 그리하여 또 다른 머잇감을 살피기 시작한다. 어차피 애플이 재고가 없다면, 앞으로 있을 수많은 비행에 쓸 더 좋은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들어 있는 헤드폰을 찾아보자! 미리 유튜브를 통해 봐 두었던 소니의 WF-1000XM3 이어폰 모델과 Bose의 QC35 ii 모델 그리고 나온지 얼마 안 된 Bose 의 NC700 이상품들로 타겟을 변경. 근데 헤드폰은 불편할 수 있으니 한번 들어 보고 결정하자! 


 소니 WF-1000XM3 Vs. 에어팟 프로(기다렸다가 다른데서 산다는 조건)


 가격차이가 100HKD  밖에 차이가 안난다. 에어팟 프로가 한 만오천원 비싼데, 그 정도면 무조건 그냥 기다렸다가 사야겠다든 생각이 든다. 또 무엇보다 소니는 디자인이 별로다. 일단 사이즈가 실제로 보면 생각보다는 작지만 어쨌든 만만치 않은 크기이다. 


  에어팟 프로 WIN


Bose QC35 ii Vs. NC700

 

 개인적으로는 가장 기대가 컸던 제품이 QC35 ii 제품이었다. 마침  Bose 매장에서 청음을 해 볼 수 있어 모두 시도해 보았는데, QC35 제품은 디자인도 뭔가 옛날 헤드폰 느낌이 좀 나고, 노이즈 캔슬링 기능이 작동된 순간에 느껴지는 귓속의 먹먹함이 기분을 언짢게 했다. 그런 면에서 NC 700이 소리는 잘 잡으면서 귀 속의 먹먹함도 좀 덜어 주는 느낌이라 편안하게 쓸 수 있을 듯 했다. 소리는 뭐가 더 좋다 말하기는 어렵지만 둘다 헤드폰의 특색인지 보스의 특색인지 모르겠지만 소리가 잘 분리되어 들리고 고음과 저음 모두에 내게 딱 알맞은 수준의 음질 퀄리티를 들려주었다. 그래서 둘이 비교하면 


  NC 700 WIN


NC700 Vs. 에어팟 프로


 빅매치다. 다만, NC 700이 가격은 훨씬 더 비싸다. 홍콩에서 가격기준, NC 700 은 HKD $3,199 대략 $1,200 불 정도 더 나가는 가격이다. 그런데 이미 난 노캔 성능이 있는 귀에 꽂을거 뭐라도 하나 들고 돌아가야 마음이 풀릴 것 같은 심정이었고, 이제 더이상 가격은 문제 영역이 아닌 상황이었다. 사실 집에 가만히 앉아서 저거 살래 말래? 라고 하면 99%의 확률로 안 살거다. 너무 비쌌기 때문이다. 이어폰도 아니고 헤드폰을 얼마나 쓴다고 저 큰 돈을 주고 산단 말이냐! 난 일반 회사원이고, 그렇게 쉽게 돈을 쓸 만큼 넉넉한 주머니 사정이 아니다. 다만, 이미 저 순간은 쇼핑의 끝을 향해 아드레날린이 솟구치고 있었고 마음에만 든다면 언제든 카드를 주머니 밖으로 꺼낼 참이었다.

 마지막으로 비교를 해보기 위해 애플스토어로 이동했다. ifc 몰의 위 층에서 보스를 막 청음하고 내려와, 애플스토어 에어팟프로 청음대 앞에 섰다. 그리고 잠시 후.


 에어팟 프로 WIN


 가격 차이가 저렇게 나는데도 불구하고, 에어팟 프로가 훨씬 편안한 착용감을 가져다 준다. 노이즈 캔슬링이 외부 소음을 차단하는 건 좋지만, 기능이 작동할 때 가져다 주는 먹먹한 느낌은 조금 불쾌감으로 느껴졌다. 그런데 에어팟은 그런점에서 가장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 이거다! 싶은 그 느낌!


 제길. 홍콩에서 아무것도 손에 넣지 못했어도. 조금 참았다가 다른데 가서 산다! 


 그렇게 유튜버들이 말하던 비교 상품 왠만한 것들은 다 돌아다니며 직접 들어보고 내린 결론은, 역시 에어팟 프로. 


 베트남으로 돌아온 나는 에어팟 프로를 36만원 주고 구매했다. 


 아...... 바보. 그러나 내귀에 에어팟 프로가 있는 지금 이 순간 만큼은 참. 행복하다. 하하하 


 비행기 탈 때 엔진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오토바이 타고 출 퇴근 할 때 엔진 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고,

 나른한 오후 음악을 들으며 집중할 수 있고,

 통화도 자유롭고 시리랑 대화도 자유롭고,

 귀에서 잘 빠지지 않아 편하고,

 꽂고 다니면 아직은 그래도 간지 나고,

 음질은 그럭저럭 이지만, 주로 팝을 들으니 불만 없고,

 어쩌고 저쩌고...


 브랜드 advocate 단계로 접어들고 있는 사과돌이 쇼퍼. 하아...3년만 쓰자.

 그 안에 20번만 비행기 타면 뭐, 제대로 본전 뽑은거 아니겠어?! 응!?


*참고.

 호모 만셉스는 그냥 제가 지어낸 말입니다. 쇼핑에 홀릭된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 이라는 의미로.

 호모는 사람, 만셉스는 쇼퍼를 의미합니다. 라틴어를 모르고 그냥 찾아서 합쳐둔 거고, 제가 아는 한 세상에 등장한 적 없는 용어 이므로 아마도 틀린 조합일 수 있으나. 쇼핑에서 재미를 찾고 자기 아이덴티티를 찾아가는 요즘 시대 사람들에 대한 정의를 하고 싶어 만들어 보았습니다. 학술지 쓰는거 아니니 그냥 그러려니 하셔요. 



** 일주일 사용기

 - 일상 사용에서의 만족도는 아주 높음. 복도에서 엘레베이터 기다리다가 놓칠 수도 있음.

 - 오토바이 타고 다닐 때 주변 소음을 많이 억제함. 귀가 훨씬 편해지고 음악 듣기 좋아짐.

   그런데 풀페이스 헬멧 안에 착용하면 헬멧 쓰고 벗기가 아주 번거롭고 결론적으로 사용 거의 불가.

   또 풀페이스 안에서 볼을 가리는 쿠션 때문인지, 내 목소리가 상대에게 전달이 잘 안됨. 짜증유발.

 - 비행기 타고 어떨지에 대해서는 이번주 말에 라스베가스 가면서 한번 리뷰 해 보겠음.

 - 지금까지는 아무리 생각해도 잘샀다 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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