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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ames Kim Aug 28. 2020

남탓하는 문화 나쁜걸까?

이커머스 회사의 데이터 기반 매니지먼트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시즌을 보내고 있는 김광현이  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끊고도, 3루수의 실책과 타선이 뒷받침되지 못해 승리 투수가 되지 못했다


 옛날 같았으면 잘 되면 내 탓, 잘 못되면 남탓 한다고, 팔은 안으로 굽는다고 김병현을 무조건 감싸고 도는거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만한 기사 내용이겠다. 하지만 요즘 야구에 있어서 이런 기사를 보고 그렇게 말하는 사람은 없다. 혹시나 있다면 야구 참 모르는 사람이라 생각해도 되겠다. 현대 야구는 플레이어들의 모든 것들이 기록으로 남는다. 기록을 보면 게임의 승패가 누구로 부터 귀결되었는지가 보인다. 그게 애매하다면, 분석이 정확하지 못했기 때문이지 데이터가 없는게 아니다.


 이 기사 한 줄을 보다 보니, 전에 CMO와 COO 를 동시에 하다가 느낀 갈등 장면이 생각 났다.


 매출 실적에 대한 분석을 공유하는 자리였다. 두 줄로 나란히 마주 보게 세팅된 전형적인 대회의실에 한쪽엔 상품 소싱과 셀러관리를 맡고 있는 MD 팀이 다른 맞은 편엔 행사 기획과 광고 집행을 책임지고 있는 마케팅 팀이 앉아 있었다.

 매출이 잘 나올 땐, 이런 회의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서로 어떤 점이 이번 행사의 성공 요인이었다고 짚어보고 다음 기획 방향을 공유하면 된다. 그런데 문제는 항상 매출이 잘 안나올 때다. 예상을 밑도는 매출 실적에 대한 분석이 있을 때면, 서로 남탓을 하기 시작한다. MD는 마케팅이 잘못 했다. 마케팅은 MD의 상품 기획력이 문제라고 지적하기 시작한다.


 이럴 때, 우린 흔히 잘못 된 걸 '남 탓 한다' 는 이유로 그런 상황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누군가는 자못 진지하게, '우리의 성공을 위해 힘을 합쳐도 모자랄 판에, 서로 남탓하면 되겠습니까?' 라고 말 할 수도 있다. 드라마의 착한 대표의 전형적인 모습이겠다.


 그런데, 그게 정말 맞는걸까? '남탓 하면 진짜 나쁜 사람되나?'


 내 생각엔, 회사에서는 철저히 남탓을 허용하는 분위기여야 한다. 인간의 당연한 속성 중 하나는 자기의 잘못과 흠을 직시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게 얼마나 어려우면 옛 성현들도 수신제가치국평천하의 시작을 수신에 두었고, 수도승들이 평생을 노력하며 자기를 성찰해 나가겠는가. 찾아보면 심리학적 근거들도 있겠다만, 게으르니 거기까진 말고 넘어가자.

 아무튼 그런 속성을 가진 우리는 남탓을 하기도 하고 당하기도 하면서 성장해 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다만 '남탓' 이라는 행위가 서로 감정적 충돌만을 야기하는 쓸데없는 시간낭비가 되어서는 안된다.


 이게 뭔 강아지 풀 뜯어 먹는 소린가.

 일상생활에선 남탓하는건 그냥 싸움을 야기한다. 그러니 친구, 가족, 연인간에 문제가 생겼을 땐, 나를 먼저 성찰하며 도덕적 윤리적 컨센서스를 잘 지키며 살아가자. 그게 바르게 사는 길이다.

 그런데 회사생활에서는 감정을 조금 배재한 채로 더욱 냉정하게 남탓 하며 살아야 한다. 단순 싸움이 되지 않는 이유는 그리고 그러지 않아야 되는 이유는 회사에선 이 남탓이 아주 명확한 팩트, 곧 데이터에 근거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의 데이터 라는게 뭘 말하는 걸까?


 앞선, 나의 경험 사례로 돌아가 매출 부진의 사유에 대한 MD와 마케팅의 싸움에 대해 이야기 해 보자.


 각 팀이 주장할 수 있는 근거 데이터 들로 이 싸움은 이렇게 전개될 수 있다. 싸움 구경이 세상 제일 재밌는 거니까 한 번 들여다 보자. 제대로 남 탓 하면서 싸우는 예시다.


(회사에선 반 말 안하겠지만, 박진감 넘치게 반말로 한 번 싸워보자.)


MD : 이번 행사를 위한 캠페인 페이지의 트래픽 유입량을 보면 이 전에 진행했던 다른 행사 대비 80% 수준이다. 그러니 매출 자체가 그 행사 대비 85% 수준인 것은 니가 광고 유입을 제대로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야.


마케팅 : 비용 집행을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선, 상품 매력도가 충분하다는 전제로 진행해. 니가 이번에 잡은 행사 상품들의 평균 단가가 얼마야? 그리고 예상 매출액을 기준으로 평균 판매 상품 단가를 비교해 보면 지난번 그 행사 대비 이번 행사 객단가가 20% 이상 높다고. 80% 조금 넘는 수준의 트래픽 유입이 된 것은 그 때문이고 그대로 진행되었어도 100% 매출 목표는 나왔어야 하는 수치야.


MD : 트래픽 유입량의 추정이 적절했다고 치더라도 채널별 배분이 잘못된거 아냐? 우리 고객들이 3040이 제일 많은데 트래픽 소스를 보면 SNS 를 통한 유입이 제일 많았다구. SNS은 2030이 많을 텐데, 광고 타겟을 잘 못 선정한 부분일 수도 있잖아!


마케팅 : SNS 유입시 광고 노출 대상은 기존에 해당 상품군의 구매전환율이 가장 높았던 타겟을 대상으로 하고 있어. 심지어 타겟 유형의 실시간 구매율 피드백을 통해 머신러닝을 시켜 광고 타겟을 조절하는 방식도 사용하고 있다고. 중요한 것은 유입 량 대비 해당 상품 클릭율이 낮아진다는 거라구. 들어와서 봤더니 상품 자체가 가격이든 구색이든 매력이 없어서 클릭도 안하는데 대체 비싼 돈 써서 광고 하면 뭐하라는 거야?


MD : 그건 마케팅에서 할인쿠폰 적용 비율을 낮춰 두었기 때문에 가격 메리트가 낮아진 거잖아. 쿠폰 가격이 매력적이었으면 가격 경쟁력이 있었겠지. 그럼 CTR(상품 클릭 후 이동 비율) 이 올라 갔겠지. 지난 행사 대비 쿠폰 적용비율 3% 하락이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해.


마케팅 : 쿠폰 적용 메카닉이 기본적으로 인하된 가격 기준에서 시작하는데, 애초에 셀러와 판매가격 인하 협의를 더 했다면 달라졌겠지. 해당 상품군의 마진을 고려해 트래픽 유입 비용과 쿠폰적용 비율을 결정하는데, 이번 행사 상품 포트폴리오 중에 트래픽 빌드용 상품은 할인쿠폰 비율 마저도 지난 행사와 유사 수준이었어. 이 상품군에서 유입 후 CTR 떨어지고, CR(구매 전환율) 떨어지는게 쿠폰 탓이라고는 볼 수 없지. 그 카테고리에서 해당 상품군 시장 판매 비중이 얼마나 높다고 생각해?


MD : 우리도 크롤링 데이터가 있다고. 시장에서 이 카테고리 위너는 아니지만, 탑티어에 해당하는 상품이야. 다른 경쟁사 행사에서도 연중 최고 매출을 기록한 행사라고!


이후로 오랫동안 계속 이어진 랠리..


 전문 용어들 나오고 이래저래 복잡해 지면 싸움 구경도 재미가 없으니 이쯤 해 두고, 아무튼 이런 싸움은 이커머스 회사나 데이터 관리가 잘 되는 회사들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종류의 싸움이다. 물론 현 단계에선 저 수준을 넘어선 회사들이 더 많다. 말로 저렇게 논박을 하지 않아도 지표관리 대시보드를 보면 쉽게 보이는 경우들이 있다. 그 지표들을 보면서 마케팅 에서는 광고 최적화를 위해 끊임없어 노력하고, MD 에서는 트래픽 유입과 이익 챙기기를 위한 상품 포트폴리오 구축 전략을 최적화 하기 위해 노력한다.

 회사에서 남탓이 유용한 이유는 그런 남탓이 긴장감을 유지시키며 수준을 높이는 역할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저런 상황에 놓였을 때, 처음 택했던 선택은 둘 다 어차피 답도 없는거 싸우지 말고 남탓 금지, 자기반성으로 회의를 진행하자는 디렉션이었다.


 그런데 참 우스운게 이렇게 되는 순간 회의가 굉장히 무의미해 진다. 회의 자체가 톤 다운 되고, 문제가 도드라 지기는 커녕 핑계에 가까운 자기반성의 시간이 지속된다. 그런다고 그 회의 이후에 나아지는게 있느냐 하면 그런것도 없다. 이 때 확실히 느낀 것은 '좋은게 다 좋은 건 아니다' 라는 점이다. 감시와 비판은 내 스스로 하는 것 보다 남이 할 때 더 무섭고 아프다.


 회의에서 한바탕 상대방과 치열하게 싸우고 나면, 그 팀의 리더는 다음에 그걸로 꼬투리를 잡히고 싶지 않아서 그 부분의 개선에 집중한다. 부정적 피드백으로 채찍질 하는 듯 보이지만, 그런 싸움이 근거가 명확하고 다음에 뚜렷한 개선점을 보여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되면 서로가 싸움을 즐기게 된다. 이런 전투적 조직이 회사를 성공으로 이끌게 되는 것이다. 긴장감 없는 회의가 지속되면 모두가 순한 양들이 되어 회사가 망해가도 그냥 조용히 묵묵히 함께 그 길을 걸어가는 상태가 되어 버린다.


 남탓을 아주 제대로 하는 회사가 성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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