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eizelnut Jul 31. 2020

끝나버린 꽃놀이

   트럭 시동 끄는 소리가 들리면 밍기적 나갈 준비를 한다. 아직은 밤이 쌀쌀하니 뭐라도 걸쳐 입고 계단을 내려간다. 역시나 엄마가 트럭에서 박스를 내리고 있다. 나는 박스들을 짊어지고 다시 계단을 오른다. 동생은 컴퓨터 앞에 앉아서 꼼짝도 하지 않는다. 얄미워서 빨리 도우라고 소리치면 엄마는 그저 웃으며 다 했다고 싸움을 종결 시킨다. 엄마가 집에 들어오니 기름 냄새가 진동을 한다. 고소한 튀김 냄새가 왜 사람한테서 나면 이렇게 역겨운 지 모르겠다. 나는 헛기침을 하며 상자를 푼다.


   매년 봄엔 엄마가 사오는 박스가 늘어난다. 한 박스에는 소시지가, 다른 박스에는 새우, 고추, 튀김 가루가 들어있다. 매년 벚꽃이 하나 둘씩 피기 시작하면 박스 크기가 눈에 띄게 커진다. 엄마의 활기참도 눈에 띄게 커진다. 밤새 손이 부르트도록 꼬치에 소시지를 꽂고 새우를 꽂아도 입가에 미소가 떨어지지 않는다. 벚꽃이 다 떨어질 때까지 미소는 떨어지지 않는다. 봄은 엄마에게 바쁘고 행복한 계절이다. 아빠 공장에 화재가 나기 전만 해도 엄마는 봄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지독한 꽃 알레르기에 남들 다 한 번씩은 간다는 꽃놀이를 우리 집만 안 갔었다. 꽃 선물도 극도로 싫어했다. 평생 못 간 꽃놀이를 이제서야 매년 지겹도록 가게 될 줄 우리 가족 아무도 몰랐다.


   처음 엄마가 축제에서 장사를 시작한 것은 여의도 불꽃 축제였다. 워낙 경쟁이 치열해 장사 자리를 잡는 것이 하늘에 별 따기 였지만 아는 사람이 일을 도와달라며 기회를 줘서 꼽사리로 낄 수 있었다. 처음이라 소시지는 타고, 핫바는 풀어지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래도 엄마는 화상 입은 손으로 돈 다발을 세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게 벌써 5년 전이다. 전국 방방곡곡 축제 마다 엄마가 가보지 않은 축제가 없을 정도였다. 나중에는 도가 터서 어디 지역 방송사에서 핫바 만드는 모습을 취재해 가기도 했다. 무슨 생활의 달인에 나온 사람 마냥 어깨가 잔뜩 올라간 엄마가 그때는 우스웠다. 저런 일로 방송 나간 게 뭐 그리 좋은 일이라고, 나는 탐탁지 않았다.


   벚꽃 축제는 그 중에서도 대목이었다. 사람들이 꽃을 여간 좋아하는 게 아니었다. 겨우내 집에만 있다가 날이 따뜻해지면서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연인들끼리, 할머니 할아버지를 모시고 많이도 나왔다. 무엇보다 지갑이 쉽게 열리는 축제다. 날이 좋아 밖에서 오래 돌아다니니 출출하고 따스한 봄 바람에 경계가 풀린 탓이겠지. 엄마는 해 마다 더 큰 짐 보따리를 챙겨서 대목을 즐겼다. 손 여기저기 굳은 살이 생기고 팔에 화상 자국이 번져도 현금 다발을 포기하지 못했다. 문제는 그 만큼 약 값도 꽤나 나간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서 있으니까 파스는 물론이고 화상 연고, 후시딘, 반창꼬까지 흡사 약국과도 같은 엄마의 화장대였다. 무엇보다도 고질적인 꽃 알레르기를 이겨내려고 무리할 정도로 소염제를 많이 먹었다. 작은 꽃 송이도 무서워하던 엄마가 꽃 밭 한가운데서 돈을 벌고 있노라니 새삼 무서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벚 꽃에 취해, 불꽃 놀이에 놀라 얼굴에 홍조를 띤 사람들 사이에서 상인들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웠다. 자리 싸움, 홍보 싸움, 텃세에 고집까지 다들 꽤나 억샌 사람들이었다. 나와 내 동생은 엄마가 그런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을 줄 몰랐다. 세상 물정 하나도 모르는 ‘전업주부’였던 엄마는 아빠와 불 탄 공장을 청소하러 다니고, 보험사와 실랑이하며 대장부가 다 됐다. 불법 노점 단속하러 다니는 경찰들을 요리조리 피해다니기도 하고, 상인회 회장님과 독대를 하기도 하면서 억척같은 사람으로 변해갔다. 그러던 엄마가 아무것도 못하고 방 안에 누워있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누가 와도 이길 수 있을 것 같은 엄마였는데, 엄마의 돈 다발 사랑은 쉬이 누그러질 수 있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축제란 축제는 전부 취소된 올해 봄은 엄마에게 결코 넘을 수 없는 산이 됐다. 매일같이 뉴스를 보며 늘어나는 환자 수를 체크하던 엄마는 언제부턴가 포기하고 머리를 싸매어 버렸다. 우리 집에서는 더 이상 기름 냄새도, 트럭 소리도, 소시지 꽂는 모습도 구경조차 할 수 없게 됐다.

작가의 이전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