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치된 아이, 방치된 기억
갑자기 비가 쏟아질 때, 몇몇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카페 창 밖을 응시한다. 누군가는 우산이 없어서 걱정이고, 누군가는 우산이 없을 소중한 사람을 걱정한다. 나는 그저 멍하니 비가 내리는 밖을 응시한다. 밖을 보다 보면 도로에 물이 차오르는 것을 볼 수 있다. 물이 꽤나 차오르다 보면 빗방울에 맞춰서 바닥에 자국이 남는다. 마치 개구리 100마리가 동시에 뛰어오르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비가 쏟아지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어렸을 때 처음 ‘폭우’라는 것을 목격했을 때가 자연스럽게 생각난다. 부모님이 운영하시던 여관 카운터 앞에 앉아 멍 하니 창 밖을 구경하던 때가 잦았다. 동네에는 내 또래의 친구들이 없어서 심심할 때가 많았다. 그렇다고 부모님께 마음껏 칭얼거릴 수도 없었다. 부모님은 여관을 운영하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 매일 아침 모든 방을 청소했다. 3층짜리 건물을 둘이서 청소를 하다 보면 나 같은 어린 애를 대하기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찮지만 귀찮아하는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애써 친절한 톤으로 내게 말을 거는 것이 지겨웠다.
아무도 나와 놀아주지 않을 때 나는 그저 창 밖을 보는 게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인적이 드문 골목에 위치한 여관이었던 터라 지나가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 대게 술에 너무 취해 아침까지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겨우 겨우 몸을 일으킨 아저씨, 공부가 싫어서 학교를 피해 달아나는 어린 학생들, 어디선가 얻어온 담배 몇 개로 허세를 부리던 고등학생들이 전부였다. 다들 허름한 여관에 앉아있는 조그마한 여자아이는 못 보고 지나치거나 보고도 못 본체 하고 자신의 바쁜 할 일을 하기 마련이었다.
부모님은 내가 여관 입구에 앉아있는 것을 무척이나 못마땅해 하셨다. 사실 나중에야 안 사실이지만 어린 아이를 데리고 여관을 한다는 것 역시 너무 미안하게 생각하고 계셨다. 그렇지만 나는 그 어린 나이에 여관이라는 곳이 좋았다. 밤에 가족끼리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다 보면 한두 명씩 방을 달라고 문을 두드렸다. 술에 취해 몸을 가누지 못하거나, 비에 홀딱 젖어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들이 많았는데, 나는 그저 우리가 그들을 도와주는 입장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흐뭇하게 방 열쇠를 쥐여주는 아버지 뒷모습을 보고있거나 손님이 얼마나 녹초가 돼버린 상태인지 가까이 가서 흘깃 훔쳐보곤 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깜짝 놀라 나를 데리고 방안에 숨기기 급했다.
장마철이 되면 어렸을 때 여관 앞에 앉아 비를 멍 하니 보던 때가 자꾸 생각난다. 그때만 해도 별 생각 없는 어린 애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어린 나이에 꽤 많은 것을 느끼고 꽤 많은 것을 눈치채고 있었다. 부모님을 왜 귀찮게 하면 안되는지, 나는 왜 시내에 나가서 또래 친구들이랑 놀지 못하고 고작 창 밖만 보고 있어야 하는 지 어렴풋이 눈치를 챘었다.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다 보면 부모님의 무거운 책임감, 어린 나이에 이해하려 애쓰던 기나 긴 심심함을 떠올린다. 우리 집 여관한다. 이 짧은 한 마디를 언제부터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됐는지, 언제부터 친구들이 알게 될까 봐 전전긍긍했는지 떠올려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