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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록 Apr 23. 2024

X와의 전화통화

우리 꽤 잘통했지.

최근, 소통에 있어 답답함을 느꼈다.

가까운 사람과의 대화도 썩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쿵하면 짝하고 답해주던 사람이 있었는데...

그 생각에 다다르자 떠오른 사람이 나의 X이다.


사회적으로 X와의 통화는 일반적이지 않다.

더이상 통화를 해야할 이유도 없고, 해서도 안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헤어진 이상, 그게 통념적으로 맺어진 암묵적인 약속이니까.


그래서 참 많이 망설였던 것 같다.

"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여러번 머릿 속을 스쳐지나갔다.

그래서 여러 핑계를 대며 통화 버튼 누르기를 막아왔다.

'오늘은 시간이 너무 늦었어'

'오늘은 너무 피곤해'

등등...

별 쓰잘데기 없는 핑계를 댔다.


미루고, 미루다 전화를 걸었다.

아예, 핑계를 댈 수 없게 환한 대낮에 전화를 걸었다.

받는 것은 상대방의 마음이니까,

안 받으면 그 자체로 또 후련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번 안에 받지 않으면, 끊어야 겠다라는 얄팍한 조건을 걸어두고

전화를 걸었다.


(통화 연결음)


3번 안에 그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통화를 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이겠거니 하며, 통화를 관뒀다.


그런데, 약 30분 남짓 지났을까?

콜백이 왔다.

약간의 반가움과 그러면 그렇지 라는 약간의 오만한 태도를 장착하고 전화를 받았다.


그의 작전인지, 정말인지 알 수 없지만,

한 두번의 대화 후에야 그는 내 이름을 불렀다.

그의 말로는 내 번호와 카톡을 모두 지웠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나는 그저 그와의 대화가 그리웠던 거니까.


오랜만에 웬일이냐는 그의 질문에,

그냥 근황이 묻고 싶었다고 둘러 말했다.

잘 지내냐며 서로에게 안부를 묻는 어색한 시간이 지나자

예전과 같은 우리만의 멍청하고 우스꽝스런 대화들이 이어졌다.


사실 특별한 것은 없다.

소소한 일상을 얘기하면 조금 독특하게 반응할 뿐.

서로는 그 독특한 반응을 우스워하고 편안해한다.


우리가 만나지 않은 약 1년 여간 그에게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간 해온 사업을 접고, 아버지 회사에 들어갔다.

오랜 방황 끝에(나로 인한 방황은 아님) 새로운 연인을 만나 3개월 간 연애를 하고 있고,

뭔가 시련을 겪어 몇년 만에 크게 울었다고 했다.

연락하지 않는 시간이 길어져며 없었던 근황들을 20여 분의 통화만에 수 있었다.

나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응원을 하기도 잔소리를 하기도 공감을 하기도 했다.


정말 일상적인 대화이고, 일상적인 반응이었다.

다만, 그는 나의 그런 반응을 듣고 우스워하고

어이없어야하며 즐거운듯 웃음꽃을 피웠다.

그리고 말한다.

"나도 너와의 대화가 그리웠다고"라고.

나도 그랬다.

이런 대화가 그리웠다.


왜그런걸까?

의문이다.

대화를 통해 엄청난 지식을 얻는것도,

그렇다고 개그맨들이 울고 갈 만한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쏟아내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유일한 특이점이라면, 그냥 편안하고 재미있다는 것이다.

내가 어떤 친구와도, 연인과도 가족과도 만들어내지 못한 케미를

난 X를 통해 느낀다.


대부분 x라고 하면, 긍정적인 감정보다는

부정적인 감정이 먼저 떠오른다고 하는데,

나는 그냥 뭔가의 애틋함과

오랜 친구 같은 친근함, 그리고 추억하고 싶은 소중함이 좀 남아있다.

연애시절 그가 그리 좋은 연인이 아니었음에도 말이다.

그냥 나의 의미부여 결과겠지만,

그래서 자주 그 시절을 추억하고 싶어진다.

좋은 현상은 아닌 것 같다.


기분만 좋고 의미 없는 이 통화,,,

통화를 한 게 잘한 일인가 싶어 마음 한켠이 불편해졌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자체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관계와 사랑 그리고 상대와의 케미가 일직선상에 놓여질 수 있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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