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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쥴 Oct 01. 2023

4. 날 기다리는 여섯 개의 까만 눈동자

아버지는 왜 퇴근길에 만두를 사 오셨을까?


아버지의 퇴근을 기다리던 어린 시절, 가끔씩 늦은 밤 아버지가 사들고 오신 만두 상자가 생각날 때가 있다.


얇은 나무곽에 감겨있는 노란 고무줄을 풀어 상자를 열었을 때, 모락모락 퍼지는 김과 함께 뒤섞여 올라오는 찐만두와 나무상자의 향기가 그렇게 좋을 수 없었다.


시큼한 단무지 냄새와 함께 찐만두 향기가 올라오면 늦게 퇴근하신 아버지에 대한 반가움은 입에 고인 침과 함께 꿀꺽 삼켜버리고, 만두 하나를 냉큼 입에 넣고 육즙 풍부한 고기소를 씹으며 마냥 행복해했던 시절이었다.


아버지가 왜 퇴근이 늦어지는 날이면 내가 좋아하는 만두를 사들고 오셨는지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이제 나도 유독 시달렸던 하루의 끝자락엔 아이들이 좋아하는 간식거리를 사들고 퇴근하곤 한다.




크리스마스케이크


남편의 휴일 간병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던 어느 날,

친구 은영이로부터 케이크 쿠폰과 함께 카톡이 날아왔다.

“크리스마스인데 애들 케이크이라도 사줘”

나는 그제야 크리스마스 인걸 깨달았다.  


집 앞 파리바게트에 들렸다.

병원의 소독약 냄새로 가득했던 콧구멍으로 달콤한 버터 냄새가 들어가니 아이들이 더 빨리 보고 싶어 졌다. 눈에 띄는 하얀 생크림 케이크를 하나 골라 서둘러 집으로 갔다.


집에는 여섯 개의 까만 눈동자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집에 도착하자, 아이들은 나를 반기며 달려왔다.

나는 아이들을 안고 케이크를 내밀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은영이 이모가 케이크 사줬어!"


아이들은 케이크를 보고 환호성을 질렀다.

팔짝팔짝 뛰며 재잘거리는 세 아이들의 기쁨이 나에게까지 밀려와 함께 행복해졌다.

그간의 고단함과 스트레스가 눈 녹듯이 사라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케이크를 잘라 아이들에게 나누어 준 뒤 몸을 씻었다.


옷을 갈아입고 나오자 아쉬움이 가득 담긴 여섯 개의 까만 눈동자가 텅 빈 케이크 상자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있었다.

“케이크가 그렇게 맛있었어?”

케이크 하나를 순식간에 먹어치운 모습을 보니 행복감은 사라지고 서글픔이 밀려들었다.


생각해 보니 아이들로부터 한동안 선물 사달라는 말을 듣지 못한 터였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달라고 때를 쓸 법 한 어린것들이, 오로지 엄마가 오기만을 기다리다가 선물 이야기는 꺼내지도 못하고 케이크만 한 통 뚝딱 먹어치웠다고 생각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당시 큰아이는 중3, 둘째는 초등학교 5학년, 막내는 1학년이었다.



어린아이 세명의 엄마


세 아이의 엄마로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루하루는 육아와 가사로 분주하게 채워져 있었고, 종종 고단한 일상에 지칠 때도 있었지만,

세명의 사랑스러운 아이들은 늘 우리 부부에게 충분한 보람과 기쁨을 주었다.



예전에 세아이를 키우던 일상을 그렸던것을 블로그에서 찾아냈다.


나는 세 아이들이 부족함 없이 자라고, 온전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각기 다른 나이, 성격, 개성을 갖은 세 아이들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것은 언제나 새로운 도전이었고, 호기심 많은 아이들을 동시에 보살피는 일은 내 삶을 다이나믹하고 풍요롭게 만들어 주었다.

때론 지칠 때도 있었지만, 세 아이들과 함께하는 일상을 통해 나 또한 많은 것을 배웠다.


3배로 힘들었지만 3배로 보람있었던 일상들이였다.


아이들이 점차 성장하고 학교에 가게 되면서 그때그때 필요한 교육을 적절히 제대로 제공하는 것이 더욱 중요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고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도록 유명한 학원을 등록하고 학업적으로 부족한 점이 없는지 관리하는 것이 내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의 성적이 곧 엄마로서의 내 점수였다.




아이가 자란다


세 아이들을 태우고 영어, 수학, 예체능학원과 야외활동, 전시회, 음악콘서트, 도서관도 열심히 다녔던 나는, 남편의 병세가 심각해지자 더 이상 아이들을 위한 라이드는 할 수 없게 되었다.


남편의 다리 경직이 시작되며, 나는 아이들 대신 남편을 태우고 병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혼자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학원을 다니다가 그마저도 포기하고 서로를 돌봐야 했다.


미래를 위한 학업 성적 보다 지금 현재 서로의 건강과 안전을 지키는 것이 급선무가 되었다.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까지 시작되며 세명의 아이들은 서로를 챙겨야 했다.

남편도 폐렴에 걸려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게 되었는데, 마비가 팔다리는 물론 가슴까지 진행되어 혼자서는 가래배출도 어려운 상태가 되었다. 남편은 다행히 회복되어 일반 병동으로 옮겼고, 나는 남편에게 아이들을 보여주기 위해 집에서 세 아이를 태우고 병원으로 향했다.(코로나로 병원면회가 어려워 꽤 오랜 기간 아이들과 남편은 서로 만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혹시나 남편의 상태를 보고 어린 아들이 충격을 받을까 걱정이 되었다.

아이에게 미리 언질을 줘야겠다고 생각했다.


"별아, 이따 아빠를 만나면, 아빠가 코랑 목에 줄이 달려있고 기계가 많이 연결되어 있을 거야. 다 아빠가 빨리 나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장치니까 놀라지 마"

라고 이야기하며 백미러로 아이의 표정을 살폈다.


아이는 오랜만에 아빠를 만나러 간다는 생각에 한껏 들떠있었다.

"응! 나도 그런 거 다 알아. 영화에서 많이 봤어!"


아이의 씩씩한 모습에 마음이 놓였다.


코로나 시국이라 어렵게 병원의 양해를 구하고(아이들은 면회가 금지된 시기였다) 아이들을 한 명씩 번갈아 데리고 들어가 남편에게 보여주었다. 의료진들과 다른 환자들 눈치가 보여 오래 머물지는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돌아와 집안일을 정리하는데, 항상 시끄럽게 떠들던 개구쟁이 막내 목소리가 들리지 않아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내아들을 찾아보니, 조용히 자기 침대와 창문 사이 틈에 웅크려 앉아있었다.


나는 아이 옆에 가서 괜찮은지 살폈다.

"기분이 이상해? 피곤하니? 간식 줄까?"


처음엔 고개를 저으며 대답을 안 하던 어린 아들은 내가 다가가자 울음을 터트리며 나에게 안겼다.

"나는 아빠가 나아지고 있는 줄 알았어!"


그날 나는 어린 아들을 부둥켜안고 함께 울었다.




겁에질린 눈동자


엄마 아빠를 대신해 동생들을 돌본 것은 큰아이였다.


하루는 큰아이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막내가 열이 나는데 해열제를 먹여도 열이 좀처럼 내려가지 않는다고 했다. 타이레놀과 부루펜을 동시에 먹여도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말에 나는 서둘러 집으로 갔다.


큰아이 말대로 막내의 열은 39도가 넘어 있었다.

나는 일단 열을 식혀야겠다는 생각에 욕실로 데려가 미지근한 물로 아이를 닥았지만 아이는 몸도 가누지 못하며 헛소리까지 중얼거렸다. 병원에 데려가야겠다 판단하고 아이를 업고 급하게 현관을 나서는데, 뒤에서 철퍼덕 소리가 들렸다.


열을 식히겠다고 아이에게 뿌렸던 물이 현관까지 흥건해져 미끄러웠는데, 급하게 따라오던 큰아이가 그 위에 크게 자빠진 것이다.


뒤를 돌아보니 큰아이가 현관 바닥에서 엎어져 넘어진 상태로 순식간에 양손을 뻗어 동생신발을 한 짝씩 찾아 쥐고 일어나고 있었다. 큰아이는 지 무릎이 까져 피가 나는지도 모르고, 놀라서 얼굴이 창백해진 체로 나를 쫓아왔다.


난 그날의 큰아이 눈동자를 잊을 수가 없다.
무르팍이 까진 줄도 모르고 동생 신발을 챙겨 쫓아오던 큰아이의 하얀 얼굴과 겁에 질린 사슴같이 꿈뻑이던 커다란 그 까만 눈동자를.



31가지의 구원


내가 감기라도 걸려 골골 거리며 누워있으면, 어린 막내가 내 옆에 앉아 혼자 중얼거렸다.

"엄마까지 아프면 우린 끝장이야."

어린 자식의 그 말이 나를 번쩍 일으켰다.


엄마가 힘들지 않도록 집안정리를 해 놓으며 나에 대한 사랑을 편지와 카드 글로 적어 주는 둘째의 응원이 내 마음을 녹인다.


엄마의 몫까지 일부 감당해 주는 큰아이 덕분에 직장을 다니고 남편 뒷바라지를 하며 아이들을 챙길 수 있었다.


난 더 이상 아이들에게 좋은 성적 따위를 바라지 않는다.


그저 가끔 유독 힘이 드는 날,

퇴근길에 사가는 아이스크림을 반기며 한번 웃어주길 바랄 뿐이다.


그날 내가 어떤 일을 겪었든 간에 이 아이스크림 한통이면 세 아이들에게서 터져 나오는 행복이 나를 구해주기 때문이다.


파도가 덮칠 때마다 바다에 빠진 나를 구해준 건 바로 세 아이들이었다.




어린 딸에게 만두를 먹이시던 아버지에게 묻고 싶다.

'아빠! 제가 아빠를 큰소리로 부르며 충분히 웃어드렸나요?'


내가 하루를 마치고 세 아이들 안을 때 얻는 위안과 안식을 아빠도 얻으셨을까?

어린 딸로부터 밀려드는 기쁨과 세상이 다시 환해지는 느낌을 갖고 다음날 다시 전쟁터같은 직장으로 나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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