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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순한호랑이 Dec 10. 2021

[작사의 시대 9기] 잠이라면 이 엄마가 할 말이 많다

11/24) 잠에 대해 노랫말을 써보세요. 

내가 사랑하던 수요일 저녁 시간, 이 아까운 수업을 두 번 정도 결석을 했다. 한 번은 남편의 생일이었고(정말 놀랍게도 당일에 깨달음, 오해는 마시라. 나 내 남편 되게 사랑함!), 한 번은 갑자기 회사에서 좋은 숙소가 당첨돼서 가족 여행을 갔던 것 같다. 남편 생일 파티에서도, 그리고 여행을 가서도 나의 마음은 콩밭. 콩~알 콩~알 동글동글 콩알같이 알알이 귀엽고 알찬 단어들을 주고받는 그곳이었다.


다들 무슨 글을 썼나, 어떤 이야기를 나누었나 궁금했는데, 단톡방에 올라온 다음 과제. 


잠에 관련된 글을 써보세요. 


그리고 그 글을 바탕으로 가사를 만들어 조동희 작가님 마더 바이브에 있는 '무지개 음표' 노래 멜로디에 올려볼 것이라고. 


"오! 선생님, 제가 잠이라면 할 말이 참 많은 사람인데요!"


제가 수년간 불면증 환자로 활동을 해오면서, 잠을 못 자서 얼마나 괴로운지, 잠들기 위해서 무엇까지 해보았는지, 안 자고 대체 그 긴긴밤 뭐 하는지 등등 멍석말 깔아주면 정말 할 말이 많았다. 그러면서 다른 것도 아닌 잠이라는 주제로  첫 가사를 쓸 수 있어서 너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말 자주 고민하고 동경하는 나다운 주제라서. 


'무지개 음표'는 내가 이전에도 다 들어봤던 노래였는데 그땐 왜 몰랐지 싶을 정도로, 집중해서 들으면 들을수록 아름다운 노래였다. 브람스 자장가 멜로디가 베이스다. (익숙한 멜로디라 노래가 쉬워 보이지만, 막상 따라 부르려면 꽤 어려운 노래이다.) 무엇보다도 이 노래 가사는 정말이지 너무 예쁘다. 엄마라면 모두 공감할 사랑스럽게 자고 있는 아기를 내려보는 그 한 밤의 평화로움이 느껴진다. 애가 잠들고 비로소 찾은 그 조용함 속에 문득 찾아오는 공허함, 피곤함 속에서 서러움이 울컥울컥 올라오려 할 때, 이렇게 귀한 존재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함이 다 느껴지는 노래였다. 



달빛 내린 공원에 하나둘

그림처럼 모두다 잠들 때

쌔근쌔근 보라 꿈결에 깃털처럼 누워서

가녀린 머릿결 넘기며 네 이마에 입맞춤

내가 사라진 나날들 속에

선물처럼 남은건

네 웃음소리 무지개 음표

세상 가장 예쁜 노래


내가 너의 오선지 되어 까만 머릴 품을게

틀려도 괜찮아 인생의 한두마디 뿐인걸

둥근 발자욱 지난 곳마다

색색의 멜로디 될 때

아련해져올 너의 첫마디

엄마 엄마 부르던


별빛내린 방안에 푸르게

너의 하루 또한뼘 꽃잎이 되어

너는 나의 슬픔 속에서 빚어진 투명구슬

눈물로 찾아낸 머나먼 수백광년의 해답

처음처럼 난 사랑을 하네

내가 아닌 사람을

네 웃음소리 무지개 음표

세상 가장 예쁜 노래




특히 내가 애정 하는 부분은 아래 가사 부분이다. 


쌔근쌔근 보라 꿈결에 깃털처럼 누워서 

 
아기가 자는 사랑스러운 그림을 예쁜 단어들로 표현할 수 있다니. 보라 꿈결이라니, 분홍 꿈결도 아니고 노랑 꿈결도 아니고 아기 자는 자장자장 숨소리는 정말 연보라색! 연보라라는 컬러감은  아기가 잠드는 그 이불이며 베개에 배인 아가 내음도 같이 표현된 색이다. 3개월 무렵이었나, 우리 아기 냄새가 정말 사랑스러워서 이걸 어떻게 내가 평생 기억할 수 있을까 싶었던 적이 있다. 다른 것은 다 방법이 있는데 냄새는 정말  채록이 안 되는 것이 너무 속상했다. 근데 마침내 이 가사로 평생 소장하고 싶던 보송보송한 우리 아가 냄새를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을 찾은 듯하다. 잠자는 아가 위에 연보라 깃털을 그려넣고 그 숨내음을 생각해본다. 


내가 사라진 나날들 속에 선물처럼 남은 건


맞다, 내가 완전히 비워지고, 내 아기가 선물처럼 날 채웠다. 자고 있는 복숭아빛 아기의 뺨을 보면, 그래! 내가 세상에 내보인 것 중 이만치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 더 있을까? 내가 좀 불어 터진 우럭처럼 못생겨지고, 내 영혼이 테두리부터 조금씩 삭고 있더라도, 이렇게 귀한 게 왔는데 나 같은 건 조금 녹슬어 삭아 없어져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아기가 더 영롱하고 단단하게 존재한다면 그것으로 또 내가 꽉 채워질 테니. 내가 이렇게 내 자아를 내 아이로 채우는 전형적인 조선 여자가 되어 있을 줄 몰랐다.  조선이라고, 옛날이라고, 구시대적 사고방식이라고 반감을 가질게 아니라, 이런 모성애가 원래 태초의 유전적 프로그램이었고 비로소 내가 인간으로서 애를 키우면서 경험해 본 발달과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너의 오선지 되어 까만 머릴 품을게 


노래를 가사를 보기 전에 듣기만 했을 때는 '까만 머릴 풀게'로 봤다. 내 아들은 기어 다닐 무렵, 내 머리카락이 자기의 장난감인양, 내 머리를 자기 손에 쥐고 당기기도 하고 입에 넣기도 했다. 그때 그렇게  머리숱 휑하게 다 빠진 나와 아기새 털처럼 머리털이 덜 자란 애기가 한 방에 같이 누워 있던 행복했던 시간도 떠올렸다.

내가 오선지가 되고, 내 애의 발자국이 음표가 되는 것. 나의 아기가 노래 부르며 즐겁게 살도록 내가 그 배경이 되는 것. 이것이야 말로 엄마된 나의 이상향, 꿈이다. 머리를 풀어 풀어 길게 풀어 저 샤갈의 마을에 둥둥 떠다니면서 마음에 품을 수 있는 가장 착하고 깨끗한 마음의 꿈. 


이 자장가 멜로디, 그리고 엄마의 보이스가 중심인 노래를 수십 번 정도 듣고, 내 말을 멜로디에 올리려다 보니, 신기하게도 내가 계획한 말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깊이 있던 내 이야기가 쑤욱 나와버렸다. 당연히 난 내 아들이 주인공이 되는 노래를  만들고자 했는데, 내 노래도 온전히 내 이야기가 되었다. 


원래 이 수업에 오기 전에 생각한 노래는 하와이안풍 멜로디, 하날레이 문 같은 박자와 멜로디에 내 아들이 잘 자는 것, 잘 자는 것이 복이라는 것, 내가 못 자는 괴로움은 다 가져갈 테니 내 아들은 꿀잠 자고 개운하게 살라는 노래를 만드는게 소원이라고 첫 수업 때였나, 아님 선생님한테였나 내가 힘주어 말한 부분이기도 했다. 근데 막상 쓰다 보니 방향이 바뀌었다. 


자장가인데, 내 아들이 아니라 나를 위한 노래가 될 것이고,
자장가인데, 잘자라며 재우기 위한 노래가 아니라 못자도 괜찮아 깨어있음을
 위로하는 노래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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