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칼럼미술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트딜러 한혜미 May 20. 2020

미스터리 예술가의 재택근무

예술 테러리스트: 뱅크시(Banksy)

Sharp Spoon에 칼럼을 기고할 때 현실을 반영할 수 있는 글을 쓰려고 노력 중이에요. 직업 특성상 미술계의 소식을 접하다보니 뱅크시의 이야기가 매우 재밌더라고요. 더 늦기전에 미스터리 예술가, 뱅크시를 소개합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26






'My wife hates it when i work from home.'


WHO가 팬데믹을 선언하며 전 세계가 깊은 침체기를 겪고 있을 때였다.

코로나 19로 많은 거리의 예술가들은 집으로 돌아갔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막연함 속에 사람과 사람의 만남이 조심스러워졌다. 그렇게 예술가들 모두가 비대면의 상황을 각자의 방법으로 보내고 있었다.


이러한 분위기를 뚫고 한 예술가가 자신의 재택근무 현장을 공개했다.


개인 sns에 공개한 이 사진은 한순간에 전 세계로 퍼졌으며, 그의 팬들은 '신작' 공개를 반가워했다. 그러나 딱 한 사람, 그의 아내는 반기지 않는 듯하다.





@banksy 인스타그램




사진을 처음 보는 순간, 잠시나마 현실과 비현실의 사이에서 혼동이 일어났다.

그의 작품에서 종종 볼 수 있던 쥐가 이번에는 그의 집 화장실에 때로 등장했는데 그 모습이 매우 거침없기 때문이다.


뛰어다니는 쥐 아래로 휴지가 바닥까지 길게 늘어져 있다. 한술 더 떠 치약을 밟고 매달린 쥐 덕분에 벽에도 흔적이 묻었으며, 또 다른 쥐는 아예 변기 위에 오물을 묻히고 있다. 그 밖에도 꼬리로 매달려있는 쥐, 낙서를 하고 있는 쥐 등이 보이는데 화면에 잡히지 않은 어딘가에서도 말썽을 일으키고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아내가 화장실의 문을 열고 이 작품(?)을 목격했을 때, 얼마나 경악했을지 상상이 된다. 사진과 같이 쥐가 때로 몰려와서 어질렀다고 해도 납득이 될 정도이다. '정말 쥐가 다녀간 것일까'라는 착각이 들 정도로 사물과 그림의 조화가 매우 절묘하기 때문이다. 놀란 아내를 상상하며 그림을 그렸을 모습까지 상상해보니 그림이 더 즐거워 보인다.









그의 재치 넘치는 재택근무 현장은 전 세계에 화제가 되었다. 우리나라 뉴스에도 나올 정도였으니, 무거웠던 공기가 그의 유쾌함으로 잠시나마 가벼워진 듯하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이고, 가까이 서보면 비극이라는 말이 떠오른다. 멀리서 sns로 현장을 마주한 우리에게는 코로나 19를 잠깐이나마 잊게 해 주는 '재미난 상황'이지만, 그의 표현을 빌려 아내가 얼마나 '싫어했을지' 상상만으로도 재미나다.


흥미로운 건 팬들의 반응이다. 그의 재택근무만큼 포착된 미스터리 예술가의 단서에 한번 더 즐거워하고 있다. 그가 직접 아내를 언급함으로써, '결혼을 한 남성'이라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영국 출신의 40대 후반으로 추측되는 결혼한 남자, 미스터리 예술가 뱅크시(Banksy)에 관해 알려진 정보이다.




"예술은 불안한 자들을 편안하게 하고,
 편안한 자들을 불안하게 해야 한다"
-뱅크시


2015년 디즈멀랜드를 개장하면서 공개한 초상화와 본인 사진 @나무위키




1974년에 태어난 것으로 추정되는 얼굴 없는 영국 화가 뱅크시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칭한다. 그의 시작은 거리의 예술인 그래피티로 알려진다.


시간 흐름상 그가 그래피티를 시작했던 90년대는 바스키아와 키스해링이 몰고 온 유행이 지난 후였는데, 소수의 비주류 문화에서 다수가 인지하는 문화로 확장되면서 인기가 한층 꺾일 때쯤이었다.





좌) <Mural by Banksy>, 우) <Spy Booth>




그래피티는 타인의 건물 벽에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예술 이전에 재물에 손해를 입히는 불법 행위였다. 그때에도 그래피티 아티스트들은 주민과 경찰을 피해 몰래 그림을 그리고 도망쳤다.


뱅크시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는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메시지를 몰래 남기고 떠났는데, 자신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회를 자신이 원하는 공간에 남겼다. 단순하게 빈 공간에 남기는 흔적이 아닌, '메시지'를 남기려고 했다. 그래서 장소 선정이 중요했다. 그의 생각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벽과 전화부스 등에 메시지를 담기는 것은 그만의 차별성이 되었다.




<Flower Bomber>




 <Flower Bomber>는 꽃을 던지려는 한 사람의 모습을 포착한 작품이다. 거꾸로 쓴 모자, 복면으로 가린 얼굴은 시위 중인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데, 손에 들린 것은 위협 물질이 아닌 예쁜 꽃다발이다. 이 작품은 벽화에서도 유일하게 꽃만 컬러로 칠해져 있는데, 시위자가 원하는 사회가 파국이 아닌 꽃이 있는 희망의 시대임을 이야기한다. 혹자는 꽃다발을 삶과 사랑의 상징이라고 표현한다. 그런 그를 무엇이 분노하게 만든 것일까.


이렇게 뱅크시는 작품을 통해 사회를 향한 자신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그의 메시지를 알아보는 이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대중의 관심으로 연결되었고,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아티스트를 궁금해했다. 그러나 그는 유명세를 탄 후에도 얼굴을 드러내지 않은 채 작업을 이어갔다.


어느 순간 그의 인기와 더불어 비슷한 작품들이 늘어났는데, 뱅크시는 이를 의식해 sns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사전예고 없이 작업을 한 후에 자신이 그린 작품에 한해서 sns에 공개하는 방법이다. 그래피티라는 예술은 거리의 예술임으로, 장소 특성상 누구나 만질 수 있고 날씨의 변화에 따라 박락 등의 손상이 올 수 있다. 흥미롭게도 그가 sns에 자신의 작품을 공개하면 망가져가던 작품을 급하게 보존하거나 고가에 거래를 하는 기현상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를 예술 테러리스트라고 부르며 사회적인 메시지를 작품에 담고 예술의 허례허식을 비판했다. 자신의 작품이 메시지가 아닌 상업적인 가치로 각광받으며 거래가 되는 것이 마냥 반가울 리 없었다.


이를 바탕으로 하는 에피소드들이 있다.

자신의 작품이 유명해지는 것을 보며 센트럴 파크에 60달러라는 터무니없는 가격으로 판매한 일화이다. 실제로는 최하 2만 5천 달러를 호가하는 작품들이었지만, 시민들은 얼굴 없는 작가인 그를 알아볼 수 없었다. 결국 뱅크시를 열광하는 사회에서 6시간 동안 8장 만을 판매하는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


루브르와 뉴욕 현대미술관 등 유명 미술관에 잠입해서 가짜 작품을 몰래 놓고 간 경우도 있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에는 미사일 딱정벌레를 놓고 갔는데, 이는 작품으로 인지하는 관람객들과 알아차리지 못한 관계자들로 인해 23일 동안 전시되었다. 이 외에도 자신의 작품을 전시 작품처럼 놓고 가는 경우도 있었으며, 후에 몇몇의 미술관에서는 이 사실을 알고 작품을 소장하기에 이른다. 이처럼 그는 작품과 다양한 퍼포먼스를 통해 기존 예술과 이를 받아들이는 대중들의 허례허식을 비판하는 행위 예술을 이어간다.


미술 경매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에도 뱅크시는 함께했다.

2018년, 뱅크시의 <풍선을 든 소녀>가 15억 원에 낙찰되었던 순간의 에피소드이다.





<Girl with Red ballon> @Sotheby's




그의 작품이 낙찰된 순간, 놀라운 일이 발생한다. 작품이 액자 밑으로 흘러내리면서 그림이 여러 결로 잘리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도 막지 못할 만큼 한순간에 발생된 상황이었다. 당시의 영상을 보면 작품을 주최한 소더비 측에서도 매우 당황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작품이 낙찰되는 순간 분쇄기에 의해 작품이 잘리는 기획을 한 사람은 놀랍게도 뱅크시 본인이었다. 이슈가 필요했던 경매회사나 경쟁하고 있는 라이벌, 혹은 그의 작품을 싫어하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술 더 떠 그는 이러한 과정을 기획하고 연습했던 영상을 유튜브에 올렸다. 사람들의 반응을 살핀 후 낙찰이 되었을 때 액자에 설치한 분쇄기를 통해 원격으로 그림을 잘리게 했는데, 리허설 과는 다르게 실제에서 반만 잘린 것을 안타까워했다.


내가 선택한 그림이 망가졌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을 법도 하지만, 오히려 15억 원에 낙찰한 소유주는 행복한 비명을 질렀다. 이 사건이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면서 작품의 인기가 치솟았기 때문이다. 뱅크시가 비판하던 예술의 허례허식과 이를 동반한 퍼포먼스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작품 가격을 높였다.




<Game Changer>




최근 그는 새 작품을 공개했다. 한 남자아이가 간호사의 인형을 손에 쥔 채 하늘을 날게 하는 모습이다. 간호사의 동작과 망토는 마치 슈퍼맨을 연상시킨다. 그 아래의 장난감 바구니에는 베트맨과 스파이더맨이 담겨있는데, 간호사의'영웅적 모습'을 은연중에 표현했다. 한 병원의 외벽에 그려진 <Game Changer>는 코로나 19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제작되었다. 가을까지 전시가 될 예정이며, 이후에는 영국의 국민건강보험 기금 모금을 위해 경매에 부쳐질 예정이다.


뱅크시는 사회의 현상을 작품에 담고, 이를 통해 자신의 목소리를 거침없이 내는 이 시대의 예술가이다. 예상치 못한 퍼포먼스로 강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전달하며, 전염병으로 전 세계의 사람들이 힘들어할 때 재택근무라는 뜻밖의 소재로 웃음을 전해주는 작가이다.


미스터리 예술가인 그의 작품에는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가 담겨있다. 후대의 사람들이 그의 작품을 통해 우리를 어떻게 바라볼까. 사회 풍자적이며, 때로는 모두를 놀라게 할 만큼 파격적인 그의 예술세계를 계속해서 응원하고 싶다.


그나저나 뱅크시의 화장실은 그대로일까, 혹은 깨끗하게 청소가 되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간송의 보물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