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스타프 클림트의 <The Kiss> 속 숨겨진 이야기
<The Kiss>, 어디까지 알고 계신가요? 이번 포스팅은 '사랑의 대명사와 같은 그림'의 이야기를 전해드립니다. 원문은 [Sharp Spoon]에서 볼 수 있습니다.
원문보기: http://sharpspoon.kr/interview_detail?id=40
사랑이란 무엇일까.
누군가는 끝없는 아름다움을, 또 다른 누군가는 부정적인 무언가를 떠올릴지도 모른다. 두 사람을 세상의 중심으로 데려왔다가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트리는, 동시에 그들을 치유할 수 있는 유일한 것- '사랑'이라는 단어를 하나의 감정과 문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이에 대해 오래전부터 학자들은 자신만의 '사랑'을 학문을 통해 서술했다. 예술가들도 마찬가지였다. 시인은 시를 썼으며, 음악가는 노래로 불렀고, 미술가는 그림을 그렸다. 그럼에도 사랑은 여전히 '정의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그런데 사랑의 대명사와 같은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을 보며 누군가는 추억을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꿈을 꾸며 소망한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키스신'으로도 불리는 작품,
구스타프 클림트의 <The Kiss>이다.
꿈속에 온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세상이 온통 금빛이다.
마치 하늘에서 금비가 내리는 느낌이 들기도, 저 아래에서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는 느낌도 든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두 사람의 사랑을 축복하듯 반짝이는 모습에 성스러운 느낌까지 든다.
온 세상이 금빛인걸로도 모자라 두 사람이 발을 디딘 땅에서도 꽃이 한가득이다. 보라색과 노란색, 푸른색의 형형색색 꽃은 세상의 모든 아름다움이 두 사람을 위해 존재하는 듯하다.
두 사람의 모습은 또 어떠한가.
한 남성이 두 손으로 여성의 얼굴을 강하게 잡고 입을 맞추고 있다. 여성의 볼은 붉어져있다. 두 남녀의 사랑에 빠진 모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황홀한 느낌을 준다.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모습이란 이런 것일까. 성스러우면서도 황홀하고, 아름다우면서도 매혹적이다.
그런데, 어쩐지 여성의 모습이 어색하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에서 키스를 받는데 격정적이거나 황홀한 표정 대신 담담하면서도 부자연스러운 동작이다. 사랑을 느끼고 있는 듯한데 적극적으로 받는 느낌은 아니다. 그렇다고 남성이 억지로 키스하는 것으로 생각하기엔 그의 목에 팔을 두르고 있다. 도대체 이들에게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가만 보니, 둘이 있는 공간이 이상하다. 여성이 무릎을 꿇고 있는 곳 뒤로 낭떠러지가 보인다. 조금만 발을 헛디뎌도 떨어질 것 같은 아슬한 공간에서 남성의 키스를 받는 것이다. 만약 작가가 아래를 조금만 더 길게 그렸더라면 그림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질뻔했다. 한순간의 실수로 절벽 아래에 떨어질 수도 있다는 것을 아는지, 여성의 발가락은 안간힘을 쓰고 있다. 이러한 그녀의 불안한 마음을 모르는지, 남성은 격정적으로 키스하고 있다.
꿈처럼 가장 아름다운 순간, 작가는 왜 연인을 가장 위태로운 공간에 넣었을까?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는 세계적인 예술가를 배출한 오스트리아 출신의 화가이다. 20세기 가장 흥미로운 작품을 그렸다고 평가받음에도 그에 대해선 자세하게 알려진 바 없다. 생전에 인터뷰를 하기는커녕 자신의 작품에 대한 설명을 한 적도 없기 때문이다. 대가라면 남겼을법한 자화상마저 그리지 않은 채 '나를 알고 싶으면 내 그림을 봐라'라고 했을 정도로 사생활을 철저히 숨겼다.
그럼에도 몇 가지 알려진 정보들은, 먼저 그의 아버지는 금 세공사였고 어머니는 오페라 가수였다는 것이다. 7남매의 둘째로 태어났으며 부유한 환경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의 재능을 알아본 부모님에 의해 빈 응용미술학교에 입학했으며, 이때 다양한 장식 기법을 익혔다. 훗날 그가 금을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것을 많은 학자들은 미술적 재능과 후천적으로 익힌 기술, 그리고 금 세공사였던 아버지를 보며 자란 것과 어머니의 예술적 능력을 물려받았음을 언급한다. (그가 스스로 밝힌 이야기가 없어서 그의 배경을 보며 추론할 뿐이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또 다른 별명은 '비엔나의 카사노바'였다. 그는 육체적 관계 속에서 영감을 얻는다고 생각했다. 평생 독신으로 살면서 많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었다.
자연스럽게 그의 작품들 속 주제는 '여성'이었다. 그의 작품을 두고 '퇴폐적이다', '에로티시즘을 표현했다'라고 말하는 것이 과언이 아닐 만큼 지금 봐도 자극적일 정도로 그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냈다. 당시 그가 작품 속에서 표현한 여성의 모습은 당연히 논란을 동반했다.
오늘날 그는 여성의 누드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했던 화가로 불린다. 얼마나 많은 여성과 관계를 가졌는지, 1918년 56세에 뇌졸중으로 사망 후 14명이 친자확인 소송을 한다. 그리고 그중 4명이 자식으로 판결 났다. 그랬던 그가 죽기 직전에 찾았던 여성이 있었다. 그의 정신적인 사랑이자 지주였던, 에밀리 플뢰게(Emilie Floege)이다.
에밀리는 그의 친자소송을 직접 처리했고, 1952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와의 추억을 간직했다. 사생활 공개를 원치 않았던 그의 뜻을 따라 그가 준 편지들을 소각하며 비밀을 지켜준 인물이기도 하다.
그런 그녀를 그의 '정신적 사랑'으로 부른다. 생전에 구스타프 클림트가 수많은 여성과 관계를 맺었지만 유일하게 관계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다.
꽃이 없어 꽃을 그려드립니다
-구스타프 클림트
그는 그녀를 위해 400여 통의 엽서를 썼다. 꽃이 없어서 꽃을 그려드린다니, 어느 여성이 그에게 넘어가지 않을 수 있었을까. 에밀리도 그를 사랑했고, 그에게 먼저 청혼을 했다. 그러나 그는 '결혼은 시민사회의 가증스러운 행위'라며 거절했다. 대신 에밀리를 주인공으로 작품을 남겼다. 다만, 이전까지의 유혹하는 느낌과는 다르게 작품 속 여성은 우아했다.
그렇게 에밀리 플뢰게는 그가 꿈꾸는 정신적인 갈증을 채워준 여인이었다. 에밀리의 존재는 사랑이라는 단어로만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매우 큰, 이상적이고 고결한 사랑 그 이상이었다.
그런데 에밀리 플뢰게가 그를 떠났다. 클림트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이에 그는 자신을 버리고 떠난 그녀를 주인공으로 그림을 그렸고, 마침내 구스타프 클림트의 최고의 걸작 <The Kiss>를 선보이게 되었다.
1908년, 이 작품은 쿠스트 타워 전시회에서 처음으로 공개되었다. 에로틱하면서도 황홀한 아름다움에 공개되자마자 미술계가 술렁거렸다. 대중들의 반응도 매우 뜨거웠다. 작품이 걸리자마자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구입을 희망했는데, 당시 그가 작품의 가격을 무리하게 요구했음에도 받아들일 정도였다. 그만큼 모두를 매료시켰다.
아버지의 영향으로 금에 대한 친숙함이 있었는지, 혹은 당시 오스트리아에서 유행했던 금의 영향이었는지 명확하게 밝혀진 바는 없다. 생전에 작품 설명이나 인터뷰를 거부했기에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한 부분이 없기 때문이다. 작품에 대한 추측만 이어질 뿐이며, 심지어 작품을 사들인 오스트리아 국립 미술관에서 조차 아직까지 궁금해할 뿐이다.(매년 끊임없이 몰려드는 관광객으로 작품을 분석할 시간이 없다고 전해진다)
알려진 바로는 사용된 금박이 총 8종류라는 것이다. 어떤 방법으로 녹였는지 알 수 없지만 여러 학자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금을 사용한 이유'가 추려졌다. 그 반짝임처럼 '기쁨과 환희의 상징'을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며, 혹은 금의 속성으로 유추해서 '변치 않는 영원한 사랑'을 뜻한다는 것이다.
남녀가 입은 옷의 문양도 독특하다. 여성의 옷은 주로 동그라미, 남성은 네모로 그려져 있다. 혹자는 이를 두고 남성의 옷에 그려진 '직각의 사각형'이 이성적인 남성의 성격을 대변한다고 이야기한다.
또 다른 의견으로는 이탈리아 라벤나에 있는 산 비탈레 성당을 장식한 '비잔티움 모자이크'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는 생전에 여행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으나, 이탈리아 라벤나의 방문은 매우 특별하게 다가왔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그림 속의 주인공인 에밀리는 그가 이 작품을 선보인 후 다시 돌아왔다. 그들의 스토리를 들으니 <The Kiss> 속의 그녀 표정에 다시 눈길이 간다. 두 사람이 하나로 합쳐진 듯한 황홀한 그림이 마음 떠난 여성을 붙잡으려는 남성의 마지막 노력으로도 보인다.
이들의 동작에 대해 '남성은 적극적이나 여성은 수동적'이라는 의견이 있다. 무릎 꿇은 여성의 모습이 수정적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혹자는 그가 여러 번 고친 밑그림을 예로 들며, '구도'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주장한다. 한 폭에 자연스럽게 그려서 구조적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실제 그는 에밀리보다 키가 작았다. 이에 두 사람의 키 차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는 설도 있다.
그가 그린 에밀리 플뢰게의 초상화 <Porträt Emilie Flöge>를 보면 그녀가 길고 곧게 뻗은 모습으로 그려져 있다. 실제 그녀의 모습과 닮았다.(그러나 에밀리는 초상화 속 자신의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훗날 이 그림을 팔았다) 덧붙여, 이 그림 역시 다른 그림들과는 다르게 관능적인 느낌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려운 우아한 모습이다.
그들이 밟고 서있는 꽃은 구스타프 클림트가 자주 갔던 아터호수(Attersee)의 꽃밭과 닮았다. 그는 실제로 에밀리와 아터호수에서 휴가를 즐겼으며, 아터호수를 소재로 약 50점에 달하는 작품을 남길 만큼 그곳을 좋아했다. 그들의 추억이 담긴 꽃밭을 절벽에 피어나게 하면서 자신의 사랑이 끝나지 않았음을 작품을 통해 고백하는 듯하다.
그러나 그도 그들의 관계를 잘 알았다. 진정한 사랑을 두려워하는 그로 인해 그들의 사랑은 아름다워 보였지만 동시에 불안정했다. 이를 그는 <The Kiss>에 담았다. 여성은 낭떠러지 앞에서 그의 키스를 받으며 위태로운 모습으로, 남성은 아슬아슬한 이 광경을 무시하고 싶은 듯 그저 키스를 하는 모습이다. 그렇게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불안함과 두려움이 황금빛에 매혹당해서 보이지 않는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나 스스로도 내가 어떤 인간인지 정확하게 모르겠다. 그리고 알고 싶지도 않다. 다만 한 가지는 확실하다. 내가 가련한 바보라는 사실이다. 나는 진정한 사랑에 두려움과 존경심마저 느낀다
-구스타프 클림트
한 남성이 여성에게 키스했을 뿐인데, 그 사랑이 그들을 낭떠러지로 몰고 있다.
결국 사랑이란, '늘 아름답고 행복한 것이 아닌 불안정하고 위태로운 것, 그럼에도 너무 달콤하고 눈부셔서 차마 그 끝을 알 수 없는 이중적인 것'이 그가 작품을 통해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구스타프 클림트의 <The Kiss>는 영원한 사랑의 이미지로 기억되는 명화이다. 이 작품을 보기 위해 한해 수많은 관광객들이 오스트리아를 방문하며, 현재 오스트리아 전체가 클림트의 박물관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곳곳에 있다.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다시 한번 질문하고 싶다.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