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7살에 걸렸던 병은 '소아우울증' 8살부터 걸린 병은 '일등병'이었다.
나는 학교에 입학하면 내 인생은 나락이라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2년간 유치원 생활도 이미 암울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계속되는 단체생활에 대해 나는 일말의 기대도, 희망도 없었다.
그런데 반전이 있었다. 학교에는 '시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내가 못하는 운동 이런 것 말고 '공부'로 말이다.
학교는 유치원에 비해 나에게 매우 유리했다.
한 반에는 다수의 아이들이 있어서 친구를 사귀기가 더 유리했다. 당시에는 몰랐지만 경험상 사람이 많을수록 나와 맞는 친구를 찾기가 더 수월했다.
그리고 거의 앉아서 듣기만 하면 되는 정적인 활동이 주였고, 학습지랑 문제집으로 미리 공부만 해놓으면 성적은 어느 정도 잘 나왔다. 게다가 등수가 높으면 이상한 아이로 보지 않았다. 이상한 점이 있더라도 그걸 심각한 문제로 보는 사람은 없었다.
운이 좋게도 입학하자마자 우리 반에서 1등 하는 아이가 먼저 나에게 다가와서 절친이 되었다. 나는 소심하고 말이 없었는데 그 친구는 상당히 와일드하고 유쾌한 성격이었다.
나는 나에게 없는 면을 그 친구에게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꼈다.
비록 나는 만년 2등이었고 1등을 못해 아쉽긴 했지만 1등인 그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낀다거나 질투가 나지는 않았다. 우리는 1년 동안 늘 절친으로 지냈다.
2학년을 거쳐 3, 4학년이 되면서 나는 여전히 2등도 여러 번 했지만 1등도 종종 하곤 했다. 이때부터 본격적인 1 등병이 도졌다. 아마도 3학년 때 첫 일등을 하면서부터 더 병이 악화된 것 같다.
1등병은 내가 지은 이름이다. 물론 8살에 바로 발현이 된 건 아니지만 이때부터 잠재적인 싹이 있었다.
우리 엄마는 늘 나에게 '공부'욕심이 없다고 답답해하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가스라이팅이다.그게 사실이라고 해도 굳이 그런 말을 꺼내는 의도가 무엇이겠는가?
원래 성격 자체가 욕심이 없는 성격일 수도 있지만 일등병은 부모가 같이 걸리면 자녀는 저절로 낫는(?) 경우가 많다.
교사가 되고 나서 들은 말 중 하나가 초등학생 때까지는 어떻게는 엄마가 아이 성적을 끌어올릴 수는 있어도 중학생 이후에는 엄마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끝까지 부모의 기대를 만족시킬 수가 없다. 공부는 마라톤과 비슷한데 부모가 닦달하면 그 에너지가 초등 때 이미 다 소진되어버리기 때문이다.'번아웃'이라는 것이 비단 어른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