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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피지기 Apr 06. 2023

잘 먹고 잘살아도 마음이 불편한 이유

전우원 씨의 고백을 보면서 드는 생각(3) - 부끄러움은 누구의 몫인가?

전우원 씨 글을 이렇게 많이 쓰려던 것은 아니었는데 쓰다 보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서 오늘까지는 꼭 써야겠다. 오늘 이후로 웬만하면 전우원 씨 관련 글은 쓰지 않으려고 한다.


전우원 씨가 입국해서 마약 조사를 받은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광주에 가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유가족 분들께 사죄하는 일이었다. 그는 그의 할아버지가 지은 죄에 대해 죄책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전우원 씨의 사죄를 보면서 정치적인 쇼다, 돈이 떨어지니까 가족들 다 폭로한다 등 그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 많던데 물론 나도 그를 다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어느 정도는 공감이 되는 면이 있어서 적어보고자 한다.


전두환의 전재산이 29만 원이라는데 그의 자손들은 호의호식하고 있다. 아무도 전두환이 29만 원이 전재산이라는 말을 믿진 않았겠지만 손자 전우원 씨의 폭로로 그것이 거짓말이었음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는 천억 대에 달하는 추징금을 내지 않았고 며느리와 손자들에게까지 어마어마한 돈이 흘러들어 갔다. (전우원 씨의 말에 의하면 일반인들이 상상할 수 없는 액수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돈이 어떻게 나온 돈인가? 5.18 때 무고한 시민을 학살하고 쿠데타를 일으켜 대통령이 되고 비리와 불법을 저지르면서 모은 돈이 아닌가? 그 돈으로 그의 자손들은 사업을 하고 유학을 가고 번듯한 대학, 번듯한 직장에 다니고 투자하면서 잘 먹고 잘 살고 있다. 물론 그의 자식들과 손자는 선대에게 유산을 물려받은 죄(?)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신들에게 흘러들어온 그 돈이 떳떳하지 않은 돈이며, 심지어 많은 사람들의 고통과 피가 묻어있는 검은돈이라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선악에 민감하고 양심이 있는 사람이면 자신이 직접 지은 죄가 아니지만 그런 돈으로 자신이 살고 있다는 것에도 죄책감을 느낄 것이다. 전우원 씨는 그래서 5.18 민주화운동 피해자 가족들에게 마음의 짐이 있었을 것이다.




전우원 씨의 행보를 지켜보다가 나는 어제 잊고 있던 '가습기 살균제 사망사건'이 떠올라서 갑자기 관련 영상들을 찾아보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분들의 커뮤니티를 찾아가 봤다. 근 10년 만의 일이다. 전우원 씨가 5.18 민주화운동 유가족분들께 마음의 짐이 있다면 나에게는 아마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그와 비슷한 사건이 아닐까 생각된다. 물론 우리 아빠가 직접적인 가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그 마음의 짐의 무게는 감히 우원 씨와 비교도 안 되겠지만 말이다.


앞에 우리 아빠는 대기업에 다니셨다고 적었는데 생각해 보니 대기업까지는 아니고 그렇다고 중소기업보다는 커서 중견기업이라고 하는 게 더 맞을 것 같다. 아무튼 아빠가 다니던 회사는 여러 가지 사업을 하고 있었고 아빠는 화장품 부서에서 일하셨던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가습기 살균제와 직접적인 연관은 없지만 어쨌든 그 회사의 다른 부서에서 가습기 살균제를 판매했으니 그 돈으로 내가 대학까지 마친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 아빠가 회사에서 나온 신제품이라면서 가습기 살균제와 배수구 청소하는 제품을 가져오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그 가습기 살균제를 내 방 가습기에 넣었고 자는 동안에 방문을 꼭 닫고 가습기를 최대로 틀어서 아침에 일어나니 방이 무슨 화생방 훈련장처럼 뿌옇게 되었던 것이 기억난다. 그러고 나서 감기에 옴팡 걸려서 미친 듯이 기침을 몇 달 동안 했고, 나는 살균제를 추가해서 가습기를 더 틀었다. 다행히 아빠가 그 이후에는 가습기 살균제를 집에 가져오지는 않으셨다.


아빠도 집에 가습기 살균제를 가져오신 것을 보니 아마 그 회사 사람들도 그 제품의 유해성에 대해 몰랐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무지해서 지은 죄도 죄가 맞다. 당연히 그 회사가 책임져야 할 일인데 반성도 없고 사과도 없다. 그게 20년이 넘은 일인데 내가 가습기 살균제를 쓴 지 10년이 넘어서야 가습기 살균제로 사람들이 죽었다고 뉴스에 나오니 그것도 어리둥절 하긴 했다.


아빠의 잘못도 아니었고 아빠는 다른 부서였긴 했지만 그 회사 말단으로만 계셨던 것도 아니고 공장장, 연구소장까지 하셨기 때문에 나는 피해자 쪽보다는 가해자 쪽인 것 같다. 가장 죄책감을 느껴야 할 사람은 그 회사 사장인 것 같긴 한데 반성이 없는 게 신기하다. 나만 괜히 죄책감을 느낀 것인지 모르겠지만 피해자 커뮤니티에 가해기업에서 근무했던  아빠를 둔 자녀라고 글을 올렸고 조금이라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려달라고 글을 썼지만 다들 괜찮다고 하셨다. 나도 무의식 중에는 나의 죄책감을 덜기 위해, 즉 나를 위해 올린 글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나서 나는 그들을 잊었다.  


영화 <공기살인> 포스터

그런데 전우원 씨 사건 때문에 잊고 있었던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분들이 생각이 났고 영상을 찾아보니 작년에는 이 사건을 바탕으로 만든 '공기살인'이라는 영화도 개봉했었지만 흥행에 실패하여 잊혀 있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피해자분들의 온라인 커뮤니티를 찾아봤더니 그들의 고통은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이 사건으로 4살 된 아들을 잃고 이혼하고 가정이 파탄 난 데다가 아직도 투병 중인 남은 자녀를 혼자 간병하시는 분, 여전히 제대로 호흡을 하지 못해 투병하시는 분, 십 년 가까이 투병하다가 최근에 돌아가신 분 등, 아직도 이 사건은 그들에게 진행 중이었고 재판도 끝나지 않았다. 나만 이 사건을 잊어버린 지 10년이 됐고 이 분들은 여전히 외로운 싸움을 계속하고 계셨던 것이다.


'부끄러움은  몫'이라는 말이 유행하는데 이건 부끄러움을 넘어서서 죄의식이 없는 것이다. 사과와 반성을 모르는 사람들과 엮이면 그 죄책감은 양심이 있는 구성원의 몫이 된다. 제발 잘못을 했으면 반성을 하고 사과할 줄 아는, 인간으로서 기본이 된 어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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