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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H Aug 08. 2023

학교 앞 카페에서 스쿠터 도둑 맡다

Ep10


1학기가 시작한 후 나는 전기킥보드를 구매했다. 그 이유는 기숙사가 조금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에서 학교 다닌 거에 비하면 정말 코앞이었다. 한국 학교에서는 편도 한 시간이 걸렸다. 사실 가까운 거리인데 3번을 갈아타야 했다.


 학교까지는 약 20분 정도 걸렸다. 내가 멀다고 느낀 이유는 다른 의대 동기, 선배들은 대부분 학교 바로 앞에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학교부터 기숙사까지 가게가 하나도 없고 집 밖에 없으며 너무 한적해서 더 지루하게 느껴진 것 같다.


아무튼 인터넷에서 가장 저렴한 샤오미 전기 킥보드를 구매했다. 우리나라에서는 50만 원 정도면 전기 스쿠터를 살 수 있지만 헝가리는 정말 공산품이 비싸다. 대부분의 제품이 다 수입이다.


 나는 기숙사에서 장학생으로 무료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월세를 안내는 대신 빨리 움직일 수 있는 킥보드를 마련했다.



 화학 시험 보기 이틀 전에, 카페에 가서 공부를 했다.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계산 문제들이라 열심히 준비했다. 그날은 내가 항상 기숙사에 박혀있는 걸 아는 선배가 내 친구랑 같이 맛있는 밥을 먹으러 가자했기 때문에 미리 공부해 뒀다.


 10월 중순, 날씨도 너무 좋았고 시험 준비도 잘했기 때문에 기분이 좋았다. 그날이 문제였다. 내가 사는 곳이 한국이 아니라, 유! 럽!이라는 것을 내가 망각했다. 저녁을 먹으러 가는 곳이 좀 멀었기 때문에 킥보드를 가져갈 수는 없었다. 그리고 금방 돌아올 거라 생각해서 킥보드를 슈퍼 앞 카페에서 잘 보는 곳에 자물쇠를 채워 놓고 밥을 먹으러 갔다.


 밤 열한 시쯤 돼서 돌아오는데 친구들이 내 기숙사까지 택시를 타고 데려다줬다. 바보 같은 나는 킥보드를 가져가야 한다고 말하지 않고 기숙사까지 갔다. 마음 한쪽이 불편했지만 별일 없을 거라 생각했다. 그 슈퍼는 학교 코앞이고 카페도 있고 cctv가 주변에 있었다.


 다음날 아침 정말 좋은 날씨에 기분 좋게 다시 그 카페로 향했다. 저 멀리 보여야 하는 내 킥보드가 보이지 않았다. 두근두근 내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끼며 점점 가까이 갔다. 오 마이갓. 없다. 내 킥보드가 사라졌다.


 그때의 심정은 절망 그 자체였다. 슈퍼 안에 들어가 직원에게 내 킥보드를 봤냐고 물어봤다. 본 적이 없다고 했다. 당황해서 말이 안 나왔다. 다시 밖을 나가서 보니 내 자물쇠까지 싹 사라져 있는 곳을 멍하니 바라보고만 있었다.


 마치 시험 날 시험 보러 못 가는 꿈을 꾸는 것만 같았다. 나 가장 비싼 물품이 이렇게 사라지다니. 내 자신이 한심스럽고 원망스러웠다. 유럽에 살면서 이렇게 생각 없이 다니다니. 29살 먹고 이런 내가 바보 같을 뿐이었다.


 정신이 드니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슈퍼 앞에서 미친 사람처럼 엉엉 울었다. 어제 같이 식사했던 친구에게 전화했다. 그 친구는 한걸음에 나에게 와줬다.


경찰서에 찾아갔더니 헝가리어를 할 줄 아는 사람을 구해오라고 했다. 그것도 지금 당장. 친구는 외국에 살다와 영어를 아주 잘한다. 그 친구가 우리 반 친구에게 전화해 어떻게 어떻게 헝가리어를 하는 사람을 구해줬다. 지금 생각해 보면 너무나 고마운 일이다. 그 당시에는 너무 분하고 억울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헝가리행 비행기에 타오 오는 날부터 사람이 죽어 고생했던 나. 학교 시작한 뒤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또 나는 킥보드를 도단당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사실 이 사건이 너무나도 열받고 짜증 나서 아예 잊어버리고 살았다. 친구들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이 글을 통해 내 한이 조금 덜어졌으면 하는 마음이다.


 도둑을 맡는다는 건 요즘 한국에서 겪기 힘든 일이다. 내가 어딘가에 흘리고 빠뜨리는 건 있어도 누군가가 훔쳐가서 물건을 잃어버렸다는 건 들어본 적이 없다. 유럽에서 도둑 맡는다는 얘기는 많이 들어서 알고 있었다. 심지어 나는 소매치기로 유명한 바르셀로나, 파리 등등을 다녔을 때 100원도 잃어버린 적 없었다. 내가 사는 동네는 정말 한적하고 아무도 없는 곳이라 내가 방심했었다.


 헝가리를 선택해 공부하러 와서 29살에 1학년을 다시 하며 애써 적응하고 있었다. 스쿠터 사건 때문에 나 자신이 싫고 여기서 6년이나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나 끔찍했다.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여태까지 쌓여있던 마음 때문에 엉엉 울었던 것 같다.


 한동안 기숙사에 걸어갈 때마다 킥보드 생각이나 더 열받았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 몇 개월 있으니 걸어가며 보이는 하늘이 조금 예뻐 보였다. 다행히 내가 헝가리에 오기 전 9,10월에 해놓은 해외보험 덕분에 내가 산 킥보드값의 반은 돌려받을 수 있었다.


헝가리 경찰은 생각보다 일처리가 빨랐다. 카페에 가서 cctv를 확보한 뒤 범인을 일주일 뒤쯤 검거했다. 하지만, 그 뒤로 아무 연락이 없다. 내가 몇 개월 뒤 보상을 받을 수 없냐고 물어봤을 때 그 사람들이 법정에 있어 아직 모른다.라는 답변뿐이었다.


오늘의 교훈. 유럽에 갈 때는 여행자보험을 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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