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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 H Aug 12. 2023

29살 신입생의 기숙사 생활

Ep12


1학기에는 기숙사에 들어갔다. 나는 미리 헝가리에 가 있던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집을 구하기 어려울 것 같았다. 또 엄마는 기숙사가 안전할 거라 생각해 기숙사에 들어가기를 추천했다.


 기숙사의 첫인상은 높은 계단이었다. 기숙사 입구는 계단으로 한 층 위에 있었다. 입구까지는 엘리베이터도 없었다.


 무거운 캐리어를 들고 낑낑대며 입구까지 갔다. 체크인 식으로 입실을 하고 서류를 작성했다. 방 배정은 완전히 랜덤이었다. 나는 나를 제외한 미얀마인 3명과 같이 배정되었다. 방은 2인 1실에 2개의 방이고 총 4명이 함께 화장실, 부엌을 공유하는 구조다. 거실이 아예 없기 때문에 식탁은 없다. 차라리 더 비싸게 받고 방을 혼자 쓸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2인 1실이 최선이었다.


 룸메와 나는 잘 맞는 점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일찍 잠자리에 든다는 것이다. 우리는 둘 다 친구들이랑 놀지도 않고 밤 10시쯤에 잠에 들었다. 한국에서는 12시쯤 잠에 들었는데 헝가리에서는 잠을 충분히 많이 잔다. 수면이 나에게 정말 중요하기 때문에 많이 자야 공부에 집중을 할 수 있다. 유튜브나, 드라마 등 영상을 보지 않으면 충분히 자고도 공부할 시간이 나왔다.


도착한 첫날 내가 씻을 때 필요한 샴푸, 린스등을 하나도 안 가져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주변에 있는 슈퍼를 검색하자 다행히 아직 운영하는 곳이 있었다. 얼른 나가서 바깥을 약간 구경했다.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텅 빈 거리에 낡은 아파트들이 있는 약간 구소련느낌이라고 해야 할까나..?


나의 룸메이트는 굉장히 착한 미얀마인이었다. 비즈니스 전공으로 나처럼 장학생으로 왔다. 20대 극초반의 어린 나이에 이 멀리까지 공부를 하러 온 아이였다. 가족과의 사이가 매우 좋아서 하루에 영상통화를 거의 3번 정도 할 정도였다. 우리의 사이는 딱 적당했다.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은 사이. 그리고 서로 말을 못 알아듣는 게 훨씬 편하다는 것도 알았다.


기숙사에 살며 장단점이 극명했다. 장점은 휴지랑 전기, 가스가 무료라서 마음껏 사용해도 된다는 점이었다. 어차피 전기를 써봤자 많이 쓰지도 못하긴 하지만 라디에이터를 이용하는 헝가리에서 가스가 무료라서 너무 좋았다. 나는 한 겨울에도 기숙사에서 반팔을 입고 다닐 수 있었다. 그리고 1,2주에 한 번씩 방 청소를 해줬다.


단점은 첫 번째로 방음이 전혀 안된다는 것이었다. 밤에 옆방애들이 웃는 소리가 너무 잘 들렸다. 거기다가 평일에도 위층에서 쿵쿵거리며 파티를 자주 했다. 너무 괴로워서 이어 플러그를 샀는데 소리가 새어 들어왔고 잠잘 때마다 귀가 불편했다.


 내일이 시험인데 애들이 시끄럽게 떠들며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잘 들려서 방해가 많이 됐다. 기숙사 사는 동안은 도서관에서 많이 공부를 했다.


 둘째로 빨래방이 너무 협소했다. 몇 백 명이 사는 기숙사 전체에 세탁기는 3대뿐이었다. 그마저도 하나씩 고장이 나 나중엔 한대밖에 작동하지 않았다. 예약제인데 예약을 잘 지키지 않아 줄 서서 기다려야 했다. 애들이 잘 것 같은 시간이나 학교에 가 있을 틈을 타 빨래를 얼른 돌려야 했다.


 나중에는 기숙사가 익숙해져서 나름 적응을 잘하고 지냈다. 의대생들만 기숙사에 있는 것은 아니라 공부를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없는 다른 과 학생들은 파티를 정말 많이 하고 항상 놀러 다니는 듯했다. 시험 기간에도 소음 때문에 고통을 많이 받았다.


 그런데 가장 큰 문제는 옆방 애들이었다. 처음엔 내가 한국인이라 호감을 보이는 듯했다. 난 친구들과 친해지고 놀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었다. 그러다 보니 인사만 하는 사이가 됐지만 나는 서로 친하지 않아 더 편했다.


 자는 시간만큼은 조용히 해주었으면 좋겠는데 문을 다 열어놓고 술 먹고 떠드는 빈도가 높아졌다. 애들은 한국과 달리 밤에 조용해야 한다는 개념 자체가 없는 듯했다. 소음공해가 사람을 정말 미치게 만든다든게 이런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2학기 초에 스트레스에 못 이겨 기숙사를 나오게 되었다. 기숙사에서 나오니 정신 건강이 좋아졌다. 가끔 개 짖는 소리 때문에 짜증이 났지만 그것 말고는 조용한 편이었다. 혼자 고요하게 공부만 할 수 있어 너무 만족스러웠다.


 오늘의 교훈.. 외국 기숙사는 20대 초반에만 들어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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