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26
20대 때의 나는 일단 세상물정을 잘 몰랐고,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삶을 살기 싫어했다. 난 내가 특별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평범한 삶을 무시하면 생기는 일.
이십 대 초반에는 아주 삐뚤게 나가지는 않았다. 그땐 다른 동기, 선배들같이 비슷한 생활을 했다. 그러다 4학년 때쯤부터 무슨 바람이 들어 갑자기 나와 전혀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졌다.
처참히 실패. 그 와중에 졸업한 전공으로 대기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에 집중하지 않았다. 당연히 너무 높은 목표만 바라보다 보니 어느 하나 되지 못했다.
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세상을 다른 방향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때 사귀던 남자친구가 회사에 다니는 건 아주 고리타분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대기업이 좋은지 하나도 모르겠다고 했다.
이 세상에 다양한 직업이 있으니 꼭 회사에 다니라는 법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정말 대기업에 입사하고 싶었다. 대학교 선배언니가 해주는 회사 복지 이야기, 월급 이야기에 나도 중산층이 될 수도 있겠다는 꿈에 부풀었다. 한 번도 내 방을 가져보지 못했던 나에게 따뜻하고 안전한 나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다.
그런데 나는 관심에도 없던 자영업을 남자 친구 따라 공부했다. 내 인생보다 남자친구가 하는 일을 도와줬다. 나에게 돈이 주어지는 것도 아닌데도 열심히 했다. 그리고 평범한 회사 다니는 삶을 오히려 무시했다.
그때가 내가 취업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시기이며, 나는 자영업 따위에 관심도 없었다는 걸 내 마음속 깊은 곳 속에서는 잘 알고 있었다. 내 가족들도 취직준비를 안 하고 갑자기 내가 왜 저러는지 이해를 못 했다.
나는 철저히 물건을 사고파는 장사에 소질이 없다는 것과 그런 과정에서 스트레스를 상당히 많이 받는다는 것을 그때 절실히 깨달았다.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간간히 이력서를 넣기는 했다. 준비가 안된 상태로 제출만 하다 보니 계속되는 불합격 소식을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남자친구의 의견을 거부하고 전공공부를 하거나 내 살길을 찾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이 평범하게 직장을 다니는 것이 바보같이 보일 때도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던 나 자신이 바보인걸 그땐 몰랐다.
몇 년이 지나고 나니 이젠 정말로 취업을 할 수 없게 돼버렸다. 난 평범한 삶을 살 사람이 아닌가 봐.라는 생각으로 평범한 일을 구하지 않았다.
한국은 나와 안 맞으니 외국에서 살아야겠다는 허황된 꿈만 꿨다. 코로나가 터진 뒤 더 집에서만 있고, 그 뒤에 했던 일들도 다 온라인으로만 했다. 현실감각이 더 떨어졌다.
지금은 평범하게 일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위대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침에 일어나 지옥철을 타고 일을 하고, 또 지옥철을 타고 집에 온다. 씻고 조금 쉬다 보면 금방 자야 할 시간. 그 힘든 시간을 견디는 것 자체가 대단하다.
평범한 사람들은 항상 사표를 쓰고 싶고, 일하기 싫지만 가족을 위해, 또 나 자신을 먹여 살리기 위해 일한다.
매일 나 삶을 불안해하고, 그러면서 내가 평범한 일상을 살도록 이끌어주지 못했던 내 자신에게 미안하다. 그리고 수많은 성실한 직장인들을 무시했던 내 어린 날들도 반성한다.
아이러니하게도 또 나는 대다수의 서른살의 평범과는 멀게 살고 있다. 그렇지만 지금 이 선택이 나의 평범한 삶을 만들어 줄 것이라는 걸 알기에 최선을 다할것이다. 얼른 공부를 끝내고 돈을 버는 평범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