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이 집에 미치는 영향
학교 생활을 잘하다가도 가끔 우리 가족을 생각하면 괴로울 때가 있다. 어렸을 때는 가족들이 전부인 세상이라 나는 우리 가족을 나름 합리화했다.
“우리 아빠는 그래도 늘 열심히 사는 사람이야. “
언젠가는 아빠도 잘 돼서 우리 가족이 잘 살 날이 올 거야. “
나는 가끔 불필요할 정도로 불안해하고 걱정을 달고 사는 성격인데 내 성장환경이 그리 안정적이지 않아서 그러는 것 같다고 느낀다. 늘 욕을 달고 사는 다혈질 할머니와 알코올중독 아빠, 우리를 사랑하지만 일에 지쳐 힘이 없는 엄마. 나를 안정적으로 보호해 주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어른이 없었다.
엄마는 차분하고 말이 많지 않다. 도전을 하기보다는 안정을 추구하고 누군가가 자신에게 부당하게 대해도 참고 속으로 삭이는 성격이다. 엄마의 큰 장점은 성실함과 사람의 장점을 많이 본다는 것이다. 그 대신 걱정이 매우 많아 조그만 일에도 매우 걱정을 많이 한다. 늘 한 발 앞서서 걱정하는 건 엄마를 닮았다. 아빠는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하고 현재에 집중하기보다는 늘 미래에 초점을 잡는 사람이다. 그러다 보니 성실과는 매우 거리가 멀고 한 발 한 발 조금씩 나아가는 법을 모른다. 성격이 급해서 성공하는 사람들의 결과만 보고 그 과정은 보지 못한다.
나는 엄마와 아빠의 성격을 둘 다 닮았는데 아빠의 성향을 많이 닮았다. 야망이 내 능력에 비해 너무 크고 내가 안된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힘들다. 그리고 미래에만 집중을 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도 다행히 엄마의 성실함을 조금 물려받았는지 해야 할 것이 있으면 너무 포기하고 싶어도 끝까지 해낸다.
아빠는 늘 허풍을 많이 떠는 사람이었다. 거의 내가 어른과 대화가 가능했을 중학교 때 즈음부터 아빠는 늘 자신이 이번 일만 잘 된다면 한 달에 1000만 원 정도 벌 것이며 그때 나에게 용돈을 아주 많이 주겠다고 했다. 하지만 아빠는 그때부터 알코올 중독이었다. 우리나라는 술에 관대한 문화이기 때문에 잘못된 것인지도 몰랐다. 나는 아빠가 알코올 중독 상태라는 것을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깨달았다. 아빠가 일을 하는 모습보다는 술 마시며 TV 보는 모습이 더 기억에 많다.
아빠는 일을 거의 한 달 간격으로 그만뒀다. 그 이유를 자세히 얘기해주진 않았지만 대부분 일 하는 사람들과 다퉜다. 싸웠다. 자신을 무시한다. 등등 얼토당토 없는 말들 뿐이었다. 한 번은 정말 괜찮은 일자리를 얻었었는데 일이 지루하다며 관뒀다. 나는 점점 아빠를 포기했다. 엄마는 늘 새벽부터 일을 나갔고 아빠는 학교 다녀왔을 때 항상 집에서 TV를 보고 있을 때가 많았다. 미디어에 나오는 아빠의 모습은 우리 아빠와는 정반대였다.
아빠는 술을 많이 마셨다. 술에 취하면 난폭해질 때가 많았다. 키는 그렇게 크지 않지만 덩치가 있는 편이고, 생김새도 사나워 화나면 매우 무서웠다. 어렸을 땐 내가 아빠가 술 취했을 때의 모습을 잘 기억하지 못하지만 한 번은 엄마를 협박하고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8살 정도였을 때인데 그때 문틈 사이로 보고 너무 무서워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시 잠자리에 들었다.
술 먹고 난폭해진 정도가 심해진 건 아빠가 사기를 당한 뒤였다. 그 사기꾼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내가 초등학교 저학년쯤이었는데 그 아저씨가 우리 집에 찾아와서 맛있는 것을 사주기도 하고 우리 아빠에게 차를 선물해주기도 했다. 아빠는 귀가 매우 얇아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혹하는 제안을 하면 바로 받아들이고 그 사람을 100퍼센트 신뢰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자신에게 쓴소리를 하거나 바로잡아 주려고 하면 바로 화를 낸다. 사기꾼이 나쁜 건 맞지만 아빠는 사기당하기에 너무 맞는 조건을 가지고 있었다.
그렇게 우리 집은 쫄딱 망해버렸다. 집 한 채만은 가지고 있었는데 모든 걸 다 압류당하고 빚을 떠안았다. 집에는 늘 전화가 와서 돈을 달라고 하는 말뿐이었다. 초등학생이었지만 나는 우리 집이 망해가는 것을 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아빠 엄마는 나에게 그 빚 독촉 전화를 받게 했다. 전화를 받으면 엄마아빠가 집에 없다고 말하라고 시켰다. 그때 내가 어려서 기억을 못 할 거라고 시키신 거겠지만 지금도 나는 모르는 전화받는 것을 싫어한다.
우리 집은 반지하에 집 문도 제대로 되어있지 않는 곳으로 이사했다. 쥐가 뛰어다니는 소리가 들리고 장마철엔 비가 세서 바가지를 둬야 했다. 할머니랑 언니, 나 한방, 엄마아빠 방, 동생 방 이렇게 지냈다. 한 번은 밤중에 밖에서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서 웅성웅성하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가 술에 취해서 집 앞 오토바이에 앉아있다가 술주정을 부리다 쓰러졌던 것이다. 그때 차가 바로 전에 지나갔는데 만약에 조금이라도 더 먼저 쓰러졌다면 어떻게 되었을지는 모른다. 동네사람들이 다 모여서 아빠의 추한 모습을 보게 되었다.
술에 너무 취하면 자신이 뭘 했는지도 기억을 못 하기 때문에 아빠는 늘 혼자 잘못을 잊어버렸다. 그러고는 다시 술을 마셨다. 내가 중학교 때부터는 거의 매일 술을 마셨을 것 같다. 그래도 그땐 일을 하려는 욕구가 있었고 그렇게 폭력적인 성향을 많이 보이진 않았다. 그러다가 내가 20살이 넘었을 때부터는 정도를 넘기 시작했다. 엄마에게 심하게 시비를 걸었고 우리에게 까지도 심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신의 팔자가 안 좋아서 하는 일마다 망하고 부자들은 다 나쁜 짓을 해서 돈을 잘 버는 것처럼 말했다. 아무리 운이 좋은 사람이라도 직업을 100번 정도 바꾼다면 잘 될 수가 없는 것을 모르는 아빠가 신기했다. 엄마가 참다 참다 이제 돈에 대해 얘기를 꺼내기 시작했는데 그게 아빠의 발화점이 되었다. 친척들에게도 행패를 부리고 밖에서도 이상한 행동을 하는 아빠가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아빠도 술을 안마실 때는 정상으로 돌아올 때가 있는데 그때 자신이 얼마나 초라한지 깨달았을 것이다. 주변에 친구도 없고, 가족 사이에서는 외면을 당하는 것을 느꼈을 테니까. 이제 나이가 들어 자신이 무언가를 도전한다고 해서 그렇게 부자가 될 수 없다는 것도 무의식적으로 알았을 것이다.
아빠처럼 운이 좋은 사람은 없는데 자신은 운이 없고 팔자가 안 좋다는 것을 늘 말하는 것이 신기하다. 자신이 화난걸 늘 집에서 술 먹고 해소하고 가장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데도 같이 살아주는 부인. 제대로 학원도 보내지 않았는데 스스로 공부해서 대학교에 들어간 큰 딸, 작은 딸,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서 열심히 일하는 막내아들까지. 우리는 아빠에게 용돈 한 번 달라고 한 적이 없다.
그래도 내가 아주 어렸을 땐, 우리 가족이 주말에 놀러 가기도 하고 아빠가 든든했던 시절이 있다. 위에서 언급하지 않았던 다른 큰 문제가 많아 지금은 아빠에게 연락 오는 것 마저 싫지만. 그래서 아빠를 떠올릴 땐 마음속에 큰 덩어리가 있는 것처럼 답답하다. 아빠도 잘 되고 싶었겠지. 자신이 아무 쓸모가 없어졌다는 생각에 많이 괴롭고 아무도 사랑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매일 혼자 느끼고 그 외로움을 달래려고 술을 마시는 거라고 생각한다.
가끔은 내가 열심히 노력하고 성공해도 아빠가 자꾸 내 발목을 잡을 것 같아 불안하다. 내가 의대에 입학한 걸 알고 지원해 준 건 하나도 없는데도 내 딸이 알아서 들어갔다고, 내 딸이 의사가 될 것이라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닌다. 나에게 정서적으로 지지해 주거나, 안정적인 생활을 하도록 어른다운 대화를 한 번도 해준 적이 없는 아빠가 모두 자신이 잘나서 자식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에 실망스럽다. 나중에 내가 좋은 의사가 되어도 알코올 중독 아빠가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사람들이 나를 다르게 생각할 것 같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지금 내가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하고 내가 바꿀 수 없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번 생에는 제대로 된 어른인 아빠 밑에 태어나지 못한 것에 대해 누굴 탓할 순 없으니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고 나 자신을 바로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도 아빠의 성향 중 도전적인 것, 꿈을 크게 가지는 것을 닮아 내가 외국에 나와 공부를 하고 있게 된 것이기 때문에 고마운 점도 있다. 나는 내 가정을 만들었을 때 대화를 할 수 있고, 자식에게 안정감을 줄 수 있는 어른이 되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