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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캡틴 Apr 14. 2020

군대에서 선거철이 되면

전 세계를 강타한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역대급으로 조용한 선거철을 맞고 있다. 

티브이를 잘 안 보는 탓에 이전에는 방방곡곡에 울려대는 선거 노래로 인해 선거철이 왔음을 실감했다면 이번엔 조용히 집 앞에 도착한 선거홍보물을 보고서야 알았다. 마치 군대에 있을 때와 비슷하다. 


군대에서는 선거철이 오면 가장 먼저 상급부대에서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라는 공문이 날아온다. 매번 현역 장병들의 SNS상 정치적인 글 게재로 인해 징계받았다는 사고사례가 내려와 지휘관들에게 교육시키라 강조한다. 

이 시기에 가장 민감해지는 것은 선거홍보물이다.  군대에 있는 장병들은 홍보물이 집이 아닌 부대로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선거 기간이 되면 인사과는 바빠진다. 


인사장교를 할 때 대통령 선거를 치르면서 홍보물을 신청한 적이 있었는데 신청하는 것이 모자라 각 주민센터에 전화를 해서 올바로 보냈는지 확인하라는 지시가 내려온 적이 있었다. 

비록 동원사단이라 30명 남짓한 인원들이지만 전화를 30번 돌린다는 것이 상당히 시간을 잡아먹는 일이다. 주민센터 검색하고 전화 걸고 통화해서 확인하는데 한 사람당 2분 정도 걸린다고 하며 1시간은 그냥 지나가는 일이었다. 게다가 주민센터에서 그리 협조적인 것도 아니었다 

처음 한 두 번은 별 탈 없이 확인했는데 세 번째에서 문제가 터져버렸다. 40대 이상 되어 보이는 남자였는데 전화를 받고 군대에서 전화를 했다고 하자 매우 퉁명스럽게 말했다. 


"OO부대 인사장교입니다. 다름 아니라 선거홍보물 발송 확인 때문에 전화드렸습니다"

"네네. 잘 보냈습니다."


누구인지 말도 안 했는데 대뜸 잘 보냈다고 하니 어이가 없었다.


"아.. 그래도 한 번 확인 부탁드려도 될까요?"

"잘 보냈다고요."

"아니.. 누군지 말도 안 했는데..."

"잘 보냈으니까 당신 대대장인지 연대장인지 한테 잘 보냈다고 하라고요."


그 사람은 내 상사도 아니고 내가 민원을 넣은 것도 아닌데 도를 넘은 불친절함에 화가 났다. 같이 나랏밥 먹는 처지에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았다. 


"아니 그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그걸 확인 안 해줍니까?"

"내가 하루에 이런 전화를 몇 번이나 받는 줄 알아요?"

"그럼 당신은 내가 하루에 이런 전화를 몇 번이나 돌리는 줄 알아요?"

"잘 보냈으니까 걱정하지 마시라고요."


전화를 끊고 욕설이 절로 나왔다. 같이 사무실에 있던 군수 보급관이 괜찮냐고 물었다. 평소 화를 잘 안 내는 성격이었는데 아마 그날이 군대 들어가서 처음 화낸 날이 아닐까 싶다. 누군 하고 싶어서 하는 것도 그거 한 번 확인하는 게 그렇게 힘든 건가 싶었다. 

그냥 알아서 잘 보냈겠지 하고 확인 전화를 안 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부대로 홍보물이 도착하는 것은 비교적 느리기 때문에 홍보물이 도착하고 나서 누군가 못 받은 것이 확인되면 선거 전에 받을 수 있을지 넓을지 미지수기 때문이다. 만약 홍보물을 받지 못하면 선거권을 침해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 실수는 주민센터에서 했지만 실무자도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휘관의 지시까지 있었다면 빼도 박도 못한다. 실제로 선거공보물을 제대로 수령하지 못해 실무자가 징계받는 일을 보기도 했다.


그렇게 선거홍보물을 받고 사전투표 기간이 되면 가까운 주민센터에서 가서 투표를 진행한다. 보통 선거 당일이 아닌 사전투표 기간 중 평일에 진행하며 버스나 대형트럭으로 순차적으로 이동해서 투표하며 휴가자를 제외한 전 장병이 100% 투표할 것을 지시한다. 

사전투표 기간에 하는 이유는 선거일에 휴식을 보장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갑자기 상황이 발생하여 선거 당일에 투표를 못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예비일로 놔두는 것이다. 따라서 사전투표 기간에 정말 피치 못 할 사정으로 못 하게 되면 최대한 사전투표 기간에 하고 그마저도 안 되면 선거 당일에 하는 것이다. 

만약 선거 당일에도 못 하면 된다면 어떻게 될까? 

다행히 그럴 일은 없다. 무조건이다. 

투표권을 보장 안 해주면 지휘관들에게 책임이 오기 때문에 무슨 수를 써서라도 투표를 시킬 것이다. 


군대 내에서 특정 후보자나 정당에 투표하도록 강요하지 못한다. 유도하는 것도 안 된다. 아예 정치적 발언 자체를 못 하게 한다. SNS 같은 공개된 공간은 물론이고 사적인 대화에서도 허용되지 않는다. 군대는 계급체계라서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별 의미 없이 한 말이 강요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평소에도 허용이 되지 않지만 선거 시기가 되면 더욱 민감해서 가중 처벌받을 수 있다. 그래서 군대에서는 정치 얘기를 안 하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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