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부모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는 곳은 어디일까?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설마 대학교에서 그러진 않겠지 싶겠을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저런 말이 나온 곳은 대학교도 아니고 자식을 군대 보낸 부모님 입에서 나온 말이다.
사람이 모여있는 군대이다 보니 크고 작은 다툼들이 항상 존재한다. 적게는 말다툼부터 크게는 주먹다짐까지 일어나는 곳이다. 주먹다짐까지 가면 징계까지 가는 것이 보통이지만 말다툼 정도는 자기네들끼리 쉬쉬하고 끝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말다툼일지라도 상황에 따라 징계까지 가곤 한다.
규정이 있고 위계질서가 있는 곳이다 보니 말다툼이라도 그 과정에서 규정에 어긋나는 요소가 있으면 징계를 해야 한다. 이러한 일들을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면 나중에 큰 사건으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 당시 들어왔던 제보도 그러했다.
한 병사가 동기랑 말다툼한 일이 있었다. 다행히 자기네들끼리 서로 잘 이야기하고 풀었는데 어떤 선임이 그 사건에 대해 꼬치꼬치 캐물은 것이다. 보통 그 선임이 평소 친했다거나 평판이 좋은 사람이었으면 후임도 적당히 대답하고 넘어갔을 텐데 친하지도 않고 부대 내에서 평판이 극도로 안 좋은 선임이 대뜸 그러니 후임 입장에서는 짜증이 났던 것이다. 그래서 거기에 대해 답변을 제대로 하지 않자 선임은 끝까지 대답을 강요하면서 언성을 높여 말다툼이 생겼다. 그 과정에서 좀 사소하지만 후임이 선임에게 위협적이라고 느낄 수 있는 행동도 했다.
여기서 요지는 선임이 업무와 상관없는 일을 지속적으로 대답하길 강요했다는 점과 후임이 약간의 위협적인 행동을 가했다는 점이었다. 경미하지만 둘 다 규정에 어긋나는 행동들이다. 절차대로 징계위원회를 회부했고 후임은 휴가 제한, 선임은 영창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징계위원회에는 지휘관이 참석하지 않기에 결과를 나중에 들었는데 대답 좀 강요했다고 영창이라는 것이 좀 과한 처사로 보였다. 물론 규정상에 문제는 없었다. 아마 그 선임의 평소 행실이 징계위원회의 판결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그리하여 선임은 영창에 가기 위해 법무부에서 적법성 심사를 받으러 가는 날이었다.
모르는 번호로 한 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그 선임의 어머니였다. 어머니는 다짜고짜 나에게 물었다.
"아니 포대장님. 우리 애가 뭘 잘 못 했다고 영창에 가야 하죠?"
자식 군대 보낸 부모님 입장에서 충분히 궁금할 만도 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었는지에 대해, 그리고 어떤 규정에 의해 그런 결과가 나왔는지 설명을 해드렸다. 하지만 어머니는 애초에 이유를 들을 생각이 없어 보였다.
"포대장님. 우리 애는 그런 애가 아니에요. 분명 그 후임이라는 놈한테 문제가 있겠죠."
다시 한번 규정에 대해 설명했으나 그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아니 그 후임 놈은 선임이 묻는데 왜 대꾸를 안 한대요? 요새 군대가 개판이라더니 정말 그런가 보네. 후임이 선임 묻는데 대답도 안 하고."
개판이라는 것은 판단하기 나름이지만 그 선임이 한 행동은 명백한 부조리였고 그런 행위를 묵인하는 게 오히려 개판을 만드는 것이다. 후임이라고 개인적인 질문에 답해야 하는 의무는 없다. 하지만 어머니는 나의 의견을 아무리 설명을 해도 듣지 않았다.
"포대장님. 아무튼 우리 애 절대 영창 못 보내니까 알아서 하세요. 진짜 우리 애 영창 가면 국방부고 뭐고 신고할 테니까."
남의 말을 들을 생각 없이 막무가내인 것은 둘째치고 전화하는 내내 '우리 애는, 우리 애가'하는 표현들이 너무 거슬렸다. 그 후 그 어머니는 행보관한테도 전화하고 대대장님한테도 전화를 해댔고 그때마다 '우리 애'라는 표현을 썼다.
부모님 입장에서는 군대 간 자식이 걱정될 것이고 부당한 대우를 받지 않는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다. 부모님의 알 권리가 있고 군대에서는 거기에 대해 답할 의무가 있다.
하지만 '우리 애'라는 표현이나 알 권리를 넘어선 부당한 강요를 듣고 있으면 여기가 군대인지 어린이집이니 착각이 들 때가 있다.
부모님 눈에는 자식이 몸은 다 컸어도 하는 짓은 아직 애처럼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자식에게도 사회적인 위치가 있고 다른 사람들 눈에는 다 큰 성인이며 본인이 한 일엔 본인이 책임져야 한다.
그 후 적법성 심사를 받을 때 법무부에서도 좀 과하지만 규정상 문제가 없다고 판단했는지 휴가제한 또는 영창이라는 판결을 받았다. 지휘관이 영창을 보내겠다고하면 영창을 보내는 데 아무 문제 없었다. 그 어머니가 국방부에 신고해도 규정에 전혀 문제가 없어 어떠한 불이익을 받을 일도 없었다.
하지만 대대장님이 볼 땐 사건 외적인 것이 징계수위에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하여 휴가제한으로 처리하라는 지시를 내리면서 사건은 일단락됐다. 하지만 그 어머니는 그 후에도 몇 번을 행보관에게 전화해서 '우리 애'를 들먹이며 소통이 아닌 자기 할 말만 하며 괴롭혔다.
이런 일이 우리 포대에만 있던 일이 아니다.
옆 포대에서는 한 병사가 후임들 앞에서 동기를 언어적 성희롱을 한 사건이 있었다.
징계결과 영창처분을 받자 성희롱한 병사의 가족들이 한데 모여 스피커폰으로 전화해 '우리 애를 왜 영창보내냐'고 따진 적이 있었다.
그 병사의 가족들 앞에서 말하기엔 수위가 상당히 쎈 말이었기에 처음에는 돌려서 말했는데 마치 포대에서 아무 죄도 없는 애를 영창을 보내는 것 말해서 결국 그 병사가 했던 말을 그대로 읊어줬다. 듣기 민망한 내용들이었기에 그 포대장은 병사의 프라이버시를 위해 말하지 않으려했지만 말을 안 할 수가 없었다. 한 동안 정적이 흐르더니 얼버부리면서 전화를 끊고 다시 연락하지 않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지휘관들을 하고 있는 동기들에게 들어보면 좀 극성이다 싶은 부모님의 상당수가 군대 보낸 자식을 '우리 애'라고 표현한다고 한다.
혹시나 오해할까 봐 다시 한번 말하지만 군대 보낸 자식이 걱정되는 것은 당연한 거고 지휘관에게 전화하는 것도 문제가 될 일이 아니다. 오히려 가정과 연계한 관리로 사고를 예방하는 게 지휘관에게는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군대는 애를 맡고 있는 곳이 아니다. 부모님이 전화해서 억지 부린다고 바뀌는 건 없다. 군대에 올 나이면 사회적으로 봤을 때 애가 아닌 국가에서 부여한 의무를 다 하고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질 나이다.
부디 그 친구들이 취업하고 나서도 직장에 전화해서 '우리 애 잘 부탁한다'라고 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