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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광호 Apr 02. 2024

[기고] 그가 사표 대신 총을 든 이유

<이코노미 인사이트> [78호] 2016년 10월 01일 (토) '경제와 책'

http://www.economyinsight.co.kr/news/articleView.html?idxno=3309


1989년 9월14일, 인쇄공 조셉 웨스베커가 회사에 내민 것은 사표가 아니라 총구였다. 중국제 반자동소총 AK-47, 독일제 9mm 권총 시그자우어, 반자동 기관권총 MAC-11, 38구경 스미스앤드웨슨 리볼버로 무장한 그는 3층 경영진 사무실부터 노동계급의 지하실까지 회사 곳곳을 훑으며 총을 쏘았다. 모두 일곱 명을 살해하고 스무 명에게 부상을 입힌 뒤 그는 권총을 턱에 대고는 방아쇠를 당겼다.


언론은 미친놈이 느닷없이 폭발한 사건으로 보도했다. 그는 조울증을 앓았고 치료제 프로작을 복용했으며 자살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두 번의 결혼도 실패했다. 어머니는 정신병원에 있었고 아버지는 일찌감치 돌아가셨다. 하지만 조울증은 미국인 여섯 명 중 한 명이 언젠가 겪게 마련인 병이고 그런 가정사도 결코 드물지 않다.


웨스베커는 왕따를 당했다. 다른 노동계급 구역 출신이었고, 땅딸막했다. 특히 얼굴과 배가 똥똥해 ‘호빵맨’으로 불렸다. 여성들에게 인기남도 아닐뿐더러 인간관계도 서툴렀다. 누군가 게시판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은 웨스베커 미친놈으로 연락하시오”라는 메모를 붙여 그를 괴롭힌 일이 있었는데, 어떤 관리자도 그것을 떼지 않았다. 상사와 동료들이 그를 어떻게 취급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무엇보다 웨스베커를 힘들게 한 건 업무 스트레스였다. 그는 폴더라는 기계를 담당했는데, 인쇄 라인의 지휘본부 같은 곳으로 스트레스를 가장 많이 받는 업무였다. 또 장기간 노출되면 중추신경계를 파괴할 수 있는 톨루엔을 포함해 여러 용제와 가스 냄새가 코를 찌르는 작업장은 웨스베커뿐 아니라 공장의 전 직원을 괴롭혔다. 그는 아들이 앓는 척추옆굽음증이 화학물질 때문이라고 믿었다.



회사의 대응은 그를 벼랑 끝으로 몰았다. 스트레스를 호소하며 업무 전환을 요청하는 그에게 감독은 “그냥 참고 일이나 해”라고 했다. 의사에게 요청해 업무 전환을 촉구하는 서신을 보내게 해도, 지역의 고충 해결 기관에 제소해도 경영진은 요지부동이었다. 병가를 낸 그에게 몇 달 뒤 회사는 스트레스가 덜한 보직으로 보내는 대신 장기 근무 불능 상태로 분류 하고 임금을 대폭 삭감했다. 또 추후 그의 장애연금도 삭감하기로 했다. 한마디로 싫으면 나가라는 얘기였다. 결국 그는 사표 대신 총을 들었다.


회사의 강압적인 태도는 웨스베커에게만이 아니라 전직원을 향한 것이었고, 이는 1980년대초 부터 시작됐다. 회사 소유주 빙엄 가문은 노조가 정리해고에 응하지 않으면 공장을 폐쇄하겠다고 위협하는 한편, 노조 모르게 다른 지역에 무노조로 운영할 공장을 짓고 있었다. 사쪽은 정리해고를 단행했고 임금도 8년간 동결했다. 1천만달러나 되는 직원 연금을 자산 분할을 통해 빼돌리기까지 했다. 회사 에는 긴장, 불안, 스트레스가 급증했다.


특정 지역, 특정 회사에 한정된 사례가 아니었다. 레이건 집권 뒤 직원 복리를 먼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이 “예스럽고 별난” 관념이 되어가고, 경쟁과 주주의 가치를 우선시하는 새로운 도덕이 자리잡았다. 전국적으로 정리해고가 단행됐고 임시직이 급증했다. 경쟁이 강화됐고 노조가 몰락했다. 중산층의 일자리도 불안해졌다. ‘레이거노믹스’로 불리는(우리에게 친숙한 표현은 신자유주의 혹은 IMF) 이런 경향은 기업문화를 바꿔놓았다. 저자가 1980년대 이후 새롭게 출현해 증가해 온 사무실 총격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하는 것은 바로 레이거노믹스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추진한 공기업 민영화 조처의 첫 대상은 우체국이었다. 영리에 기초해 운영되면서 우체국은 노동강도가 높아졌고 스트레스가 급증했다. 기이하게도 연방정부가 우 체국에 지원하던 보조금 지급을 중단한 첫해인 1983년에 첫 번째 우체국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이후 우체국 총격 사건이 꾸준히 발생했으며, 1986년에는 직원 열다섯 명이 살해된 패트릭 셰릴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 책의 원제 ‘고잉 포스탈’(going postal), 곧 ‘우체국(직원)처럼 격분하다’라는 신조어가 생긴다.


직장 내 ‘분노살인’은 전국적으로 퍼져 나갔다. 왕따 당한 직장인, 정리해고를 당할 예정이거나 이미 해고된 직원, 부당한 처우에 불만을 품은 사원들이 회사에 총을 가져와 상사와 동료를 살해하고 자살 한 사건이 끊이질 않았다.


사무실 총격 사건이 급증하면서 경찰은 잠재적 용의자의 프로필을 작성하려 했지만 실패하고 만다. 프로필이 지나치게 광범위해서 의미없는 잣대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무엇이 회사에 충성하던 평범한 직원들로 하여금 총을 들게 하는지, 프로파일링 해야 할 대상은 진정 무엇인지 다시 묻는다.


“프로파일링 해야 하는 것은 사무실이나 학교의 총격자들이 아니다. ―그런 프로필은 만들 수도 없다. 정작 프로파일링을 해야 할 대상은 직장과 학교다.”

이 프로파일링이 필요한 건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사내 총격 사건들이 일종의 처절한 절규의 표현이었다는 점에서, 한국에서 그에 견줘볼 수 있는 건 높은 자살률이다. 정리해고와 업무 스트레스로 고통받다 스스로 생을 마감한 한국 노동자들도, 만약 총기가 허용됐다면 그 총구를 먼저 회사로 돌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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