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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진구 Mar 25. 2024

보고타, 다시 보고파

여행의 기억을 뚜렷이 간직하는 법

‘여행에서 남는 건 사진뿐’이라는 말이 있다. 여행 사진 또는 영상은 기억이 바래지지 않도록 처음 모습 그대로박제한다. 하지만 이미지화하지 않고도 여행지에서의 잔상을 뚜렷하게 간직하는 방법이 있다. 현지인이든 동행이든 좋은 사람들과 좋은 감정을 최대한 주고 받는 것이다.




2019년 8월 1일부터 시작해 50일 동안 남미 5개국을 여행했다. 여행의 시작은 콜롬비아의 수도 보고타(bogota)였다. 남미 여행 대부분 혼자 다녔지만, 보고타에서는 현지인 부부의 집에서 4박 5일 동안 머물렀다. 


당시 이 부부의 집에서 머물기 위해 ‘카우치서핑(couchsurfing)’이라는 어플을 사용했다. 카우치서핑은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자기 나라의 문화를 소개해주는 대가로 숙박을 무료로 제공받는 시스템이다. 보통은 외국인이 현지인에게 숙박을 요청하는데, 현지인이 외국인에게 먼저 초대 요청을 보내기도 한다. 내가 먼저 숙박을 요청했는지 이 부부가 나를 초대한 건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아무튼 이들이 한국 문화에 관심이 있어 나를 초대했던 거 같다.



보고타 공항에 내려서부터 다른 도시로 가는 버스에 오르기까지 이들 부부와 대부분 시간을 함께했다. 평소라면 여행지에서 혼자 밥 먹고 관광지를 돌아다니는데, 보고타에서만큼은 방에 있는 시간을 제외하곤 혼자 있던 적이 거의 없었다. 그만큼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다는 뜻이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호스트(집주인)에게 대접하기 위해 마련한 삼겹살 파티였다. 카우치서핑을 하는 명목으로 호스트에게 소개해줄 만한 한국 문화로 삼겹살이 먼저 떠올랐다. 집게가 없어서 고기를 잘 못 구웠다고 생각했으나 호스트 부부는 고기를 맛있게 먹어주었다. 이들이 상추쌈를 입에 넣는 장면이 지금도 선명하게 떠오른다.



심지어 언어 장벽도 우리의 행복한 순간을 막지 못했다.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쓰는 호스트는 영어를 잘 못했다. 그러나 구글 번역기를 이용해 스페인어를 영어로, 영어를 스페인어로 번역해가며 충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화를 계속 이어가겠다는 건, 그만큼 서로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는 방증일 것이다.


대성당, 그래피티, 황금 박물관 등 보고타의 주요 관광지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보고타에서 만난 이들 가족들의 얼굴은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은 그곳에서 경험한 감정과 연결되어 기억의 해상도를 높인다. 그것이 좋은 사람들을 만나 좋은 순간을 함께해야 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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