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의 기준은 변한다
어떤 제품 A를 사는 데 돈이 아깝지 않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또는 되도록이면 저렴하게 사는 것이 현명한 소비라고 생각하며, 제품의 브랜드가 가격을 결정한다고 여기는 경우가 많다. 과연 그럴까? 막상 돈을 써보고 나서 아깝다거나, 처음에는 아깝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아깝게 느껴지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험을 세 가지 제품군으로 나눠서 얘기해보겠다.
의외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나조차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책을 사는 데 돈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굳게 믿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보(특히 가짜 정보)가 쏟아져 나오는 요즘 시대에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은 명제라고 생각한다. 진짜 좋은 책은 도서관에 숨겨져 있고, 속칭 '베스트셀러', '스테디셀러'라고 불리는 책의 인기에 가려져 있기 때문이다.
올해는 서점에 들른 적도 별로 없고, 더군다나 서점에서 책을 돈 주고 사본 적도 없다. 대신, 책 깨나 읽어 봤다는 사람들이 추천한 책을 위주로 읽었다. 잘 알려지지 않거나 절판된 책이 많기에 주로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다. 이러한 책들은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그것에 비해 양질의 정보를 많이 담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서점에서 진짜 좋은 책을 무조건 안 판다는 건 아니지만, 수많은 책들 중에서 그나마 소비자들의 이목을 끌 만한 대중성 있는 책을 가장 눈에 띄는 곳에 배치해야 할 것이다.
책을 사지 않는 또다른 이유는 관리의 번거로움 때문이다. 그나마 전자책은 정리할 필요가 없는데, 종이책은 계속 사 두면 더 이상 꽂아 둘 공간이 없어진다. 게다가 먼지가 끼면 털어내는 것도 일이다. 물론 안 보는 책은 중고 서점에 내다 팔면 되지만 그조차도 번거롭다.
근로 소득이 없던 중고등학교 시절에는 에는 같은 제품군이면 무조건 싼 게 최고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저렴한 제품을 구매하고 고장내고, 비슷한 제품을 다시 사는 과정을 반복하고 나니 가격보다는 효용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이 조금 더 나가더라도 내구성이 좋거나 감가상각이 덜한 제품을 사서 오래 쓰는 게 오히려 남는 장사이다.
2년 전 맥북 프로를 구매하기 전까지는 소위 '가성비'라고 불리는 노트북을 3~5년 주기로 구매했다. 그러나 맥북 프로의 빠른 속도와 다른 애플 제품과의 높은 연동성을 체감한 후에는, 노트북을 새로 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히려 새로운 제품을 사는 데 드는 비용을 '아낀' 셈이다.
물론 최저가라고 해서 제품의 질이 무조건 떨어지는 건 아니다. 예를 들어 저가 항공의 경우, 갑작스러운 사고가 나거나 비행 일정을 임의로 변경하지 않는 이상 기본 옵션만으로도 서비스를 이용하는 데 불편함이 없다. 중요한 건 얼마나 오래 쓰고, 삶의 질을 개선하는 데 얼마나 도움을 주느냐다. 적은 돈을 들여서 제품을 구매했는데 불편함이 해소됐다면 적절한 투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경험한 바에 의하면, '싼 게 비지떡'인 경우가 팔할 이상이었다.
아이폰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세 가지와는 맥락이 좀 다르다. 아깝다기보다는 투자한 금액(이름값)에 비해서 아쉽다고 표현하는 게 맞겠다. 아이폰은 다른 애플(Apple) 제품과 함께 사용한다면 상당히 편리하지만, 아이폰 하나만놓고 봤을 땐 아쉬운 점이 있다.
예전에 '돈 써보니 아깝지 않은 것들 4가지'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4가지 중 2개가 각각 맥북과 아이패드로, 둘 다 애플(Apple) 제품이다. 아이폰을 두 제품과 함께 사용한다면 생산성이 극대화된다. 애플은 제품 간 연동성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예가 아이폰의 '에어 드랍(air drop)' 기능이다. 내 아이폰에 있는 파일을 맥북, 아이패드, 다른 유저의 아이폰 등 다른 애플 기기로 보내는 데 10초도 안 걸린다.
그런데 에어드랍을 제외한 아이폰의 장점들(디자인, 카메라 화질, 직관적인 인터페이스 등)을 상쇄시키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 있는데, 바로 '잦은 오타'이다. 스마트폰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기능이 손가락 타자이다. 만약 오타가 자주 난다면 메시지를 보내거나, 개인정보를 입력하거나, 검색어를 입력하는 등 입력 과정 전반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특히 갤럭시 제품을 쓰다가 아이폰으로 넘어오면 그 차이를 더 크게 느낀다.
그나마 'slyder'라는 스마트폰 자판 앱을 이용해 입력 속도를 높이고 있지만, 오타의 한계를 보완하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또는 오타가 난 문장을 챗GPT로 옮겨서 맞춤법을 수정하는 방법을 사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조차도 번거로운 건 매한가지. 여전히 오타를 피할 수 없다는 게 억울할 따름이다.
비록 제목에서 '돈 써보니 아까운 것'이라고 언급했지만, 이것이 무용하다는 뜻이 아니다. 그 당시에는 나름 합리적인 소비라고 생각했으나, 지금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어디까지나 내 경험에 의한 것이고 소비의 기준이 또 바뀔 수 있으니, 참고만 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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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버 사진: Unsplash의 @felipepelaqu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