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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유나 Oct 13. 2021

나를 살게 한 아주 작은 것들

Prologue

 자전거를 타고 집으로 올라가는 길에 문득 에세이 한 편이 쓰고 싶었다. 죽고 싶은 마음을 잊게 해준 풍경과 노래, 사람과 사건 같은 것을 에세이처럼 구성하면 어떨까 싶었다. 초기에 생각했던 제목은 <내일 자살해야지>였다. 여기서 '내일'이라 하면 언제나 미루게 되어 종내 오지 않는 그런 의미로다가. 하지만 너무 어그로 같고 아무도 알아채지 못할 것 같아서 더 순화한 제목을 붙였다. 그것이 바로 <나를 살게 한 아주 작은 것들>이다. 어쩐지 초기에 생각했던 제목과는 정반대의 제목이 붙은 것 같아 나름 재밌다고 생각했다.


 과거에 나는 꽤 힘든 일을 겪었고 그런 것들을 묵혀두면서 현재에는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심리상담을 받으면서 순해 보이는 겉모습과 다르게 꽤 이글거리는 복수심에 불타서 살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지금은 이전보다 안정적으로 살고 있어 많이 괜찮아졌지만 이따금씩 솟는 자살 충동과 자해 시도는 순간순간 내가 아직 평안을 찾으려면 멀었다는 걸 일깨워준다. 아무리 상담을 오래 받아도 이런 부정적인 감정들이 다시 벌레처럼 득시글거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어렵게 뿌리내리고 싹을 틔우고 가지를 뻗은 인생이 다시 메마르고 죽어갈 수도 있다. 세상은 시련으로 가득찼고 그때마다 나는 다시 악귀처럼 살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아직 살아있다. 나는 이것에 대해 오래 생각했다. 내가 쉽사리 삶을 포기하지 않도록 나를 지켜준 것들. 나아가 일상을 넉넉하고 풍요롭게 보낼 수 있도록 해준 존재들. 그것들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그토록 흔들리고 위태로웠던 나를 지켜준 것은 취향과 취미, 어떤 순간과 관계 속에서 찾을 수 있는 아주 작은 것들이었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 시간을 최대한 많이 남겨 괴롭고 우울한 시기에 언제든 꺼내볼 수 있도록. 그게 미래에 닥칠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힘이 되리라 믿으면서 나만의 보물상자를 조금씩 채우기로 했다.


 포문을 글쓰기로 열고 글쓰기로 내가 사랑하는 것들을 담아낼 계획이라는 것이 무척 뜻깊다. 글쓰기는 과거에 나를 살게 한 유일한 것이었다. 시, 산문, 소설, 일기 닥치는 대로 적었다. 그것은 이제 바꿀 수 없는 나만의 힘이 되었다. 머리 나쁜 나를 대학에도 붙여 주었고 작가라는 위대한 꿈도 꾸게 만들었다. 나를 살게 한, 아주아주 작은 것들에 대해 쓰려고 시작하면서 프롤로그가 글쓰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행위가 언제나처럼 나를 살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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