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여름, 자전거를 자주 탔다. 정확히는 '따릉이'다. 따릉이는 2014년부터 운영을 시작했다고 하는데 나는 서울 토박이인데도 불구하고 2021년이 된 올해에 처음 타봤다. 친구들로부터 따릉이 예찬은 자주 들어왔었다. 하지만 지난 4년은 경기도에서 대학을 다니느라 이용하지 못했었다. 기계치라서 따릉이 이용 방법이 어려울까 봐 섣불리 걱정을 했던 것도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자전거를 타지 않은 것도 한몫했다. 마지막으로 탔었던 게 아마 13살 때였을 것이다. 그로부터 20년 가까이 지났으니 아무래도 자전거 연수부터 받는 것이 나를 포함한 모두를 위해 좋을 것이라고 농담했었다. 그래도 따릉이는 내 오랜 로망이었다. 나는 곳곳에 세워진 따릉이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한 번씩 눈여겨보면서 안장을 쓸어도 보고 괜히 벨도 한번 울려보고 그랬었다.
도통 기회를 잡지 못하다가 따릉이를 자주 이용해본 친구가 그렇게 말만 하지 말고 한번 타보라고 재촉하기에 한강으로 갔다. 그때가 5월이었나, 아마 계절이 점점 여름으로 달려 나가려고 했던 시즌이었을 것이다. 안장을 키에 맞춰 내리고 한쪽 발을 핸들에 얹어 밑으로 쑥 내린 그 순간, 나는 균형을 잘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우려했던 것보다 잘하잖아? 나 완전 천재 아니야? 나는 그날 한 번도 넘어지지 않고 한강의 자전거 도로를 자신만만하게 질주했다. 한껏 기고만장해진 나는 퇴근길에도 따릉이를 이용해 보기로 했다.
회사와 집 사이에는 안양천이 있다. 처음부터 이곳을 이용했으면 편했을 것을. 나는 안양천으로 들어가는 길을 몰라 대중교통을 탔으면 30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거리를 1시간 반이 넘어서야 가까스로 도착했다. 인도에서 사람들을 요리조리 피하고 가파른 언덕을 올라 가느라 자전거를 타기보다 끌고 갔다고 보는 편이 더 맞을 것 같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고 근육통에 씻자마자 쓰러지듯 잠들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따릉이를 아는 몸이 돼버려서 이대로 포기할 수 없었다. 두 번째 길부터는 안양천으로 가는 길을 먼저 찾았고 잘빠진 자전거 도로를 이용했다. 편안했던 것도 잠시 이번에는 안양천에서 길을 잃고 말았다. 어떻게 하면 거기서 길을 잃을 수 있냐고 묻는 사람들도 있을 텐데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일반 도로보다 더 길 찾기가 어렵다. 강변에서 일반 도로로 빠져나오는 길을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어쨌든 그때도 인도로 갔을 때만큼의 시간이 소요됐던 것 같다.
세 번째 시도만에 나는 안양천을 들어서고 나오는 길을 모두 익힐 수 있었다. (중간중간 멈춰 서서 GPS를 켜고 길을 찾긴 했지만) 그때부터 퇴근길에 따릉이를 자주 이용했다. 해가 늦게 졌던 계절이라 너무 어둡지 않았고 그렇다고 한낮의 땡볕은 한차례 가셨기 때문에 제법 쾌적했었다. 강바람을 가로지르면서 울창한 수풀의 냄새를 맡으며 때로 자연이 인공의 향수보다 더 강력한 향기를 내뿜는다는 것을 알았다. 백합이 한가득 심긴 자리를 지날 때면 정말 꽃집에라도 온 것처럼 향긋한 냄새가 공기 중에 진동을 했다. 마스크를 써도 이렇게 진한데 없었다면 아마 코끝이 마비될 정도가 아니었을까? 이런 아쉬움을 뒤로하고 나는 계속 앞으로 향했다. 노을이 내 앞에 그림처럼 펼쳐지면 좋았을 것을 내가 가는 길은 동쪽이라 노을은 항상 내 뒤에 있었다. 그래도 다리를 건널 때에 노을 진 서쪽 하늘을 한 번씩 엿볼 수 있었다. 타는 주홍빛일 때도 있었고 옅은 분홍빛일 때도 있었고 구름 낀 흰색일 때도 있었다. 다리는 완만하게 경사져 있어 내가 페달을 밟지 않아도 시원하게 굴러갔다. 그렇게 자전거를 타고 퇴근하는 길에 노을은 딱 한 번만 볼 수 있었다. 살짝 고개를 비틀어 바라봤던 딱 한 번의 서쪽 하늘이 어떤 색이든 그곳을 지나면 마냥 행복하기만 했다.
때때로 운 나쁘게 고장 난 따릉이를 만날 때도 있었다. 기어가 망가져 어떻게 해도 속력이 나지 않고 기어가는 따릉이라든지 벨이 없어 "지나갈게요!"하고 소리를 질러야만 했던 따릉이라든지 무슨 문젠지 모르겠지만 너무 무거워 돌덩이를 이고 가는 느낌의 따릉이라든지 다양했다. 그런 망가진 따릉이를 만난 날도 별로 비관하진 않았다. 그저 오늘은 운동을 배로 하는 날이구나 하며 땀을 뻘뻘 흘렸을 뿐이다.
따릉이는 정말 굉장하게 느려서(따릉이 애용자라면 다 알만 한 문제일 것이다.) 나는 주로 오른편에 비껴서 달렸다. 더 빠르게 달리는 분들이 왼쪽으로 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헬멧과 복장에서 전문가 포스가 나는 어르신들이 매번 내 앞을 앞질렀다. 가끔 그들을 쫓아가려고 했던 적도 있지만 어림도 없었다. 나는 그냥 내 속도에 맞게 그날의 바람과 날씨를 느끼며 달렸다. 따릉이를 타며 달렸던 그 시간은 다른 무엇도 아닌 온전히 나 자신에게만 가장 집중한 시간이었다. 비가 온 뒤의 젖은 자전거 도로를 달릴 때면 물 위를 달린다는 공상을 하기도 했고 다음에 쓸 소설 내용을 생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이 에세이의 기획도 자전거를 달리며 했었다. 따릉이 위에서 바라본 풍경이 좋아 언제든 기억하고 싶어 남겨두겠다는 것이 첫 구상이었다. 그렇게 공상하고 구상하고 상상하며 달렸던 것, 그게 가장 좋았다.
올 상반기는 사실 감정적으로 꽤 힘들었던 시기였다. 사수 없이 처음 하는 일의 모든 프로세스를 홀로 공부하고 진행하는 일이 쉽지 않았고 거기서 오는 피로함이 뒤따랐다. 출근해야 하는 내일이 오는 게 싫어 잠을 설치는 불면증 증세도 심해졌었다. 그래도 따릉이를 탔던 올여름은 너무 멋지고 아름다운 계절이었다고 기억할 것이다. 버드나무가 무성하게 우거진 길을 시원하게 지나갈 때면 내 앞길도 이렇게 탄탄대로일 것 같았다. 묵직하게 오는 근육통 때문에 중간에 깨지 않고 잘 수 있었다. 올여름도 지난여름처럼 30도를 훨씬 웃도는 기온을 선보이며 어김없이 무더웠고 나의 첫 사회생활은 버겁기만 했지만, 그래도 덕분에 기억할 만한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