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하고 노력하는 직장인
일이 부쩍 적어진 요즘 오전에 여유롭게 인터넷 서핑을 즐기는 편이다.
꽤나 오랜 기간 동안 네이버에서 심심치 않게 보이는 글들이 있다. 누구는 N잡러가 되어 부수입을 만들고 어떤 사람은 취미가 직업이 되어 대기업 연봉 정도의 수익을 낸다는 기사.
눌러서 읽다 보면 맨 아래 관련기사가 있어 눌러보고 또 눌러보고 하다 보면
난 왜 기사의 사람들처럼 하지 못하는가 하며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진다.
그럼 나도 취미로 돈 좀 벌어볼까?라고 생각하지만 금세 돈 벌기가 그렇게 쉬웠다면 벌써 수십만 명은 부자가 되었겠지 라며 금방 시들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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퇴근하고 침대에 누워 인스타 스크롤을 한참 의미 없이 내린다.
어떠한 알고리즘으로 구직회사 광고가 뜬다. 내가 요즘 들어 직업 관련 기사만 읽다 보니 생겨난 무서운 알고리즘이겠지. 그래도 궁금증이 생겨 눌러본다.
지금의 나를 뽑아줄 만한 회사가 과연 있을까?
나는 그동안 내 역량을 잘 쌓아왔을까?
객관적으로 나는 성장하고 있는가?
물음표들을 스스로에게 던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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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차 무대감독일을 하면서 최근 들어하는 생각이 있다.
결국 난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이다. (물론 일반적인 업무와 업계는 아니다만)
자신의 커리어를 위해 매 프로젝트 지원을 하고 면접을 봐야 하는 수고로움과 끊임없는 평가들에서 자유롭고 싶어 프리랜서를 그만두고 회사원이 되는 것을 선택했는데 그게 아니더라.
정직원이 되면 모든 것이 수월하고 쉬울 줄 알았다. 내가 책임지는 것은 적어지고 시키는 일만 해도 굴러가는 게 회사원의 하루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내 착각이었다. 평가는 더 가혹해져 연봉이라는 것으로 내 가치를 판단하게 되었다.
내 가치. 더 이상 키우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생겨버렸다.
코로나로 인해 연봉이 동결되었다. 회사원은 연봉이 나를 객관적으로 표현해줄 아주 중요한 숫자이며, 지표이다.
그런데 동결이라니 마치 1년 동안 아무런 성장도 성과도 내지 못한 이를 부르는 단어 같다.
과연 내년에는 연봉협상이 가능할까? 성과급은? 이렇게 멈춰버리는 건 아니겠지?
두려움이 앞장선다.
나와 같은 시기에 사회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을 본다.
나는 중간에 커리어를 바꿔 회사원이 되었지만, 그들은 힘들어도 묵묵히 영화 일을 하는 중이다.
그 안에서도 힘든 순간이 많겠지만 점점 많아지는 작품 수와 필모그래피가 쌓이는 그들을 보며 괜스레 내가 왜 커리어를 바꿨을까 후회해본다.
물론 나도 그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무대 경력이 쌓여가고 성장했다. 그런데 왜 자꾸만 불안하고 과연 내가 잘하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드는 걸까?
나보다 오래 회사를 다닌 선배들에게 물어도, 다른 직종에 종사하는 친구에게 물어도, 부모님께 물어봐도 결국 정답은 없다.
불안함은 내가 해소하지 않으면 누구도 대신해줄 수 없다.
이런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문다.
그러다가 다시 구직광고를 봤다.
경력직을 구한단다.
그래, 이직을 하면 연봉협상을 할 수 있겠지! 경력직이면 나를 평가하기도 좋은 기회일 거야!
3년 만에, 정말 오랜만에 노트북을 켜 이력서를 적기 시작했다.
나는 디자이너의 삶을 살고 있기에 매년 포트폴리오를 작업하는 편이다.
덕분에 정리된 포트폴리오를 열어 경력기술서 칸을 채워나간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월급은 적어도 참 일을 많이 했구나.
경력직으로 이직을 시도해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늘 막내로 살았던 나인데 (현 직장 전에는 1년에 한 번씩 회사를 옮겨서 늘 막내의 역할을 했다.) 드디어 3년짜리 경력이 생겨 이렇게 지원도 해보고
감회가 새롭다.
사실 이력서를 쓰면서 내 커리어 발자취를 처음부터 더듬어 보는 것에 위로를 많이 받았다.
회사생활 내내 같은 일만 하고 잔업만 처리하는 줄 알았는데 그래도 쭉 적어놓고 보니 열심히 살았구나 싶다.
내 단독 작업은 없지만 그래도 크고 작은 프로젝트에 나도 포함되어 일을 했다. 일이 되게 했다.
그렇게 성장하고 있었던 거겠지.
누구도 내가 잘 성장하고 있다, 올바른 길로 가고 있다고 말해주지 않는다.
경력직 채용 지원서를 쓰면서 내 커리어를 돌아보고 살펴보며 내가 얼마나 성장했는지를 PR 하는 글을 적으며 아. 나 잘하고 있었네 스스로를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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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력직 채용 서류가 합격을 했다.
면접을 준비해야 한다.
내가 했던 프로젝트에 대해 설명하는 발표를 준비하라고 한다.
사실 3년 차가 단독으로 진행하는 프로젝트가 있기는 쉽지 않다.
지금 다니는 회사의 구조상 더 힘들다. 상사가 너무 많아 나는 그냥 서포트의 역할만 할 뿐이다.
일을 주는 게 쉽지 않겠지. 그런데 아무것도 안 시키면 내가 뭘 할 줄 아는지 알 수 있나?
이렇게 생각하다가도 그냥 시키는 일만 할 뿐이다.
그런 나에게 진행했던 프로젝트를 설명하라니 뭘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람이 뻔뻔해질 수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바로 지금이다.
면접은 결국 자신감이 중요하다. 거짓말은 하지 않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사실대로 하지 않아도 된다.
(유튜브에서 경력직 면접 영상을 정말 많이 찾아보고 깨달은 결과다.)
그렇지만 면접은 탈락.
씁쓸하다.
그래도 얻은 건 있다.
나 성장하고 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된 좋은 계기였다.
루즈해진 직장생활에 잠깐의 활력이 돼준 이직 준비는 실패로 끝났지만 이로 인해 더 마음이 단단해졌다.
내가 단독으로 진행할 수 있는 프로젝트가 생길 때까지 공부하고 현 직장에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비루한 내 연봉이 불쌍하지만 좀만 더 버텨보자 싶다.
그러다 보면 다음번엔 내가 지원하지 않아도 나와 일하고 싶다는 회사가 생기겠지.
모든 직장인들이여 아직 우리의 성장은 끝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