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 생활 제1 원칙
지구 상에 태초부터 있었던 수많은 생물 중에서 호모 사피엔스, 즉 우리 인간만큼 발전을 이룬 생명체는 없다.
그 이유로 인간들이 사회 공동체를 이루어 모여 살기 시작한 것이라는데 이견을 다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힘없고 약한 작은 동물에 불과했던 인간들은 모여 살면서 그 작은 힘들을 모아 모아 매머드도 멸종시키고 빙하기도 이겨내고 대양을 건너 다니다가 지금은 우주를 건너 다니고 있잖은가!
하지만 세상만사가 다 그렇듯이 사람들이 모여 산다는 게 좋은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람의 본성 중엔 언제나 공동체를 이루는 무리 중에서 자신은 물론 주위 사람들로부터 조금이라도 더 인정받으려는 본성이 있는 것 같다. 특히 자신과 같은 기준으로 묶이는 무리에서 라면 더욱더.
그래서 비슷한 일을 하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비슷한 목표를 가진 친한 친구의 성공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을 갖기가 사실상 어렵다고 하질 않은가!
20대에서부터 70대까지 다양한 나이 때의 사람들이 오로지 봉사라는 하나의 이유로 공동체가 된 봉사단.
단원이 되기 전의 사회적 지위나 나이의 많고 적음은 아무 의미가 없다. 그래서 단원들은 서로 '선생님'으로 부른다. 서로 같은 목적으로 모인 평등한 존재니까!
우리 봉사단원들은 세계 여러 나라에 컴퓨터 교육, 태권도 교육, 유아 교육, 자동차 정비, 관광개발, 간호, 의료 등 다양한 목적으로 파견된다.
하지만 태국은 오로지 한국어 교육 단원만 파견된다. 그래서 더욱 비교하기도 비교당하기도 쉽다.
태국으로 파견된 단원들의 운명(?)은 파견되는 기관(학교)에 따라 결정된다.
우리나라 4년제 대학교에 해당하는 '마하위타야라이-University'는 학생들이 치열한 입시를 통해 들어가는 대학교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규모가 커서(학생수가 4만 명이 넘는 학교도 있다) 수업과 생활환경이 좋고, 학사관리가 엄격하며(학점이 있음), 학생들이 한국어 수업을 원해서 듣기 때문에 학구열도 높다. 한마디로 한국어 교육 단원이 봉사의 보람을 느낄 수 있는 곳!
반면 우리나라의 고등학교와 2년제 대학이 함께 있는 독특한 시스템의 '위타야라이-College'(기술대, 직업대, 농대 등)는 무시험으로 들어가는 학교가 대부분이다. 비교적 규모가 작아서 수업이나 주거 환경이 안 좋고, 한국어 수업이 학점이 없는 특별활동 같은 성격인 데다가, 학생들은 학구열은 물론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비교적 떨어지는 편이다. 가끔은 여긴 지금 어디인가?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라는 철학적 사유를 강제받는 곳!
크게 나누면 너무나도 차이가 확 나는 두 종류의 학교가 있는 것이다.
남은 약 22개월의 단원 운명은 어쩔 수 없이 배치된 기관의 환경에 따를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그래서 단원들 사이의 불문율 1호는 '비교하지 마! 자랑하지 마!'
봉사단원이 되기 전의 경력과 나이와 능력에 상관없이 배치된 기관을 비교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비교적 상황이 열악한 기관으로 배정된 것은 누구의 잘못이 아니다. 그것이 배치받은 사람의 능력 부족을 증명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비교할 수밖에 없고, 비교의 수레바퀴에 자신의 생각을 묶어버리는 순간 단원 생활은 암흑의 연속이 된다. 불면의 나날이 이어지고 금연과 금주 약속은 휴지조각이 된다.
간혹 드문 일이긴 하지만, 자신이 배치된 학교의 좋은 환경을 자랑하고 자신이 가르치는 학생들의 뛰어남을 자랑하는 천박한 사람들도 있다. 그럴 땐 넘치는 그들의 자랑에 박혀있는 천박함을 비웃으며 돌아서면 된다.
하지만 사람이기에 전교생 3백 명의 시골학교에, 썽태우(태국 대중교통)를 타고 내려서 자전거로 바꿔 타고, 40도가 넘는 땡볕 아래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땀으로 온몸을 목욕한 체, 교실에 갔을 때 아무 연락 없이 학생들이 한 명도 안 오는 상황을 겪으면 다시 비교의 수레바퀴에 영혼을 맡기고 정신줄을 놓는 날도 있다.
봉사를 한다고 득도를 하는 것은 아니니까!
배치된 기관의 열악함을 스스로 비교하면서 아까운 봉사의 날들을 우울해할 필요는 없다.
아무리 열악한 곳이라도 이 또한 누군가는 와야 할 자리! 비교하지 않으면 이 또한 봉사의 소중한 자리다.
자신의 노력 없이 얻어진 것들을 자랑할 필요는 없다.
어떠한 상황에도 묵묵히 봉사하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천박함을 자랑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박범신 선생이 '은교'에서 이렇게 썼다.
'너희의 젊음이 노력으로 얻은 상이 아니듯이, 내 늙음도 내 잘못으로 받은 벌이 아니다.'
그래 젊음은 갖고 싶고, 늙음은 피하고 싶다. 하지만 삶이란 상과 벌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
그러니 부질없는 비교질로 나를 다 먹은 짜장면의 담배꽁초로 만들 필요는 없다.
그러니 천박한 자랑질로 자신을 운 좋게 얻어 탄 리무진의 쥐새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단원들의 제1 생활원칙이다. '비교하지 마! 자랑하지 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