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까지 연말을 얼렁뚱땅 보낸 적이 있던가. 쉬고 싶다는 욕심 때문에 한 해를 돌아본다던가, 다가오는 새해를 맞이할 준비를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밀린 숙제를 끝내듯이 급급하게 블로그에 정리도 해보고 부랴부랴 올 해를 돌아보는 글을 써본다. 물론, 지금은 이방인이 아닌 그저 한 사람으로서.
올해는 사실 작년이랑 비교하면 해야 할 일에 충실했던 한 해였던 것 같다. 다양한 전시와 작업 활동을 했던 작년과 다르게, 올해는 학교를 다니고 인턴을 하고 다시 학교를 다녔더니 12월이 '되어버렸다'. '아 올해는 연말 느낌 하나도 안 나!'라고 한 마디 했다가 엄마한테 열 마디 꾸중을 들어버렸지만. 어쨌든 엄청난 사건은 없었고 소소한 일상으로 365일을 가득 채운 한 해였다.
그런데 다음 해가 재미있는 점은 나이가 한 살 늘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한 살 줄어든다는 점이다(아주 짧게나마). 약간의 기간이 지난 후 지금의 나이와 그대로지만, 어쨌거나 적어도 나이를 먹지는 않는다는 점이다(만 나이 최고). 타지 생활을 하다 보니 가끔 싱가포리언 친구들/ 혹은 그 외의 사람들이 '나이가 어떻게 되느냐'라고 물으면 약간의 버퍼링이 생긴다. '내가 몇 년 생이고, 한국에서는 몇 살인데, 생일은 언제고, 지금은 몇 월이고... '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는 24살, 한국에서는 25살의 삶을 살아왔는데 내년부터는 나라를 떠나 통일된 나이로 살아갈 수 있다는 점이 꽤나 편하다.
어렸을 때 애니메이션이나 만화를 굉장히 많이 보고 자랐던 터라 타임 리프나 회귀물 소재를 자주 접했다. 그래서 종종 등장하는 클리셰인 '과거로 돌아간다면 이렇게 살 텐데!'의 스토리도 좋아했다. 사실 과거의 삶에 대한 후회가 있기보다는 '과거로 돌아가도 아마 똑같이 살았을걸?'과 같은 생각으로 사는 사람이라 시간을 돌리고 싶은 열망은 딱히 없는데, 나이 정책이 바뀐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비현실적인 일을 내년부터는 경험할 수 있다.
후회 없는 24살이었기에 다가오는 새해를 어떻게 보낼 수 있을까.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첨부해보자면 우선 졸업을 무사히 하는 게 내년의 가장 큰 목표라고 할 수 있겠다.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작업을 할 수 있는 16주의 시간이 나의 가장 중요한 과업 중 하나이다. 사실 그 이후에 일어날 일들은 여전히 불투명한데, 이 unknowable 한 미래가 나에게 답답함을 주었다. 그래도 한 해의 마지막 날이 되고 다시 차분하게 생각해보니 그냥 그때 가서 경험하면 된다는 비교적 단순한 결론이 나왔다. 그 '때'가 되어야 결론을 알 수 있는 일이라면 미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때로는 빼곡한 계획을 세우는 것보다 예상치 못한 일을 직접 마주하는 것이 더 현명하기에.
그러니 너무 많은 계획보다는 적당한 마음가짐 몇 개만 가지고 새해를 맞이해보려고 한다.
한 해동안 수고 많으셨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다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