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멘딘 Apr 19. 2024

어느날,

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하게 된 이유는,


때는 아직 여름의 무더운 공기를 머금고 있는 9월의 어느 날. 유학생활을 무사히 끝내고 귀국한 지 3개월 정도가 지난 즈음, 슬슬 나를 보는 친구들의 인사가 사뭇 달라졌다. ‘요새 뭐 하고 지내?’ 그러게. 나 뭐 하고 지내더라. 3개월이라는 이 애매한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지는 것 같다. ‘적당해’ 혹은 ‘이제는 좀 해야지’ 뭐 이 중간의 지점과도 같은 시기. 나 스스로도 약간의 불안함을 달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한 것 같다. 왜냐하면 정말로 저 질문에 할 수 있는 답이 없었기 때문이다.


가을이라는 이름을 붙이기에는 9월도 준비가 덜 된 걸까, 무작정 덥기만 했던 초가을의 날씨였던 것 같다. 그럼에도 유난히 날씨가 좋았던 날들이었던지라, 많이도 놀았다.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이때라도 잘 놀아서 다행이지만. 흘러 보낸 시간이 많아지는 만큼 달갑지 않은 안부 인사도 같이 쌓여갔다. 이제는 해야지, 진짜 해야지, 이 말들만 반복하던 어느 날. 주위의 친구들이 하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어라라, 얘네 언제 이걸 다 준비해서 척하니 붙은 거지. 어느 날 누구는 취업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어느 날 누구는 면접을 보러 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렇다. 나만 정체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 마냥 무작정 준비하기 시작한 것 같다. 쓸데없는 불안을 자주 안고 사는 사람이지만 사실 적당한 불안감과 긴장감은 내가 페달을 빠르게 밟을 수 있게 해주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9월의 어느 날, 그렇게 무작정 페달을 빠르게 밟기 시작했다.


아는 건 적고, 주위에 도움을 구할 한한 사람이 많은 편도 아니었다. 나름대로 학교 생활은 성실히 해서 포트폴리오가 볼품없지는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미적 취향은 그다지 ‘트렌디’ 하지는 않아서 확신은 없었다. 요즘에는 디자이너들에게 요구하는 기술들이 뭐가 그렇게 많은지. 스펙을 비교하고 채용 공고를 볼 때마다 나에게 부족한 기술들만 눈에 들어온다. 이 와중에 나이는 또 적지 않아서 취업 준비 기간을 길게 가지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게 불안과 걱정만 켜켜이 쌓인 상태로 살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걱정만 하고 있지, 딱히 내가 뭔가를 하고 있지는 않았다.


그렇게 시간은 어느덧 10월. 이제는,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다. 차분하게 생각해 보니 숨 막힐 것 같은 상태로만 살고 있었고 딱히 발전을 하지는 못했었다. 그렇게 걱정되면 포트폴리오라도 다시 고치던가 할 것이지 시간만 걱정과 함께 싸서 흘러 보내고 있었다. 걱정, 걱정, 걱정. 중요하지만, 지금 나에게 필요한 건 그게 아니야. 차분하게 앉아서 나에 대해 객관적으로 하나 하나 뜯어보기 시작했다. 대학생 시절 내내 지겹게 들어온, ‘나’를 탐구하는 시간을 가지기 시작했다.


내가 좋아하는 분야,

내가 낯설게 생각하는 분야,

내가 할 줄 아는 기술,

내가 다루기 어려워하는 기술.


한 줄씩 적어내기 시작했고, 객관적으로 한 걸음 떨어져서 나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날 알게 된 첫 번째 깨달음.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을 파악할 때는 한 발자국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뜯어보는 연습이 필요하다.


어쨌든 뭔가를 쓰고 나니, 이것만으로도 꽤나 많은 업적을 이룬 것 같아 뿌듯했던 날이었다. 평범하게 지나가는, 특별한 기념일이 아닌 하루여도 귀하고 소중하게 대하면 특별한 어느 날이 된다.


그렇게, 스스로를 사회에 내보낼 준비를 시작했다.

keyword
금요일 연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